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남기는 허탈함

고맙다는 얼굴로 남긴 민원

by 여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일에 만족감을 느끼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 보람과 만족감이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에 경우로 허탈하거나 일에 회의감을 느낄 때도 있다. 특히 사람 때문에 허탈해질 때가 있다. 큰 사고가 있어서도 아니고, 분명 누군가를 도와줬다고 생각했던 순간 이후에 찾아오는 감정이다.

공항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허탈함을 종종 만난다. 문제를 해결했고, 상황은 정리됐고, 겉으로 보면 잘 마무리된 일인데 마음 한편이 텅 빈 느낌이 남는다.
공항에는 VOC, 그러니까 고객 민원이 정말 많이 들어온다. 하루에도 몇 건씩, 1년을 놓고 보면 셀 수 없을 만큼 쌓인다. 다행히 사실관계가 확인되고 근무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불이익은 없다. 하지만 불이익이 없다는 말이, 그 일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는 뜻은 아니다. 민원 하나하나가 남기는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특히 ‘사람 때문에’ 생긴 민원일수록 그렇다.

한 번은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이용객을 도와준 적이 있다. 공항 안에서 여권을 분실하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의 모든 일정이 멈춘다. 얼굴이 굳고, 말수가 줄고, 불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는 유실물이 들어온 건 없는지 확인하고 동선을 따라가며 분실물을 확인했다. 다행히 여권은 금방 발견됐다. 여권을 손에 쥐던 순간, 그 이용객의 표정이 눈에 띄게 풀어졌다.

그분은 그 자리에서 내 소속과 이름을 물어보셨다. 너무 밝게 웃으면서, 몇 번이나 고맙다며 물어보셨다. 불안이 완전히 가신 얼굴이었다. 나는 흔쾌히 내 소속과 이름을 알려드렸다. 사실 이런 경우가 드물긴 하지만 가끔 있다. 감사 인사를 넘어서, 좋은 VOC를 남기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민원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좋은 소식으로 올라오는 VOC는 인사 평가에 반영되기도 하고, 1년에 한 번 좋은 VOC를 많이 받은 직원은 상장과 포상을 받기도 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꽤 큰 도움이 되고 눈에 보이는 확실한 보람이다. 그래서 그 순간에는 나 역시 이 일이 잘 마무리됐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기분이 괜찮은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며칠 뒤, 내 이름이 적힌 VOC가 들어왔다고 선배에게 전해 들었다. 여권을 늦게 찾아주는 바람에 버스를 놓쳤고, 그로 인해 시간과 비용의 손해를 봤으니 배상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멍하니 선배를 바라봤다. 얼마 전까지 고맙다며 웃던 얼굴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규정상 배상은 불가능했고, 근무자의 잘못도 아니었다. 절차대로 처리됐고, 결과적으로 아무 불이익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만큼 가볍지 않았다. 도움과 불만이 이렇게 쉽게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이 허탈했다.

또 다른 날에는 공항 시설을 이용하려는 분에게 길을 안내해 드린 적이 있다. 말로 설명하면서 손짓으로 방향을 정확히 짚어드렸다. 그때는 별일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 “길을 잘못 알려줬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것 같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CCTV를 확인했고, 영상에는 내가 정확히 안내하는 장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변 근무자들의 증언도 같았다. 결과적으로 아무 제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쪽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묘한 감정이 남는다. 잘못하지 않았다는 게 증명되었는데도 기분은 회복되지 않는다. 억울함이라기보다는 공허함에 가깝다.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허탈함은 대개 이런 모양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 되는 순간들이다.

공항에서는 많은 일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야 한다. 문제를 해결해도, 도움을 줘도, 기억에 남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결과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모든 상황이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고맙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불편했다고 말한다. 그 차이는 결국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런 민원들이 반복되면, 일의 의미가 잠시 흐릿해진다. ‘그럼 나는 뭘 위해 이걸 하고 있나’ 같은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해결했는데도 남는 게 없는 기분, 오히려 설명해야 할 것만 늘어난 느낌이다. 그래서 가끔은 일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지치는 날이 있다.

그럼에도 다음 근무에 나서면, 또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주고, 또 누군가의 문제를 듣는다. 여권을 찾고, 설명을 하고, 손짓을 한다. 어쩌면 이 일은 감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그 자리에 있기 위해 존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고맙다는 말이 남지 않아도, 불만으로 기록되더라도, 누군가는 그 도움 덕분에 다음 단계로 이동했을 것이다.

사람 때문에 허탈해지는 순간들이 쌓이지만, 동시에 사람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순간들도 분명 있다. 아주 짧게 고개를 숙이며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사람, 해결되고 나서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그런 장면들은 민원보다 훨씬 잔잔하게 기억에 남는다.

공항에서의 하루는 늘 그렇다. 누군가의 불만으로 끝나는 일도 있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도움으로 끝나는 일도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상대한다. 허탈함을 안고서도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게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의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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