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자주 우울하고 가끔 즐겁습니다4

by 만자

나는 정신과 약을 반강제로 그만 먹게 되었다. 이직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약국이었다.

반차가 어려운데 사정을 말하면 들어주겠지만 차마 입 밖으로 ‘정신과 가야 해서 먼저 퇴근하겠습니다’가 나오지 않았다. 이전에는 일했던 곳은 오후 근무가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병원을 갔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안 맞았다. 아침에 출근하여 6시 퇴근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퇴근 후에도 하는 병원을 찾았지만 예약제였다. 심지어 한참 후에 갈 수 있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 퇴사를 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 벌기 위해 병원에 못 가는 이상한 상황이 돼버렸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게 생각났다. “약을 도구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그만먹어도 괜찮은 단계였다. 결국 나는 약 없이 버텨보기로 했다.

항상 힘들었지만 약 덕분인지 기분이 아주 아래까지 내려가지 않았다. 지상 1층과 지하 1층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갔지만 약을 끊고 나니 지하로 너무 쉽게 곤두박질쳤다.

그때부터 코인노래방을 갔다. 가끔 하루 정도 빼먹는 날이 있었지만 거의 매일 갔다. 노래를 부름으로써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해졌다. 노래에서 흘러나오는 음과 가사에 맞춰서 감정을 쏟아내며 불렀다. 좀 더 잘 부르고 싶어서 보컬학원도 등록했다. 그때는 퇴근 후 걸음이 자연스럽게 노래방 향했다. 나름 생존방식이었다. 노래방은 스트레스 조절에는 가장 좋은 행동이었으나 나의 기분을 다스릴 수 있는 만능이 아니었다.

기분이 아래로 갈 때마다 자주 가는 단골 술집으로 갔다. 그럴 때마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혼자서 잘 살아도 어떤 시점에는 혼자가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 술잔을 부딪치는 걸로 위로를 건네는 상대가 있으므로 나의 우울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약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가졌다.

그렇게 우울을 비우려고 노력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가득 차오를 때면 자기 전에 울었다.

하지만 축농증을 달고 사는 나는 코 막혀서 울기 싫었다. 그러다 댐이 터져버린 듯 눈물을 막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그렇게 쏟아냈다. 3자가 보면 짠한 순간인데, 울고 있는 당사자는 속 시원한 순간이다. 울고 나면 슬픔이 비워지고 다른 감정이 차오른다. 주로 긍정적인 감정들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효과가 더 좋았다. 감정은 차곡차곡 쌓아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감정 해소 방법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자주 우울했지만, 가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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