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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Mar 21. 2023

[순우의 여행노트 12] 그 섬에 그가 있었네

제주의 벌판과 언덕 그리고 바람

해녀박물관을 나와서 찾아간 곳은 어느 아트 갤러리였다. 박물관 남쪽으로 차를 몰아 30분쯤이 걸렸다. 바닷가로부터 한라산 쪽으로 조금 들어와 귤 농사를 짓고 있는 몇몇 아늑한 농가가 있는 마을이다. 폐교된 초등학교 교실을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꾸민 『김영갑갤러리두모악』. 김영갑이라는 사진작가가 만든 공간으로 교실은 자신이 찍은 사진 전시관이, 교정(校庭)은 역시 ‘두모악’이라는 말이 들어간『두모악정원』이 된 곳이다. ‘두모악(頭毛岳)’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다. 제주를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한 제주의 해녀들을 두모악이라고 한다고도 한다.


서너 개의 교실과 교무실을 하나로 터서 만든 소박하기 그지없는 전시 공간이다. 갤러리 건물 입구의 매표소 앞 공간에는 사진작가 김영갑이 쓴 몇 권의 책과 사진집, 그의 사진이 담긴 그림엽서를 진열하고 팔기도 한다. 전시실이 있는 건물은 애초에 거칠게 지어진 것도 같았고 많이 낡아도 보였다. 건축물의 부서진 부분을 때우고 페인트를 발라서 겨우 비바람을 면할 정도의 느낌을 주는 허름한 공간이다. 어둑하게도 느껴지는 전시 공간에는 그가 한결같이 사랑하고 천착했던 제주의 바람과 언덕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외롭고 가난하고 또 쓸쓸하고 불행해 보였지만 무한하게 자유롭고 행복했던 김영갑이라는 사람의 혼이 깃들어있는 곳이다.


갤러리 전시 공간을 품고 있는 오래전 학교의 교정은 그의 또 다른 제주 사랑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다. 애초에 제주의 풀과 나무가 자라고 돌담이 있었던 곳이 그의 손길로 새롭게 태어난 자연 공간이다. 『두모악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이 정원은 2006년『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한국의 ‘잘 가꾼 자연문화유산’의 하나로 등재한 곳이기도, 2015년에는 ‘한국인 100대 관광지’의 하나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자신의 갤러리를 꾸미고 정원을 가꿨던 사진작가 김영갑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과 함께 그의 영혼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지난해 그의 타계 10주년을 추모하는 ‘바람’ 전이 서울과 이곳 갤러리에서 순차적으로 열렸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나의 여행 목적지로 점을 찍어 두었던 곳이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전경(자료: 네이버)

그곳에 그리운 섬이 있네

그는 “사랑하는 여인처럼 늘 섬이 그리웠다”고 했다. 서울에 살던 젊은이 김영갑은 스물여섯의 나이에 처음으로 제주를 찾았다. 평범한 모습의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1980년대 초의 제주도였다. 그는 섬의 평화로움에 매료되어 가슴에 뭔가 맺히면 그것을 풀기 위해 제주를 찾았고, 때로는 마라도로 건너갔다. 제주도도 마라도도 섬은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은 비단 그 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애초에 모든 자연의 모습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는 “손바닥만 한 창으로 내다본 세상은 기적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고 썼다. 또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이라고 말했던 그는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2004)』에서 평범한 자연, 아무렇지도 않은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그 경이로움에 대해 이렇게 썼다.


“똑같은 장소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모습은 같은 계절이라도 날씨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다. 사람의 감정이 고여 있지 않고 늘 변화하듯, 자연도 순간순간 모습을 달리 보여준다. 그러기에 일 년 열두 달 같은 장소에서 바라보아도 늘 새로운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자연의 조화란 그렇듯 오묘하고 경이로운 것이다.(p.181)”


그가 한결같이 사랑하고 천착했던 섬 제주에는 바람과 언덕, 중산간의 수풀과 오름... 변화무쌍한 자연이 있었다. 또 그가 좋아하는 “섬의 외로움과 평화”가 있었다. 특히나 그는 그 섬 속의 또 다른 섬 마라도를 발견했다. 그 섬 자체가 삶을 깨닫게 해주는 경전이자 성지였다는 마라도를 그는 이렇게 적었다. “마라도에 가면 세상이 보인다. 작은 섬 안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있다. 종교, 철학, 문학, 회화, 음악, 무용이 모두 다 있다. 갯바위 파도는 시를 읽어주고 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노래하며, 억새는 춤추고 하늘과 바다는 그림을 그린다. 고독과 자유를 강의하고 구름은 삶의 허무를 보여 준다.(p.152)”

김영밥의 자전적 에세이『그 섬에 내가 있었네(2004)』 표지

그 섬을 지독히 사랑했네

제주를 알기 시작하고부터 불과 4년째인 1985년 그는 아예 제주도에 자리를 잡았다. 자신의 안에서 부는 바람을 어쩌지 못해 전국을 떠돌다가 바람 타는 섬, 제주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는 제주 사람들도 미처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섬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사진에 표현하고자 했다.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사진 속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제주의 풍경이 담겨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흔들리는 풀과 바람과 언덕, 돌담을 따라선 비틀린 나무들, 햇살이 내리쬐는, 안개가 내려앉은 들판... 사람들이 제주 하면 쉽게 떠올리는 한라산이나 성산 일출봉, 한라 산록의 철쭉, 짙붉은 동백이나 화사한 색깔의 꽃과 같은 것들은 없다.


