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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Nov 06. 2023

동시에 동시해 - 송찬호 동시들

동시


사진
 
작년 이맘때 할머니랑 벚꽃 구경 갔다가
활짝 핀 벚꽃 아래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 찍을 때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이제
우리 홍두와 이 할미만 남았구나
 
작년 이맘때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핸드폰에서 꺼내 본다
 
이제 나만 남았다
 
 
 
 
 
 
 
 
 
나비의 방
 
나비가 없는 새 나비의 방을 몰래 구경했다
나비 날개옷 몇 벌 옷걸이에 걸려있고
방 한구석에 꿀단지가 놓여 있었다
각시멧노랑나비여서 날개옷이 모두 노랬다
꿀단지는 비어 있었다
저축한 꿀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비가 오려고 하는데 나비가 얼레지꽃밭으로
꿀 따러 간 걸 보면
 
 
 
 
 
 
 
 
 
에디슨 돼지
 
에디슨 돼지가 돼지들 중 처음으로
안경을 썼을 때
다른 돼지들이 막 놀렸어요
돼지가 안경을 써서 뭐해
그런 생활을 발명해서 뭐해
 
에디슨 돼지는 빙그레 웃었어요
안경 맞추러
안경점에 갈 때
돼지들 중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간 건 아무도 모르기 때문
 
 
저자 송찬호는 1959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경북대 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 6호에 「금호강」 「변비」 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이 있으며, 2000년 동서문학상과 같은 해 김수영문학상, 2008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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