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던 얼굴이 풀리는 순간
출근 전부터 몸이 무거운 날이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피곤했다. 이런 날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 잠을 잘 못 잤거나, 쉬어야 할 때 못 쉬었거나, 아니면 그냥 그런 날이다. 공항에 도착해 근무를 시작했을 때도 피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몸은 움직이는데 정신은 한 박자씩 느린 느낌이었다. 무전기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잘 안 들렸고, 사람들 말소리나 케리어 소리 같은 공항 소음들이 더 신경 쓰였다.
근무 중에 주인 없는 휴대폰이 울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보통 이런 걸 유실물이라고 한다. 절차대로 유실물을 처리하려고 할 때 휴대폰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유실물을 찾기 위해 입국 후 다시 공항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다행히 금방 돌아오신다고 해서 직접 전달해 드리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휴대폰을 잠시 내려다봤다. 화면에 부재중 알림과 위치를 알리는 알림음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유실물은 자주 나온다. 대부분은 서류로 확인하고, 절차대로 넘기고, 그걸로 끝이다.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마음도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해야 할 일 하나가 더 생겼다는 정도였다.
멀리서 한 승객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젊은 남성분이었다. 가까워질수록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급한 것도 아닌데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걱정이 얼굴에 그대로 보이는 표정이었다. 나는 저분이구나 싶었다. 승객분도 내가 휴대폰을 들고 있는 걸 보고 급하게 뛰어오셨다. 승객은 본인이 휴대폰을 잃어버렸고 방금 전화하신 사람에 남편이라고 했다. 나는 유실물 주인이 맞는지 확인했다. 이름과 물건,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한 뒤 유실물을 건넸다.
그 순간 그분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까까지 굳어 있던 얼굴이 한순간에 풀렸다. 안도의 웃음이었다. 정말 다행이라며 계속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셨다.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휴대폰을 잃어버린 걸 알고 입국 전부터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고 하셨다. 여행 사진과 연락처 말고도 축의금 명단이 그 안에 있어서 엄청 걱정했다고 말했다. 말을 하면서도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보셨다.
나는 다행이라 말하고는 필요한 안내를 했다. 사실 특별한 말을 한 건 없다. 해야 할 말만 했다. 그래도 그분은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했다. 물건을 받아 들고 다시 한번 웃으며 인사하고 입국장 방향으로 돌아갔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아까보다 훨씬 느긋해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공항에서 유실물은 매일 나온다. 분실도 흔하고, 공항에서 잃어버린 물건은 대부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보통은 일처럼 지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서류를 통해서가 아니라 얼굴을 마주 보고 직접 전달했다. 신혼여행이라는 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표정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유독 오늘이 피곤한 날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피곤함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래도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뿌듯까지는 아니고, 그냥 오늘 하루가 아주 나쁘지는 않겠다는 정도였다. 이유 없이 피곤했던 하루에 잠깐 기분 좋은 일이 하나 생겼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날이 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엄청 도움을 준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걱정 하나를 해결해 준 정도다. 그 정도면 오늘 근무는 괜찮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