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에서 점점 멀어질 때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같이 웃고,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들이 재미있었다. 회식이 있으면 웬만해서는 빠지지 않았고, 친구들 모임도 거의 참석했다. 혹시 일정이 맞지 않으면 “그럼 다른 날 보자”며 내 시간에 맞춰 다시 약속을 잡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자연스러웠고,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한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고,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어긋남이 생겼다. 출퇴근은 차로 하게 되었고, 퇴근 후의 피로는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약속이 있어도 ‘집에 바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 번 빠진 약속은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었다. 일이 늦게 끝났고,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았고, 집에 가면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차가 생기면서 술자리 자체가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술값도 한두 푼이 아니었지만 매번 대리를 부르는 것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한 게 하나 있었다. 예전에는 모임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너도 올 거지?” “이날 괜찮아?” 하며 내 의견을 물어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질문이 줄어들었다. 아예 묻지 않는 날도 생겼다. 단톡방에서 이미 약속이 정해진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꽤 많이 신경 쓰였다. 대화 중간에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고, 다들 웃고 있는데 나는 웃음의 이유를 한 박자 늦게 이해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을 이야기들인데, 이제는 빠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사람들이 있는 원 안에서 내가 조금씩 바깥으로 밀려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게 처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체감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속상했다. 괜히 나 혼자 소외된 것 같았고, 나를 제외하고도 다들 잘 지내는 것 같아 서운했다. 내가 잘났다거나 흔히 말하는 ' 인싸'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소외감이라는 감정을 처리하는 게 오래 걸렸다. 동시에 스스로에게 화도 났다. 내가 빠지기 시작했으면서, 왜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한동안은 그 감정을 붙잡고 있었다. 다음에라도 꼭 나가야 하나,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도 그 감정이 조금씩 무뎌졌다. 예전처럼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됐다. 모임 이야기를 뒤늦게 알아도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기게 됐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재미’였다면, 지금은 ‘선택’이 되어 있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조용히 쉬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편해졌고, 굳이 많은 사람 속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예전에는 약속이 없으면 허전했는데, 지금은 약속이 없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모든 만남이 부담스러워진 건 아니다. 다만 방식이 달라졌다. 오래 앉아 술을 마시고, 하루를 통째로 쓰는 모임보다는 잠깐 얼굴 보고 안부를 나누는 만남이 좋아졌다. 지나가듯 커피 한 잔, 밥 한 끼 정도가 딱 좋았다. 그 정도의 거리에서 나누는 대화가 오히려 더 진하게 남기도 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 속에 내가 없어도 괜찮다는 걸 머리가 아닌 느낌으로 알고 있다. 내가 빠졌다고 해서 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없어도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간다. 그게 생각보다 당연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그 사실이 서운했는데,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느껴졌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던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도 괜찮아졌다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일지도 모른다. 삶의 중심이 조금 옮겨졌을 뿐, 관계를 포기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연락하고 싶은 사람은 있고, 보고 싶은 얼굴도 있다. 다만 그 모든 자리에 꼭 내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됐을 뿐이다.
가끔은 여전히 예전의 내가 그리울 때도 있다. 누구보다 먼저 약속을 잡고, 빠짐없이 참석하던 일이 조금은 그립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덜 외롭고, 덜 조급하다. 관계를 붙잡느라 애쓰지 않아도, 남아 있는 것들은 남아 있다는 걸 믿게 됐다.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는 느낌은 여전히 가끔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리가 꼭 나쁜 자리만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도 있고, 그 거리 덕분에 숨이 편해지는 순간들도 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한다. 다만 예전처럼 모두의 사이에 서 있지는 않다.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편안한 거리에서 사람들과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정도의 관계가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