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섞인 위로들
얼마 전 드라마를 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이 실의에 빠져 아무도 없는 술집에 혼자 앉아 술을 마시는 장면이었다. 기억에 남은 이유는 장면보다, 그 다음에 나온 대사 때문이었다.
혼자 앉아 있는 주인공을 본 직장 동료가 다가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공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했다.
“내일 술 좀 깨고, 맑은 정신으로 얘기해 줄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하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술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뭘 맑은 정신으로 얘기해요. 우리가 흐린 정신으로 들을게요.”
그러고는 다 함께 취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그 뒤 주인공은 그제야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스무 살에, 목표로 하던 일을 예상치 못한 이유로 포기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복싱 선수를 꿈꾸며 열심히 운동했지만, 부상과 후유증으로 선수라는 꿈을 접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제 취미로만 운동하려고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괜찮은 척을 하고 다녔다. 동정 섞인 말들이 듣기 싫었고, 그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위해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목표가 갑자기 사라진 자리에 허무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만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함께 운동하던 지인 중에 특전사 장교로 복무 중인 형이 있었는데, 나에게 특전사로 군생활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아무것도 없던 내 앞에 갑자기 길이 하나 생긴 느낌이었다. 어차피 군대는 가야 했고, 그동안 만들어 놓은 몸도 아까웠다. 무엇보다 형이 보여준 사진 속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날 집에 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특전사에 지원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복싱 선수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보다 더 강하게 반대하셨다. 허락은 받지 못했지만, 지원 서류와 신청서는 이미 제출했고 시험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허락은 한참 뒤에야 받을 수 있었다.
시험 준비는 힘들었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미 만들어 둔 몸은 체력 시험 특급 기준에 맞추는 데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험 일주일 전에는 안정적인 기록이 나왔고, 걱정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오만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잘해서 감독관 눈에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시험 당일 아침, 가볍게 몸을 풀고 아버지가 시험장까지 데려다주셨다. 가는 내내 아버지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검사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려는데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잘하고 와.”
그 간단한 말이 유난히 좋았다.
검사장 안에는 몸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키와 몸무게를 재고, 시력 검사를 하기 위해 검사판 앞에 섰다. 원래 시력이 좋지 않았지만, 기준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력 검사를 하던 중 검사관이 정밀 검사장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검사를 받자 의사가 물었다.
“평소에 사물이 하나로 보였나요?”
나는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 증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난시가 심하다는 말을 들어서 당연한 줄 알았다. 사는 데 문제도 없었다. 이런 눈으로 복싱 시합도 여러 번 나갔다. 상대의 주먹이 두 개로 보인다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둘 다 진짜였으니까.
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특전사 시험 응시가 불가능하다고. 나는 난시가 아니라 한쪽 눈이 바깥으로 돌아가는 사시였고, 사시는 시험 응시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나는 체력 시험도 보지 못한 채, 한 시간 만에 시험장에서 나왔다.
밖에는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며 누군가와 통화하고 계셨다. 나를 보자 바로 다가오셨다. 벌써 끝났냐며 고생했다는 말을 하고, 밥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나는 시험도 못 보고 나왔고, 사시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잠깐 멈칫하시더니 괜찮다며 바로 근처 대학병원으로 데려가셨다. 검사 결과는 같았다. 사시가 맞았고, 방치하면 외관상 더 안 좋아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었다. 시험을 잘 볼 거라 믿고 잡아둔 약속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약속을 취소했다. 시험 응시조차 못 했다는 말을 하기 창피했다. 집에 있으니 부모님 눈치가 보여 더 불편했다.
나는 친구를 만나고 온다고 말하고 집을 나왔다. 사람은 만나기 싫었고, 그렇다고 바로 돌아오기도 애매했다. 결국 집에서 조금 떨어진 편의점으로 갔다. 소주 두 병과 과자 한 봉지를 사서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았다.
혼자 궁상 떨며 마시다 보니 소주 두 병을 다 비웠고, 이미 많이 취해 있었다. 한 병을 더 사러 나왔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오늘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이었다.
약속도 취소해놓고 혼자 술 마신다며 구박을 하던 중, 친구 한 명이 시험 얘기를 꺼냈다. 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넘겼겠지만, 그날은 정말 웃을 힘도 없었다.
“나중에 술 깨고, 맑은 정신으로 얘기해 줄게.”
그러자 친구들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취하면 되지.”
그리고는 내가 사 온 술을 나눠서 다 마셔버렸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웃음이 터지니 계속 웃겼다. 그날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나는 결국 모든 이야기를 했다. 시험에 응시조차 못한 일, 내가 사시라는 사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친구들은 전혀 예상과 다른 말을 했다.
“너 시험 봤어도 떨어졌어.”
“우린 네가 그냥 못생긴 줄 알았지.”
“우리도 우리 앞가림 못 하는데, 우리한테 답을 찾으려고 해?”
짜증 나는 말들이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말은 그동안 들었던 어떤 위로보다 위안이 됐다. 고작 스무 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나이였다.
우리는 그렇게 스무 살처럼 웃고 떠들다 집으로 돌아갔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가벼운 말투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가장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때로는 진지한 상담보다, 장난 섞인 말 한마디가 더 큰 힘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다음 날 푹 자고 일어나 친구에게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었다. 친구는 우연히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가 내가 혼자 궁상 떨고 있는 걸 보고, 다 같이 놀려주려고 찾아왔다고 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거창한 게 아니다. 당신에게 생긴 일이 별거 아니라는 주제넘은 말도 아니다. 그냥 힘들어서 어떤 위로도 들리지 않을 때, 가까운 곳에서 가볍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생각보다, 아주 별것 아닌 곳에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