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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May 04. 2023

[순우여행노트14-5] 고산 풀과 나무들이 살아가는 법

- 백두산식물탐사기(5)

  15분간의 휴식을 마치고 10시 45분 출발.

  서남쪽을 향해 있는 산기슭. 오르막길을 기어오르듯 걷는 중에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의 모습이 한결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경사진 길을 오르자니 자연히 고개가 땅과 가까워지고 발아래 풀들을 가깝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허리를 굽혀 발아래 나 있는 풀꽃들을 자세하게 살펴보게 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자세가 된다. 그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등을 굽히는 별도의 수고가 필요 없다. 발길이 닿는 곳, 무릎이 스치는 곳, 손을 짚는 곳곳에 키를 낮춘 온갖 풀과 나무들이 아주 가깝게 다가온다.

     

  어찌 그리도 많은 종류의 풀과 나무들이 다투어 자라고 있을까. 여기저기의 돌무더기와 바위 틈새를 제외하고는 갖가지의 풀과 나무들이 초록 매트를 깔아 놓은 듯 촘촘하게 돋아나 있다. 금매화, 매발톱꽃, 바위구절초, 곰취와 두메분취, 개머위(Petasites rubellus (J.F.Gmelin) Toman, 국화과)와 돌꽃, 싱아(Aconogonon alpinum (All.) Schur, 마디풀과), 구름국화, 화살곰취, 담자리꽃나무, 노랑만병초와 들쭉나무, 비로용담(Gentiana jamesii Hemsl. for. jamesii, 용담과)과 산용담(Gentiana algida Pall., 용담과), 등대시호(Bupleurum euphorbioides Nakai, 산형과), 두메투구꽃(Veronica stelleri var. longistyla Kitag., 현삼과), 좀참꽃나무(Rhododendron redowskianum Maxim., 진달래과), 호범꼬리(Bistorta ochotensis (Petrov ex Kom.) Kom., 마디풀과), 가솔송, 고본(Angelica tenuissima Nakai, 산형과), 나도개미자리(Minuartia arctica (Steven ex Seringe) Graebn., 석죽과), 구름범의귀, 돌창포(Tofieldia nuda Maxim., 백합과), 두메양귀비와 두메자운, 다람쥐꼬리(Lycopodium chinense H.Christ, 석송과), 애기냉이, 숙은꽃창포(Tofieldia coccinea Rich., 백합과).....    

 

  이들 외에도 우리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풀꽃들이 얼마나 더 많을 것인가. 지금은 피어나지 않았지만 곧이어 피어날 풀꽃들이 또 얼마나 더 많을 것인가. 계곡 아래로부터 백운봉에 이르는 두 시간여의 오르막길이야말로 백두산의 풀꽃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잠시나마 지켜볼 수 있는 백미의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록에 따라 좀 차이가 있지만, 백두산에는 1,400여 종의 식물과 400여 종에 달하는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어떤 자료에는 300과 2,7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의 식물의 종 수가 모두 4,300여 종에 불과한 것을 보면 백두산 지역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다양하게 자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백두산의 식물의 다양성 중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것 중의 하나는 진달래과 식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백두산에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9속 23종의 진달래과 식물의 대부분이 자생하고 있다. 우리가 본 것들만도 들쭉나무, 노랑만병초, 좀참꽃, 담자리참꽃을 비롯해서 가솔송, 월귤, 홍월귤 등 여러 종류다. 이들 참꽃류의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탐사산행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의 풀과 나무들은 표고가 높아지면서 그 종류를 달리하기보다는 그들의 몸집을 줄이고 키를 낮춤으로써 자신들의 삶의 영역을 넓혀나간다. 높은 곳에 있을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고 작아짐으로써 보다 적은 것으로도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지혜를 실천한다. 생존을 위해 대지에 더욱 가깝게 몸을 의지한다.      


