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나를 아는 어른

by 여담

어머니에게는 옛날부터 친하게 지내신 동내 친구분들이 있다. 그중 가장 자주 만나고 같이 취미생활도 같이 하러 다니시는 동네 이모와 삼촌이 계신다. 내가 어려서부터 세분은 자주 모여 식사도 하시고 술자리도 가지셨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분들을 만나는 게 편해지고 즐거웠다. 부모님이 바쁘시거나 여건이 안될 때는 정말 보호자로서 나서 주시 기도 했다.

삼촌은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동생과 집 앞에서 놀다 건물 반지하집 창문 빗물받이에 허리가 찢어진 적이 있었다. 너무 놀라 아픈지도 몰랐다. 어머니께 혼날 것이 무서워 아무 일도 아닌 척 집에 올라가 어머니께 다쳤다고 말씀드렸다. 정확히 동생이 말했는지 내가 말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그리고 다음 기억은 그 삼촌손을 잡고 병원에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아버지는 출근을 하셨고 어머니는 차가 없으셨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삼촌손을 잡고 병원에 가서 허리를 꿰맸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침대에 엎드려 삼촌의 손을 꼭 잡고 펑펑 울었다. 이 기억이 삼촌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조금 더 커서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때 축구를 하다 발목이 돌아가는 사고를 당했다. 또 울면서 양호실로가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어머니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나는 양호실 선생님이 끌어 주시는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나갔다.

학교 정문 앞에는 택시와 함께 다른 친구분인 이모가 계셨다. 어머니가 바쁘시니 이모가 대신 오신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이모와 택시를 타고 위에 말했던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마침 내가 다친 그날이 삼촌이 관계자로 있는 병원 개원날이었다. 나는 그날도 이모손에 이끌려 삼촌 병원에 첫 환자와 첫 입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한 달 가까이를 입원하면서 부모님보다 그 이모와 삼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병원 1층 포장마차에서 삼촌이랑 어묵을 배 터질 때까지 먹기도 했다. 이모는 시간 나시면 어머니와 교대로 오셔서 내 상태를 살피시고 가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예전만큼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 중간중간마다 늘 이모와 삼촌이 있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큰 사건이 없어도 어느 순간 보면 같은 자리에 함께 있었다.

지금도 어머니는 그 이모, 삼촌과 자주 식사를 한다. 거창한 자리가 아니라 동네 식당, 편한 옷차림, 편한 이야기들이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반복되기도 하고 이미 다 아는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기도 한다. 그런 자리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기가 있다. 누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이들이다.

그 자리에 나도 가끔 함께 앉는다. 나에게 그 자리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인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아니라 어릴 적 울면서 삼촌 손을 붙잡고 병원에 들어가던 그 아이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괜히 말투도 편해지고, 자세도 느슨해진다. 굳이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어른인 척하지 않아도 된다. 이모와 삼촌은 여전히 나를 조심스럽게 대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 그대로 대한다.

괜찮냐고 묻고, 밥은 먹었는지 묻고, 아직도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살핀다. 그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는 그분들이 내 인생에 갑자기 끼어든 사람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이모와 삼촌은 혈연으로 묶인 가족은 아니지만 내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부모님이 바쁠 때 대신 손을 내밀어주었고, 아플 때는 보호자처럼 앞에 서 주었고, 어릴 때의 나를 가장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어른들이다.

이모와 삼촌 앞에서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지나온 내가 된다.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괜찮은 어른인 척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이다. 그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꽤 오래 든든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머니와 이모, 삼촌이 함께하는 그 식사 자리는 단순한 밥자리가 아니다. 내가 어릴 적 모습 그대로 앉아 있어도 되는 자리이고, 아직도 누군가의 보호 안에 있는 사람처럼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다.

나에게는 여전히 보호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 같은 자리다. 이제는 예전처럼 손을 잡고 병원에 갈 일도 없고, 누군가 대신 나를 데려다줄 필요도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분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아직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된 이후에도 어릴 적 나를 기억해 주는 보호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그 역할을 해준 사람들이 바로 그 이모와 삼촌이었다. 그분들은 나를 키운 사람은 아니지만 나를 지나오게 해 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분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늘 소중하다. 편해서 더 소중하고, 당연해서 더 놓치고 싶지 않은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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