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부럽다 말하던 선임

단단하다고 믿었던 사람의 약한 모습

by 여담

군대에 있을 때 정말 좋은 선임을 만났다. 나는 그 선임을 단 한 번도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은 늘 먼저 말을 걸어왔다.
“요즘 어때?"
그 질문 하나 덕분에 군생활을 조금 괜찮게 보내는 날이 많았다.

복싱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도 그랬다.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고 도피하듯 입대를 한 나에게 그는 운동을 그만두라는 말도, 무작정 버티다 보면 좋아질 것이다 같은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병원과 치료 방법을 찾아줬고, 운동을 그만뒀을 때 현실적인 선택지들을 차분하게 알아봐 줬다. 군대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나를 걱정해 주던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고작 한 살 더 많은 그 선임을 크고 단단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전역하고 나서도 인연을 이어갔다. 가끔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시시콜콜한 군대 추억 얘기, 흔한 연애상담 같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그 선임은 든든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은 사회에 나와서도 잘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봐온 그 선임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똑같은 만남이었다.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묻고, 내가 이런저런 고민들을 투정 부리듯 털어놓고 있었다. 선임은 로스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로스쿨을 준비하는 것도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당연히 잘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의심하지 않았다.

웃고 떠들면서 술을 먹고 있을 때 선임이 아주 가볍게 말했다.
“요즘은 네가 좀 부럽다.”
웃으면서 한 말이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렇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의 모습이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크고 단단하다고만 생각했던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지쳐 보였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게 꽤 큰 충격으로 남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그 선임과 관계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취업을 했고, 결혼을 했다. 누군가의 남편이 되었고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반면 그 선임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투정 부리며 고민을 털어놓던 선임이 나를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날은 조금 일찍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선임이 나에게 부럽다라고 말했다며 말하다가 갑자기 목이 막혔다. 선임 앞에서는 웃을 수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건 너무 어려웠다. 나는 강하게만 보이던 그 선임을 불쌍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 너무 놀랐다. 나 혼자 기대하고 의지하던 사람을 이제는 나 혼자 불쌍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음날 선임에게 연락이 왔다. “어제는 잘 들어갔냐?”
나는 연락을 주고받다 “공부하느라 바쁠 테니까 시간 날 때 먼저 연락해요”라고 답하며 연락을 끝마쳤다. 그 사람의 연약해진 모습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들킬까 봐 두려웠다. 이제는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기대고,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 이후로 연락하지 못하고 있다.
바빠서도 아니고, 실망해서도 아니다. 단단하다고 믿었던 사람의 약해진 모습을 보니 그 사람을 대하는 내 마음과 태도가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약함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언젠가는 다시 연락할 것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안부를 묻고, 웃고 떠들며 술도 마실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를 의지하던 마음과, 연민과, 죄책감이 뒤섞여 있다. 이런 마음들이 그 선임에게 실례가 될 것이다.

군대에서는 사람이 과장되어 보인다. 특히 내가 의지하던 사람은 더 그런 것 같다. 그 사람이 약해진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너무 단단하게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연락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 이야기가 언젠가는 그 사람에게 닿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꼭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선임은 여전히,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바뀐 건 나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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