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 Nov 30. 2023

달콤하고 따듯한 이야기

갑자기 충동적으로 일을 할 때가 있어요.

어제가 그런 날이었나 봐요.

그 전날 달걀 네 알을 베란다에 놔뒀어요.

아침에 한 알을 꺼내와서 쿠키 반죽에 넣었죠.

집에만 있는 전업주부냐고요?

아닙니다. 남편이랑 가게를 해요.

그래도 막 하고 싶을 때 해야 하거든요.

급히 쿠키를 구워놓고 출근을 했어요.

이제 세 알이 남았네요.     


퇴근해서 세 알을 머핀 반죽에 넣었어요.

7시 반쯤 되었나 봐요.

퇴근한 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들어와요.

- 엄마, 문밖에서도 맛있는 냄새가 나요.

집에 들어오면서 이 냄새를 맡으니까 너무 좋아요.

막 포근하고 달콤하고 따듯한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아이는 입으로 먹기 전에 냄새를 먼저 먹었나 봐요.

봉긋 올라온 머핀은 왜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오늘은 좀 예쁘게 나왔네.

-엄마 머핀은 늘 최고잖아요.

저는 또 딸의 칭찬으로 귀가 달콤해졌어요.

따듯할 때 먹어야 제맛이라며 초코 머핀을 한입 베어 물어요.

그 모습을 보니 이게 행복이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슬렁어슬렁 냄새를 따라 방에서 나온 막둥이 아들은 머핀 두 개를

말없이 접시에 담아 들어갑니다. 문을 꼭 닫는 건 잊지 않죠.

9시 무렵 퇴근한 큰아들은 밥 생각 없다더니 머핀은 먹네요.

- 음..

살짝 눈을 크게 뜨면서 뱉는 이 말이 칭찬의 말이고 맛있다는 말입니다.     

머핀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어요.


막둥이가 예닐곱 살 무렵이었지 싶어요.

머핀을 잔뜩 만들어놓고 저는 온종일 수업을 들으러 집을 비웠어요.

저녁에 들어갔는데 그 많은 머핀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막둥이가 달려와서 저에게 일러주는 말이

-엄마, 아빠가 내 머핀 다 처먹어버렸어요!

저는 동이 난 머핀이 문제가 아니고 ‘처먹어버렸다’는 표현을 하는 막둥이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넌, 그런 말을 어디서 들었니?

꾸짖듯 말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그제야 놀라 크게 소리 내서 울었어요.

삼남매 중 가장 순한 막둥이인데 그때는 어지간히 골이 났나 봐요.

그 뒤로 그런 말은 입에 담지 않아요. 단 한번도요.

아이는 그 일을 까맣게 잊었을 텐데 저는 머핀을 구울 때마다 생각이 나서 살포시 입꼬리가 올라가요.    

 

오늘 아침에 보니 쿠키며 머핀이 많이 줄어있어요.

올빼미족 아이들이 오며 가며 집어갔겠지요.

시나브로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어요.

이게 또 소소한 행복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딸 책을 읽고 42년생 엄마가 답장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