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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May 11. 2023

[순우의여행노트 14-6] 백두산 서녘 풍경

백두산식물탐사기(6)

  백운봉 자락에서 백두산 서녘을 바라보다

  12시 50분.

  계곡 아래 쉼터를 출발한지 2시간 10분 만에 백운봉(白雲峯)이 가깝게 바라보이는 표고 2,6다다랐다의 산등성에 다다랐다. 백운봉의 높이는 2,691미터로 백두산의 서남쪽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하지만 백두산의 최고봉은 아니다. 백두산의 최고봉은 산 동쪽의 병사봉(兵使峯)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2,744미터이다. 북한에서는 이 봉우리를 장군봉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그 높이도 원산 앞바다를 기준으로 2,750미터라고 주장한다.

      

  그 이름이야 어떻든 병사봉을 최고봉으로 하는 백두산은 우리 한반도의 모든 산을 거느리는 조종산(祖宗山)이자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는 물론 한반도 면적보다도 더 넓은 만주 전체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다. 그런데 백두산을 중국 사람들은 장백산(長白山)이라고도 부른다. 그들이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백두산 서녘의 최고봉 백운봉은 옅은 비안개 속에 신비로운 모습으로 숨어 있다. 이 봉우리를 중심으로 그 오른편은 백두산의 서남쪽, 그 왼편은 서북쪽이 되는 셈이다. 이제 이 산등성을 넘어 백두산의 서북 편을 향하게 된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등성 좌우의 모습이 확연하게 다르다. 왼편의 서남쪽은 조금은 완만한 경사에 온통 푸르름이 가득하고 부드러운 모습이다. 이에 비해 오른편의 서북쪽은 더 가파르고 거칠어 보인다. 크고 작은 돌들이 흘러내린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도 한다. 돌이 많은 만큼 땅 위를 덮고 있는 풀들도 서남쪽만큼 무성하지 않다. 오랜 세월을 두고 조금이나마 더 많은 햇빛을 받은 남서 쪽이 훨씬 더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의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백운봉을 오른편에 두고 가파른 벼랑길을 돌아 걷기를 10분여, 오후 1시가 되는 시각 백운봉을 동편 방향으로 쳐다볼 수 있는 건너편의 평평한 산등성에 다다랐다. 안개비가 끊이지 않고 내리고 있지만, 이곳이 점심을 들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난 지 6시간, 일행 모두가 시장기를 느끼고 있던 터라 차가운 도시락밥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중의 식사를 즐겼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밥도 반찬도 아침의 도시락과 똑같은 것이었지만 더 맛있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은 뒤 배낭을 꾸리고 나서는 회원 모두가 함께 모여 기념 촬영을 했다. 우리는 ‘영월자원식물연구회 백두산자생식물탐사’라는 플래카드를 앞에 들고 남은 팔들을 모두 번쩍 들어 올렸다. 산 정상이나 천지를 배경으로 플래카드를 들고 찍는 단체 사진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 중국 당국의 방침이라고는 하지만 중국인 안내자는 한 컷의 단체 사진 정도는 눈을 감아주었다.  

   

  차일봉과 용문봉을 향하여 

 

  13시 35분.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우리는 천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칼데라 안벽 모서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걷히지 않는 비안개 때문에 천지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칼데라는 왼편 산등성이 아래로 내려가다가 다시 솟아올라 높은 봉우리 하나를 만들고 있다. 2,602미터의 녹명봉(鹿鳴峯)이다. 노루가 올라와서 울고 내려갔다고 해서 그런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어인 까닭으로 이 높은 곳까지 노루가 산을 올랐을까? 백운봉을 오르는 길에서 본 깡충거리던 토끼 우는토끼의 모습이 떠올랐다.    

 

  백운봉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향하는 산머리 길에서는 다시 천지의 안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천지 안벽 쪽으로 조금씩 흙이 무너져 내린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이토록 가파른 벼랑이지만 흙이 붙어있고 햇빛이 드는 곳이면 어디든지 풀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흙이 무너져 내리는 칼데라 바깥쪽의 모서리에 두메자운, 두메양귀비 따위들이 위태롭게 뿌리를 내리며 꽃을 피우고 있다.  

가파른 벼랑에 핀 꽃들

    

  서북편의 산등성, 산허리에 가장 많이 자라고 있는 것들은 역시 노랑만병초, 들쭉, 호범꼬리, 담자리꽃나무, 두메자운, 두메분취 따위의 땅 위에 드러누운 풀과 나무들이다. 7월 초를 장식하는 백두산 서편의 가장 대표적인 들풀들은 아마도 이들이 아닐까 싶다.


  40여 분의 걷기를 계속, 14시 15분쯤부터는 내리막길의 시작이다. 표고가 낮아지면서 풀포기의 크기가 커지고 발아래 밟히는 땅의 감촉이 폭신해진다. 하루종일 내리고 있는 이슬비를 흠뻑 머금어 풀과 흙 모두가 흠뻑 젖어있다. 밟는 땅이 마치 물을 흠뻑 먹은 스펀지와 같다.


  내리막길 오른편으로는 큰 봉우리 두 개가 솟아 있다. 차일봉(遮日峯)과 용문봉(龍門峯). 2,596미터 높이의 용문봉은 백두산 서쪽에서 천지를 조망해볼 수 있는 마지막 봉우리다. 우리의 발길로부터는 멀리에 있지만, 차일봉의 무너져 내릴 듯이 가파른 봉우리가 우뚝하다. 차일봉 아래쪽으로는 들쭉이 천지라는데 이제 막 싹들이 돋아나고 있는 모양이다. 검은 자주색 열매는 갈증도 풀어주고 허기도 달래준다고 하는데 그 열매는 접할 길이 없다. 더 아래쪽에는 등대시호가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곳이 있다고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찾아보지 못했다.   

       

  한 시간쯤의 내리막길은 완만한 경사의 부드러운 언덕길이다. 용문봉과차일봉의 서편으로 여러 갈래의 골이 줄줄이 흘러내리며 초록의 대초원을 만들고 있다. 곳곳에 노랑만병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2007.7.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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