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속도로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요즘 사람들 사이에 ‘갓생’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자기계발까지 해내야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하루. 나도 그 기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몇 번이고 같은 다짐을 했었다. 처음 하루나 이틀은 괜찮았다. 계획한 대로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제대로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눈을 뜨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하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에 숙제처럼 다가왔다. 결국 계획들은 미뤄지고, 속으로는 해야 하는데 하며 휴대폰 화면 앞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루가 끝날 무렵 남는 건 ‘또 실패했다’는 생각과 "역시 나는 게으른 사람이야" 하는 자기 비하만 남았다.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보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보려다 멈춘 날이 더 나쁘게 느껴졌다.
하지 못한 몇 가지가 하루 전체를 잘못된 하루로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열심히 살겠다는 마음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남들이 말하는 방식에 나를 끼워 맞추고 있었던 건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사춘기스러운 이유였다. 그 시절 유명하다는 인문학 책들과 고전문학, 자기 개발서 같은 책들을 주로 읽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학교 교과서보다 이해하기 어려웠고, 솔직히 재미도 없었다.
그 경험들은 내게 ‘책은 원래 재미없는 것’이라는 선입견만 남겼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소설책과 만화책 같은 재미 위주의 책들을 찾아 읽게 됐다. 남들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책들보다, 그 책들이 훨씬 쉽고 재밌었다.
소설과 만화책은 나에게 글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려줬다.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남들이 말하는 '좋은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책을 통해 성장하고 배우고 있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의 ‘갓생’도 어쩌면 비슷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출근 전 아침 운동을 하고 퇴근 후 독서와 공부가 잘 맞는 삶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그 기준들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 출근해서 하루 일을 열심히 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 집안일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쉬는 하루가 왜 설명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미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다.
그 하루가 생산적이지 않아도, 헛되게 보낸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 하루를 충분히 잘 감당해 냈다. 난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고생했다 말하고 싶다.
물론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그때는 움직이면 된다. 공부가 필요해지면 책을 펴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지면 그에 맞게 하루를 바꾸면 된다. 나도 현재 글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다만 이유도 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나를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다.
요즘 내가 정한 기준은 단순하다.
"쓸데없는 일로 나를 지치게 하지 말자"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언제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삶을 쓸 때 없이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괜히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 정도의 이유로도 하루를 살아가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갓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