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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Dec 04. 2023

동시에 동시해 - 김성진 동시들

동시

과묵한 친구


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로소 보이는군


난 항상 반짝이는 것들만 쫓았던 거야

정작 중요한 건 보지 않았던 거지


그러니 이 거미줄은

덫이 아니라

하늘의 뜻인 거야

조용히 누워 하늘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여기서 이렇게 친구도 사귀게 되고 말이야!


그래, 과묵한 친구

가까이 와 보게

이제 좀 보이는군

자넨 어쩌다 여기 걸린 건가?


수줍음 많은 거미는

말없이 거미줄을 뽑아

불나방의 입을 가려 줬어요


 

 


 


 


까만 비닐 검은 꼬리


바람에 움찔이네

까만 것

돌담 위서 하품하네

구멍 뚫린 것


구석진 곳에

가끔은 환한 대낮

길 한복판에

고양이인 척

드러눕는 까만 비닐봉지들


믿으며 지켜봐 주면

원하는 대로

그렇게 된다던데


정말 그럴까?


부스럭

부스럭

굴러가는 검은 비닐

그 뒤로

살랑이는 까만 꼬리가

보일락 말락

보일락 말락


 


 



 


꿈에서도 싸웠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누구 말이 맞나!


억울함에 씩씩

새빨개진 얼굴과

또 억지 부리는 거 같은데……

그렇다고 딱히 할 말은 없는



답답한 마음은 꿈에서도 이어져

꿈에서 만난 사람 모두 모아

붙잡고 물어봤다


“그래서 누구 말이 더 맞는 거 같아요?”

그러자 모두 제 말이 옳다며

개가 되어

짓는 사람들


한참을 시달리다 그대로 달렸지

너랑 손잡고

그대로 낭떠러지

떨어지는 꿈

손바닥이 축축해진 밤


무슨 꿈이 이래

생각하면서도

내일 학교 가면

너한테 꼭 말해 줘야지, 하고

잠결에 중얼거렸다


 


 


 


 


 


201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동화집 『마음 상자 구해요』가 있습니다.


「과묵한 친구」로 제6회 동시마중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2023 《고양이 글자 낚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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