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골목길

동네 사람들

by 여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옆집 수저와 젓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같은 건물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른 채 살아가고, 사이가 나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사람들이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를 보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도, 이제는 그런 감성을 느끼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동네에서 20년을 살다가, 결혼을 하며 최근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하고 나서야 내가 알고 느끼던 동네 분위기가 꽤 특별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이사를 와서, 결혼하기 전까지 20년 넘게 같은 골목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분위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는 같은 동네에서 장사를 하시기도 했고, 영업 일을 하시며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오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늦게 오시는 날이면 윗집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거나, 골목 분식집 사장님이 나와 동생의 밥을 챙겨주셨다. 몇 번 이사를 다니기도 했지만, 그 골목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체험학습을 가는 날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주실 여유가 없어, 부탁을 받아 집 1층 포장마차에서 안주로 팔던 주먹밥을 포장해 학교에 가져간 적도 있다. 어머니와 자주 가던 전집 사장님은 우리를 볼 때마다 밥 먹고 가라며 붙잡으셨고, 어머니가 바쁘신 걸 아시기에 반찬을 해서 내 손에 쥐여 집으로 보내주시기도 했다.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갈 때면 어머니는 늘 골목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셨다. 나도 그 옆에서 함께 인사를 했다. 돌이켜보면, 내 학창 시절은 어머니 밥만큼이나 동네 이모, 삼촌들의 밥으로 채워져 있었다.

같은 슈퍼와 세탁소, 식당을 오가다 보니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짧은 길에서도 서너 번, 많게는 다섯 번씩 인사를 하며 다녔다. 자연스럽게 행동을 조심하게 됐고, 어느 순간 내가 밖에서 한 일이 어머니 귀에 들어가 있을 때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담배를 피우려면 어른들 눈을 피해 숨어야 했다. 이런 관심이 다정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솔직히 답답할 때도 많았다.

결혼을 앞두고 미리 집을 구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을 때,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내와 편하게 손을 잡고 다닐 수 있었고, 더 이상 흡연을 할 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결혼식을 앞두고 아내를 데리고 본가에 가기 전,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주었다. 혹시 관심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돼서였다. 하지만 막상 아내와 함께 동네에 갔을 때, 반응은 내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 댁에 가기 전 들른 슈퍼에서 아저씨는 아내를 보시더니 결혼할 사람이냐며,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셨다. 나는 아내가 불편할까 봐 서둘러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부모님과 외식을 하러 골목을 나서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자주 가던 식당과 세탁소 사장님을 연달아 만났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관심에 정신이 없어 보이면서도, 웃는 얼굴로 어른들께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내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수달이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물고 무리 이곳저곳을 다니며 자랑하듯이, 어머니는 아내를 데리고 동네를 한 바퀴 도셨다. 뛰어가면 1분도 안 걸릴 식당까지 가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이런 관심이 불편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아내는 해맑게 웃으며 너무 재미있었다고, 다들 좋은 분들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혼자서만 어른들의 관심을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았다. 이 관심이 모두 애정에서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지레짐작으로 걱정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 뒤로도 아내와 동네에 갈 때면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어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내가 아내의 손을 잡고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있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게,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최근, 아내의 배 속에 아이가 생겼다.
이제 세상에 나올 이 아이가, 내가 자라며 느꼈던 관심과 애정 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때로는 답답하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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