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한 친구
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로소 보이는군
난 항상 반짝이는 것들만 쫓았던 거야
정작 중요한 건 보지 않았던 거지
그러니 이 거미줄은
덫이 아니라
하늘의 뜻인 거야
조용히 누워 하늘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여기서 이렇게 친구도 사귀게 되고 말이야!
그래, 과묵한 친구
가까이 와 보게
이제 좀 보이는군
자넨 어쩌다 여기 걸린 건가?
수줍음 많은 거미는
말없이 거미줄을 뽑아
불나방의 입을 가려 줬어요
까만 비닐 검은 꼬리
바람에 움찔이네
까만 것
돌담 위서 하품하네
구멍 뚫린 것
구석진 곳에
가끔은 환한 대낮
길 한복판에
고양이인 척
드러눕는 까만 비닐봉지들
믿으며 지켜봐 주면
원하는 대로
그렇게 된다던데
정말 그럴까?
부스럭
부스럭
굴러가는 검은 비닐
그 뒤로
살랑이는 까만 꼬리가
보일락 말락
보일락 말락
꿈에서도 싸웠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누구 말이 맞나!
억울함에 씩씩
새빨개진 얼굴과
또 억지 부리는 거 같은데……
그렇다고 딱히 할 말은 없는
나
답답한 마음은 꿈에서도 이어져
꿈에서 만난 사람 모두 모아
붙잡고 물어봤다
“그래서 누구 말이 더 맞는 거 같아요?”
그러자 모두 제 말이 옳다며
개가 되어
짓는 사람들
한참을 시달리다 그대로 달렸지
너랑 손잡고
그대로 낭떠러지
떨어지는 꿈
손바닥이 축축해진 밤
무슨 꿈이 이래
생각하면서도
내일 학교 가면
너한테 꼭 말해 줘야지, 하고
잠결에 중얼거렸다
201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동화집 『마음 상자 구해요』가 있습니다.
「과묵한 친구」로 제6회 동시마중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2023 《고양이 글자 낚시》- 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