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좋아합니다.

아는 게 없어도 그냥 좋은 이유

by 여담

사람마다 음악을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는 평생 한 장르만 파고들고, 누군가는 유행을 따라가며 그때그때 귀에 들어오는 음악을 듣는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팝도 듣고, 가요도 듣고, 가끔은 하드락 장르도 듣는다. 특별한 원칙이나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그날의 기분에 맞는 음악을 고른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장르를 오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자꾸 돌아오게 되는 음악이 있다. 재즈다.
재즈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꽤 단순하다.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재즈를 접했다. 불규칙한 리듬, 한 박자씩 밀리고 당겨지는 느낌, 그 위를 자연스럽게 흐르는 라인들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좋다’기보다는 ‘필요해서’ 들었다. 연주를 해야 했고, 따라 쳐야 했고,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음악을 조금씩 이론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재즈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장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심한 박치였다. 다른 사람들은 한두 번 듣고 흉내 내는 리듬을, 나는 열 번 넘게 듣고 연습해야 겨우 몸에 익었다. 박자가 안 맞아 연주를 멈춘 적도 많았고, 혼자 연습하다가 괜히 악기만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 있던 날도 많았다.
그래서 악기를 꽤 오래 배웠음에도 어디 가서 연주를 자랑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누군가 앞에서 연주를 보여주기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지금도 내가 하는 연주는 거의 전부 자기만족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싫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연주가 잘 안 될수록, 재즈를 ‘듣는’ 쪽으로 더 좋아하게 됐다.
지금도 나는 재즈 음악을 자주 찾아 듣는다. 다만 아주 가볍게 듣는다. 누가 가장 좋아하는 재즈 음악이 뭐냐고 물으면, 솔직히 대답을 못 한다. 좋아하는 특정 곡이나, 특정 아티스트가 없다. 재즈를 찾는 방식도 단순하다. 음악 어플을 열고 ‘재즈 명곡 모음’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눌러서 그냥 흘려듣는다. 어제는 스윙 재즈가 좋아서 한참 듣다가, 오늘은 갑자기 퓨전 재즈의 일랙기타 소리가 좋아서 플레이리스트를 바꾼다. 기준도 없고, 일관성도 없다. 흔히 말하면 줏대 없는 취향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질문을 받는다. “재즈 좋아한다면서 왜 아는 게 없어?” 이런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 하면 허세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오해가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허세여도 괜찮고, 겉멋이어도 좋다. 내가 음악을 듣는 이유는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하기 때문이다.
재즈를 들을 때 나는 분석하지 않는다. 코드 진행이 어떻고, 박자가 어떻고 같은 건 크게 관심이 없다. 그냥 흐르는 대로 듣는다. 출근길에, 혼자 커피를 마실 때, 밤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을 때. 재즈는 그런 순간에 잘 어울린다. 특별한 감정을 요구하지도 않고, 집중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처럼 필요할 때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가 재즈를 가장 좋아해서 듣는 순간은 따로 있다. 캠핑을 갔을 때, 모닥불 앞에 앉아 있을 때다. 불 앞에서 타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주변은 어둡고, 흔히 불멍을 때리는 그 시간에 재즈를 틀어두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다음 날, 조금 이른 아침에 혼자 먼저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을 때도 재즈를 듣는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잠도 제대로 안 깼을 때 흘려듣는 재즈가 그 순간과 잘 어울린다.
지금의 나는 재즈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연주도 여전히 서툴다. 하지만 누군가가 무슨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재즈라고 말한다. 제대로 몰라도, 깊이 알지 못해도, 그저 내 방식으로 즐기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재즈는 나에게 그런 음악이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가볍게 곁에 두고 오래 듣고 싶은 취미 같은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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