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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 Nov 04. 2024

3. 내가 살면서 가졌던 네 번의 변곡점

(2) 사회에 눈을 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운이 좋게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는다.     

두 번째 변곡점은 대학을 다니면서다. 어렴풋하게나마 개인적 출세를 생각했던 내가 사회, 국가, 민족에 눈을 뜬다. 쬐금 어른이 된다.

      

대학에 입학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1학년을 보낸다. 그러나 그 당시 대학가의 분위기는 나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당시는 군부 독재 시절로 반독재 반미투쟁 등 학생운동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였다. 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소극적이지만 학생운동에 양심적 가담자로 참여하게 된다. 사회, 국가와 민족 등에 대해 생각했고, 나 개인의 출세나 안위보다는 사회정의를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학생운동과 관계되는 사회과학 서적 연구 서클 활동을 하고, 교내·외 데모에도 나름 적극 참여했다.      


허나 다른 한편, 그 이외의 시간은 룸펜으로 살았다. 신림동 하숙생들 그리고 친구들과 술과 당구, 포커, 바둑 등 주색잡기(색은 제외)로 소일.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후회되는 귀중한 시간이다. 생각만 거창(?)했지, 사실 사회를 위해 실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뭘 하며 살 것인가?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대학을 아무 생각 없이 졸업했다.      


군대 신체검사를 받은 상태에서 군 입대 영장이 나올 때까지만 용돈벌이라도 하자라는 천진난만한 생각으로 친했던 과 친구(사실 경영학과 학생회장)와 함께 금호그룹에 입사한다. 당시 군 미필을 받아주는 기업이 금호그룹과 코오롱그룹 단 두 개뿐이었다. 당시 금호가 아시아나 항공을 인수합병한 상태였기에, 우리 둘은 아시아나 스튜어디스와 사귀어 보자라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입사했다. 아쉽게도 금호(금호그룹의 지주회사이지만, 타이어가 주력품목임)에 배속되어 스튜어디스는 만나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성인으로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스튜어디스는 아니지만, 많은 여직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나는 무난한 사회생활을 즐겼다. 야근도 하고, 놀기도 하고, 술도 마음껏 먹고.... 같이 입사한 친구는 근무 중 어느 날 경찰들이 들이닥쳐 대학 때 불온 서클에서 활동하면서 뭔가를 조직했다는 죄목으로 잡혀가고, 나는 그해 6월에 머리를 빡빡 밀고 논산 훈련소에 입대한다.     


원래도 몸이 크지만(181에 당시 몸무게 88), 회사에서 산해진미에 술을 먹으면서 운동은 한 개도 안 했던 데다가, 25살 나이에 군대에 갔으니 굼뜰 수밖에 없었다. 제일 기억나는 것은 철모다. 나는 모태 얼큰이인지라 군대 철모가 맞는 게 없어서 평소에 겨우 턱끈으로 조여서 쓰고 다녔다. 그러다가 얼차레를 받을 때면 철모가 벗겨져 굴러가는 바람에 도중에 찾으러 허둥거렸다. 그러다가 뭐 하냐고 더 혼나고....     


군대 말년 병장 시절에는 고민이 깊었다. 군 입대 전까지만 임시로 다닐 생각이던 회사에 다시 복직을 해서 평범한 셀러리맨으로 살아야 하나?,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야 하나? 야간에 보초를 서는 2시간 내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고민을 거듭했다. 고민을 어찌나 했던지 당시 몸무게가 10이상 빠졌다. 하지만 결론은 쉬운 쪽을 택했다. 당시 나이가 벌써 27살인데 뭘 새로 시작할 수 있단 말인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민을 포기했고, 군 입대 전 있었던 그 부서로 복직한다. ‘회사에서도 날 좋아하는데, 그냥 재미나게 살자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한때 사회에 눈을 떴을지언정, 배짱은 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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