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에서 시작하는 힘
모든 걸 본인이 끌어안는 사람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나서고,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자기 탓부터 하는 사람. 겉으로 보면 책임감이 강하고 믿음직해 보인다. “저 사람 아니면 누가 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책임감은 늘 희생을 내포하고 있다. 본인은 조금씩 닳아가고 있는데, 그걸 책임감이라는 말로 덮어버린 채 참고 사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책임감은 어딘가 잘못 이해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에서 말하는 책임감은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핵심은 분명하다. 맡은 바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일에 필요한 노력과 결과까지 감당하는 태도. 거기까지가 책임감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경계를 넘는다. 자기가 맡지도 않은 일,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역할, 심지어 누군가 대신 져야 할 몫까지도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끌어안는다. 그건 착한 것도 아니고, 책임감이 강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미련하고, 조금은 자기혐오에 가깝다.
자기 몫이 아닌 책임을 자꾸 떠안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자존감이 낮다. 그래서 책임감이 자기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내가 한다”가 아니라 “이것도 못 하면 나는 쓸모없다”에서 시작된다. “남들이 피해 보기 전에 내가 먼저 감당해야 한다” “이 정도는 참고 넘어가야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 이 말들 속에는 자신을 아끼는 마음보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마음이 먼저 들어 있다.
나는 책임감의 출발점은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있다는 건,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존감이 자기애로 발전하면, 책임감의 형태가 바뀐다.
“이건 내가 맡은 일이야.”
“여기까지는 내가 할 수 있어.”
“이 이상은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아.”
이 책임감은 단단하다. 무너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지키면서도 역할을 해낸다.
반대로 자기애가 빠진 책임감은 위험하다. 처음에는 성실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혹사시킨다. 모든 것에 힘을 쏟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곳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일은 계속하고 있고, 몸은 멈추지 않는데 마음은 이미 무너져 있다. 겉으로는 잘 굴러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늘 지쳐 있고 예민하다. 칭찬에는 둔감하고, 작은 지적 하나에도 크게 흔들린다.
그런 모습을 많이 봤다. 부당한 일을 거부하지 못하고. 대신 스스로를 더 심하게 몰아붙인다. 그들은 혼나는 것보다 눈치를 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상대방의 목소리만 들려도 몸이 먼저 굳고, 이미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 죄책감을 느낀다. 문제는 그런 태도가 오히려 주변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든 모습, 과도한 사과, 지나친 책임 전가는 상대에게도 부담이 된다.
한 번은 말하고 싶었다. 지금 당신이 끌어안고 있는 책임 중에는 당신 몫이 아닌 게 분명히 섞여 있다고. 당신이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때문에 오히려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힘들어하고 있다고. 무엇보다, 당신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제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책임감 말고 본인을 위한 책임감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책임.
“이건 내가 해야 해”가 아니라
“이건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필요하면 책임을 나눠 가질 줄 아는 태도도 중요하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책임감의 일부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나도 그랬다. 감당하지 못했고 실패했다. 그럼에도 억지로 끌어안고 갔다. 결과적으로는 잘 풀려 이제는 그냥 웃어넘기는 추억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그때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졌다. 그리고 마음이 무너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 지도 알게 됐다.
당신이 내려놓는 책임을 대신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 당신이 부르기만 하면 손을 내밀 사람들이 있다. 그게 가족이다. 책임을 혼자서 다 짊어질 때보다 나눌 때 더 오래, 더 건강하게 갈 수 있다. 책임감은 스스로를 갉아먹으라고 있는 마음이 아니다. 자기를 아끼는 사람만이 오래 책임질 수 있다. 이제는 ‘착한 책임감’ 말고 ‘살아남는 책임감’을 선택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