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면 좋을 줄 알았지!

(9화) 아프니까 진짜 슬퍼.

by 사과나무

아프면 서럽다. 아프면 남편도 소용없다. 긴병에 효자 없다. 이런 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물론 한국토종 나도 많이 들어봤다.

아직 긴병까지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병이 있다.


나는 첫 생리를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내 인생에 함께 하고 있다. 생리가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나의 생리는 순탄하지 않았다.

항상 양도 많고, 고통도 많았다.


그러면 어른들이 한 마디씩 하였다."아이 낳으면 없어져"

전문적인 지식을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으레 "그래, 아이를 낳으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였다.


첫아이를 낳고, 기적 같은 순간이 왔다.

양의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고통은 거의 없었다. "만세! 나도 이제 해방"


"나는 생리를 3일밖에 안 해" "나는 생리통약을 먹어본 적이 없어" "나는 생리기간 내내 소형생리대만 써"

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다.


나는 그날이 되면, 아프고, 짜증이 나고, 삶의 동선에도 항상 신경 써야 했다.


그래서 첫째 아이를 낳고 고통에서 해방되니 나도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던 중 두 살 터울의 둘째 아이를 낳게 되었다.

(나는 사실 둘째 아이를 낳으면 생리 양도 더 감소하고, 생리통도 더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고, 바람이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였는데 의학적으로는 나오지 않아야 하는 생리가 나는 모유수유 중에도 나오기 시작하였다.


정말이지, 생리와 모유수유 기간이 겹치는 날이면 꼭 죽을 맛이었다.

모유수유해야지 피는 하혈 하듯이 나오지 눈에는 눈물이 펑펑 나왔다. 어찌어찌 그 시절이 지나고 나니 나의 생리문제는 점점 심해지기 시작하였다.


자궁은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굳은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았고, 자궁선근증이라는 질환명을 듣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 말과, 폭풍 검색 속에 알게 된 사실은 특별히 치료방법이 없지만, 폐경까지 이 불편함과 고통 속에 살던지 아니면 자궁을 적출해야 되는 것이다.


나의 자궁을 적출하기는 힘든 결정이었고, 지금도 힘든 결정이다. 그래서 나는 참고 살고 있었다. 매우 신경질적으로 변하면서 수십 알의 진통제를 먹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살던 중 미국에 가게 되었고, 나는 또 기대하게 되었다.

"삶의 스타일이 바뀌면 나아질지도 몰라" "스트레스도 줄어들 것이고!"


결론적으로 저 말은 반은 맞고, 반을 틀렸다.

기본적인 면역체계는 좋아진 것 같다. 빈번하게 걸리던 감기도 걸리지 않고, 뾰루지가 나는 예민한 내 피부도 안정이 되고, 미간의 주름도 조금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원래 부풀어 있던 내 자궁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여기서도 여전히 그날이 되면 힘들다. 단지 감사한 점은 언제든지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나는 이제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적출에 대하여 의사 선생님과 심도 깊게 상의해 볼 것이다. 용기를 내어 보려고 한다. 나의 삶을 조금 다정하게 감싸주고 싶다.


한국에서도 아플 때면 슬펐다. "너무 안달복달하면서 살았나"

미국에서는 아프니 진짜 슬프다. 당장 달려갈 병원도 복잡하고, 위로해 줄 순댓국도 없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귀찮아지는 하루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냥 서운하기만 하는 하루다.


창문너머로 즐겁게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좋겠다"


기쁨이라는 것은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하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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