젊어 시작된 그의 제주 사랑은 끝이 없었다. 제주를 무조건 좋아하고 사랑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의 생각이 각별하고 독특했던 만큼이나 그는 언제나 외롭고 쓸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아무도 그의 사진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래서 쓸쓸하고 가난했지만, 그 외로움과 아픔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제주도가 지닌 모습 중에서도 그의 외로움과 아픔을 닮은 것만을 골라 찍었는지도 모른다. “늘 혼자인 나도 외로울 때가 있었다”는 그는 “온종일 바다와 하늘로 공허한 마음을 채우며” 스스로가 더욱 고독해지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의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자신의 마음만큼은 언제나 풍요로웠다. “욕망처럼 무서운 건 없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큰 어리석음은 없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또 그는 스스로가 선택한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가 부끄러워했던 것은 자신의 남루함도 가난함도 아닌, 그보다도 더 열심히 살아가는 해녀와 같은 사람들, 그들의 노동을 부끄러워하였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지니는 평범한 가치의 거의를 포기하고 자신의 마음이 속삭이는 곳을 향하여 올곧게 줄기차게 부단히 나아갔다.


제주와 자신의 사진 세계에 무서운 열정을 불살랐던 자유로운 영혼. 그는 오로지 제주를 짝사랑하며 제주의 곳곳을 찾아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리고 그는 꾸준히 자신의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마음을 열어주는 황홀」,「제주의 오름 그리고 바람」,「구름이 내게 가져다준 행복」,「나의 이어도」,「숲속의 사랑 시화전」,「용눈이 오름」,「바람에 실려 보낸 이야기들」展을 열었다. 그리고 2002년 그가 꾸민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을 열고부터는 그곳에 그의 사진을 펼쳐놓았다. 그가 작고한 이후 갤러리 개관 10주년이 되는 2012년에는 특별전시회「바람」展이 열리기도 했다.

김영갑 사진(자료:  김영갑 사진전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그러나 그의 운명은 그들 편안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가 더이상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다잡을 수 있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들며 그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들었다. 근육이 서서히 위축되며 결국은 신체의 기능이 마비되는 불치의 루게릭병이었다. 그의 제주 사랑, 독특한 제주의 사진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시간이 가며 나빠지는 병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주 사랑에 더욱 몰입했고 더 많은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그리고 그가 사진 속에 담은 제주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남겨두고 싶은 단 한 가지, 한 번의 욕심을 위해 마지막 투혼을 불태웠다.


그는 서서히 진전되는 병세의 악화 속에서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폐교인 삼달초등학교의 교실을 보수하고 개조하여 사진 전시관을 만드는 일에 착수하였다. 약 2년에 걸친 노력 끝에 버려졌던 학교의 교실과 교정은 소담하고 정겨운 모습의 『김영갑갤러리두모악』으로 거듭 태어났다. 오래된 교실을 수리한 전시 공간은 모던한 갤러리의 분위기와는 판이하다. 스포트라이트도 없는 벽에 그냥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 마치 바깥의 수수한 풍경 속에 있는 것만 같다. 너른 들판, 길게 구릉진 언덕, 바다 등을 보여주는 가로의 길이가 긴 사진들이다. 사진 속에서는 바람이 불고, 쓸쓸함이 배어있는 것 같다.


전시실보다도 더 소담하고 정겨운 느낌을 주는 것은 교정의 정원이다. 제주의 고유한 풀과 나무를 심어서 아기자기한 화단을 만들고 작은 숲과 오솔길을 만들었다. 일하는 인부들을 다그쳐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 돌담을 쌓고,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교실 주위와 정원 가득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있건만 대부분이 색다른 것들이라 이름을 알 수가 없다. 제법 우람한 나무들 몇 종류의 이름을 갤러리 입장권을 파는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답을 주지 못한다. 봄이 일찍 오는 제주지만 나무들의 가지는 아직도 텅 비어 있고, 화단은 휑하다. 돌담길을 따라 꽃을 피운 수선화만이 생기를 느끼게 해준다.

김영갑 사진(자료:  김영갑 사진전집)

갤러리의 문을 열고 3년이 지난 2005년 그는 병이 주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지독히도 외로웠고 가난했지만, 그 외로움과 가난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고, 항상 자유로웠고 스스로 떳떳했다고 회고했다. 또 자신은 스스로 행복하고 즐거웠으며 아름다움을 만끽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과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 이루었다고도 했다. 그는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모든 것들을 이곳 두모악 갤러리와 정원에 남기고 이곳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그가 사랑했던, 그가 다시 태어났을 나무와 풀이 어떤 것인지는 그들이 무성하게 피어난 여름날 다시 한 번 와서 살펴보아야 할 듯싶다. 갤러리 밖 오솔길을 돌아 나오는 2월의 오후는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2016.02.27.)


*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은 그의 사진전집『김영갑 - Wind... Field... Orum... Cloud 1957~2005』(2006 다비치 발간)에 수록되어있다.


*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은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437-5(삼달로 137)에 있으며, 홈페이지 www.dumoak.com 을 통해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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