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라는 말 뒤에 숨긴 마음
내 동생은 아이돌 연습생이다. 어릴 때부터 준비했지만 아직 눈에 보이는 결과는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흔한 형제처럼 뭔가를 같이 한 기억이 많지 않다. 같이 놀거나, 싸우거나, 장난을 치던 기억보다 각자 바쁜 시간을 보내온 기억이 더 많다. 동생은 아침에 나가면 학교에 갔다가 회사로 바로 간다. 항상 집에 지하철 막차를 타고온다. 동생이 집에 오면 나는 자고있다. 다음날 내가 아침일찍 나가면 나는 동생에 자는 모습을 보고 나간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같은집에 살면서도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이 없었다. 식사도 각자 집에오는 시간에 맞춰서 따로 했다. 우리 형제는 서로 자는 모습만 보며 지내왔다.
나는 동생에게 무뚝뚝하다. 잘 챙기는 편도 아니고,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도 아니다. 동생이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있어 다정한 말을 해주지 못했다. 다정하게 말하면서 "힘들면 쉬어"라고 말하면 오히려 힘 빠지게 될까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 한쪽에서는 늘 동생이 안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을 표현하는게 동생에게 도움이 안될걸 알아 표현하지 못했다. 내가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저 작은 용돈이나 열심히 챙겨주는게 다였다. 군대에서 월급을 받으면 대부분을 동생에게 보냈고, 어릴 때는 지갑을 책상에 올려두고 필요하면 그냥 가져가라고 말하곤 했다. 동생을 위해 현금을 넉넉하게 들고 다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동생은 바쁜 와중에도 자주 전화한다. 별다른 용건이 없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연습을 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나 요즘 자기가 잘하고 있다는 그런 사소한 말들만 주고 받았다.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동생은 내가 친구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 자기도 나중에 같이 놀고 싶다는 말만 한다. 얼마 전에 동생에게 새벽에 전화가왔다. 술을 조금 마신것 같았다. 평소와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자기가 나중에 잘돼서 돈을 많이 벌면 건물을 살것이라고 했다. 1층에서는 자기가 카페를 하고, 위층에는 어머니 가게를 차려드리고, 태어날 내 딸에게는 하고 싶은 건 뭐든 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고마웠다. 나는 열심히 해서 나중에 그렇게 살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 동생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 말들이 꿈이라기보다 버티기 위한 말처럼 들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물어봤다.
"힘드냐"
동생은 한숨을 작게 쉬더니 말했다.
"나 힘들어"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내가 해결해 줄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버티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송금버튼을 눌렀다. 말 대신 돈을 보냈다. 그날 이후로도 달라진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다정하게 말을 하지 못하고 여전히 대신 해줄수 있는게 없다. 동생은 매번 고맙다 말한다. 주변에 내가 좋은 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좋은 형이 아니다. 용돈은 보내는건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는게 아니다. 내가 덜 미안해지기 위한 가장 편한 방법이다. 이런 나를 좋은 형이라고 말하는 동생은 다음에 또 전화를 할것이다. 별일 아닌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버티라고 말했듯이 여전히 버티고 있을것이다.. 언젠가 동생이 더이상 버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해볼까 한다.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말대신 용돈을 보내고 걱정대신 버티라고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