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 씨는 회사에 도착하지 마자, 네이버 창을 띄우고 검색을 했다.
'코로나 시작일'
친절한 나무 위키 씨는 2019년 11월에 중국 후베이성우한시에서 처음으로 발생하여....라고 나와있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오래되었구나, 이렇게 마스크 착용하며 거리 두기를 하고 산지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우리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바로 거리 두기이다. 식당에서도 영화관에서도 교회에서도 회사에서도 칸막이를 하며, 때로는 띠어 앉으며 우리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야 했다.
민정 씨는 아침부터 마음이 복잡하다. 새삼 코로나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자 아침부터 검색을 하고,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고 난 다음에도 엄마와의 사이는 잘 유지되었으며, 좋았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수다를 떨어도 너그럽게 들어주셨고,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거릴 때에도 엄마는 묵묵히 아이들을 봐주셨다.
그런데, 그런 엄마와 나는 요즘 벽이 아닌 벽이 있고, 바이러스 전파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도 우리는 일명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우리 엄마♡)
"어, 엄마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전화가 오면 덜컥 겁이 나, 아프신 것은 아닌지 무슨 일이 있으신 것은 아닌지 첫마디는 항상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게 되었다.)
"그냥 전화했어"
(우리 엄마는 그냥 전화만 하실 분이 아니다, 분명 걱정거리가 있고, 끙끙거리다가 연락하셨을 것이다.)
"말해봐 엄마, 왜 무슨 일 있어?"
"네 동생 진수 말이야..."
"진수?"
(아! 나는 동생이름이 나오면, 직감적으로 금전적인 사고를 쳤을 꺼라 생각한다.)
"왜, 또 돈 빌려달래?"
그리고, 나는 쏘아붙이듯이 지금까지 걔한테 나간 돈이 얼마인데, 엄마는 엄마 노후걱정도 안 하냐, 이제 그만해라. 그런 말은 이제 듣고 싶지도 않다.
등... 한바탕 쏟아 낸다.
한참을 듣고 있다가 한마디 하신다.
"너도 자식 키워봐라, 그게 말처럼 그렇게 되나..."
"나도, 자식을 두 명이나 키우고 있지만, 그게 더 자식을 망치는 길인 거 몰라? 지금까지 엄마가 이래저래 해결해 준다고 가져간 돈만 얼마인 줄 알아? 그래서 걔가 지금까지도, 직장은 다니는 둥 마는 둥, 일만 저지르고 있잖아?"
"알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란다.."
"언제는 마지막 아니라고 했어? 말 나온 김에 지금까지 엄마 집에서 밥 먹으면서, 핸드폰요금까지도 다 해결해 주면서, 도대체 나는 이건 아닌 거 같아. 이번만은 내 말을 듣고, 독한 마음을 먹고, 딱 잘라 안 해줬으면 좋겠어"
"그랬다가, 네 동생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떻하려고?"
"원래 죽는다 죽는다 하는 사람은 안 죽어.."
모진 말을 내뱉어 버렸다. 아치 했지만,.. 연이어 나는 말하기 시작하였다.
"엄마, 지금 장난하는 거 야!, 그 돈 있으면, 길에 노숙자한테 갖다 줘, 그럼 고맙다는 말이라도 듣지 않겠어?"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내 말이 틀렸냐고, 나는 지금까지 삶이 평탄하기만 했을 것 같아? 그래도 엄마한테 금전적인 부탁 한 번을 하지 않았어!"
"엄마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아빠가 힘들게 일궈놓고 가신 돈이고, 그 돈에는 내 몫도 있다고 생각해"
"너 정말 서운하다. 너도 사위도"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한테 왜 서운해? 진수한테 그렇게 퍼다 줄 때 나한테 뭐 해준 거 있어? 나도 서운해. 엄마 나한테 선을 넘은 것 같아. 끊을 께"
...................
사실, 나는 엄마 돈에 대하여 지금까지 한 번도 내 몫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화가 나니 이 말 저 말 다 나와버렸고, 회사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난 간다는 사실을 잊은 채 엉엉 울었다.
나는 동생이 엄마한테 마흔이 다되어서 까지 의지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가 싫다.
이제 엄마도 70이 다 되어 가고, 이리저리 안 아픈 곳이 없는데, 그런 늙은 엄마에게 이런저런 권모술수를 써서 돈을 타가는 꼴이 매우 역겹다. 그리고,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런 자식에게 거절 한번 못하고, 어떻게 될까 봐 나쁜 선택을 할까 봐 질질 끌려 다니는 엄마가 무척이나 안타깝다.
엄마는 58년생 개띠이다. 유독 58년생 개띠라는 말은 많이 회자되고 있다. 1953년 한국전생이 끝난 베이비붐의 세대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겪은 세대이며,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세대라고 한다. 자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로, 가난은 물러줄 수 없다며, 그들은 아끼고 아껴가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축하고 그랬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본인은 버스비 아껴가며, 걸어 다니고, 외식은 특별한 날 아니면, 꿈도 못 꾸며, 대부분 집에서 열심히 식사를 차렸으며,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도 이겨내야 했고, 회사 다녀온 어깨 무거운 가장인 남편의 짜증도 다 받아내야만 했다.
어쩌면, 의지할 것은 자식밖에 없을지도 모르고, 효도를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시대일지도 모른다.
특히, 아직까지 남아선호사항이 남아있던 시대였기에, 나보다는 남동생을 훨씬 더 의지하였을 것이다.
조금 더, 조금 더 도와주면 불같이 일어날 꺼라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금전적인 사고를 치고, 엄마에게 전달받기도 5년이 다되어간다. 그동안 남동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바라는 금액도 액수가 커지고, 가끔 엄마한테 소리도 지르는 망나니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제 듣기가 싫어졌다.
내가 이런저런 조언 아닌 조언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타일러도 보고, 다해보았지만, 도통 엄마는 내 말을 듣지도 않았으며, 되러 네가 보태준 것이 뭐가 있냐며, 서운해하셨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내 마음이 다른 때보다 너무 힘들었다.
지쳤다. 내 마음도...
회사에 육아만으로 벅찬 딸의 모습을 외면 한 채 동생을 걱정만 하는 엄마의 모습이 말소리가 보기도 듣기도 싫어졌다.
연락을 끊고, 왕래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연락을 할 때도 매우 간단하게 형식적은 대화만 하고, 만나는 횟수는 줄이고, 만나야 한다면 남편과 아이들을 동행하고 깊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5달을 보내고 있는 지금...
화도 많이 줄어들고, 엄마라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된다.
어쩌면
"옆집 할머니 보듯 하는 그 하루가 나의 문을 열어 줄 마법의 열쇠라 믿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