  산행을 출발했던 아래쪽 산장이 있던 곳의 두메분취는 그 키가 10cm 이상으로 컸고 잎새 또한 5~6cm의 길이와 폭으로 제법 널찍했다. 헌데 백운봉을 오르는 산허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두메분취는 그 키와 잎새의 크기가 점점 작아져서 키 높이는 채 3cm가 넘지를 못하고 그 잎새의 크기 또한 엄지 하나의 크기 정도에 불과하다. 아래쪽에서는 한 뼘 높이 정도까지 키를 키웠던 연분홍 꽃자루의 호범꼬리 풀은 겨우 2~3cm의 키로 간신히 꽃 꼬리를 올리고 있다. 잎새의 길이가 2cm가 넘지 않던 담자리꽃나무의 잎새 크기도 고도가 높아지면서 채 1cm가 되지 않는 작은 크기로 작은 몸을 더욱 작게 줄인다.      


  백운봉 가까운 산등성에 등을 붙이고 있는 돌창포의 잎새 크기는 1cm를 넘을까 말까 하는 정도다. 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나도개미자리도 그 키가 3cm를 넘지 않는다. 그 키가 2m까지도 높게 자라는 물싸리(Potentilla fruticosa var. rigida (Wall.) Th. Wolf, 장미과)가 이곳에서는 2cm의 크기밖에 안 된다. 버드나무의 일종인 콩버들(Salix rotundifolia Trautv., 버드나무과) 또한 그 키기 새끼손가락 길이를 넘지 않는다. 고도가 낮은 아래쪽에서는 더부룩하던 돌꽃도 최대한 키를 낮춰 땅바닥에 바싹 붙어있다. 작고 작아진 들쭉나무는 풀인지 나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들쭉의 새순은 풀잎보다도 더 작고 여리다.     


  2,000m가 넘는 높이의 고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풀꽃과 나무들의 모습은 참으로 앙증맞기도 하고 눈물겹게 정겨워 보이기도 한다. 누구의 키가 더 크다 할 것 없이 그만그만한 높이의 작은 키로 한데 어울려 산다. 돌꽃, 개미자리, 산용담, 호범꼬리와 같은 풀꽃과 담자리꽃나무가 함께 누가 나무이고 누가 풀인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다투듯 어깨동무해서 자라고 있다. 또 다른 곳에는 돌꽃과 개감채, 산용담, 담자리꽃나무, 두메분취 따위들이 한데 어울려 번갈아 꽃 때를 차지하며 자라고 있다. 세찬 비바람을 막아주는 돌멩이 옆의 풀들은 조금이나마 더 키를 키운다.      


  백두산의 기후는 변화무쌍하다. 오늘만 해도 비가 내리며 안개가 끼어 있다. 다행히 오늘은 바람이 강하게 불지는 않지만 보통 초속 15m 내외의 강풍이 분다. 천지 부근의 7월 평균 기온은 섭씨 10도, 1월의 평균 기온은 영하 24도라고 한다. 기온이 낮게는 영하 44도까지도 떨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눈이 내리는 기간이 연중 255일 내지 260일, 서리가 내리지 않는 날 수가 연중 불과 20여 일, 9월부터 이듬해 5월 사이에는 30~50cm의 눈이 쌓인다. 백두산은 1,400m의 표고를 이루고 있는 개마고원 위쪽으로 1,700~2,000m 높이의 아고산대, 2,000m 이상 높이 고산대의 식생대(植生帶)를 아우르고 있다.      


  고산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식물들의 지혜는 이뿐만이 아닌 듯싶다. 위로 드러내는 작은 몸집과는 달리 이들은 무척이나 깊고 튼실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호범꼬리 한 포기를 살며시 당겨본다. 땅 위의 풀포기 크기로 보아서는 보잘것없게 생각되었던 그의 뿌리가 무척이나 견고함을 알 수 있다. 힘을 주어 잡아당기자 뿌리가 끊어져 버리고 만다. 아주 깊은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고 있다. 담자리꽃나무 역시 그랬다. 힘을 주어 담자리꽃나무 포기를 잡아당기자 속 뿌리를 감싸고 있는 겉꺼풀만이 벗겨져 버리고 만다. 뿌리 윗부분의 피질이 벗겨질지언정 뿌리가 뽑히지는 않을 만큼 단단하게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다른 풀들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두 시간쯤을 걸어 오른 고도 2,560m 지점. 쉬지 않고 내리는 이슬비가 만들어 내는 아주 작은 도랑물이 흘러내린다. 양손으로 물을 받아 목을 축인다. 목이 말랐던 터라 물맛이 더욱 시원하다.

(2007.7.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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