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꽃다발

기다림 ep1

by 여담

나는 공항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에게 공항은 아직까지도 설레고 기분 좋은 공간이다. 공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분 좋은 얼굴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친구들과 출국을 기다리며 들뜬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입국장을 바라보는 사람들. 수많은 표정들 속에서 미소는 늘 공항에 머문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는 세계 각국의 아이들이 짓는 웃음이다.

이런 공항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씩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햇살이 공항 안을 환하게 비추던 초가을의 오전, 입국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크지 않은 키에 하얀 테니스치마와 베이지색 가디건을 입은,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젊은 여성이었다. 손에는 하얀 안개꽃과 장미가 섞인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유난히 예뻤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아니라, 신난 듯 크게 뜬 눈과 조심스럽게 지어진 미소. 그 표정은 입국장 앞에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하게도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벽에 걸린 전광판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저렇게까지 행복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저렇게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보통 비행기가 착륙한 뒤 입국장으로 나오기까지는 빠르면 30분, 짐 찾기가 길어지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녀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위에서부터 항공편을 하나씩 훑어 내려갔다. 아직 기다리는 비행기는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이내 입국장 앞 벤치에 앉았다.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얼굴에서 그 밝은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입국장 위 전광판을 사진으로 남기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 사이에 치여 꽃다발이 망가질까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가끔은 꽃 향기를 맡으며 혼자 웃기도 했다. 중간중간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나 아이와 함께 온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입국장 앞을 이리저리 오가기도 했다.

기다리기 시작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전화가 울렸다. 기다리던 사람의 전화인 듯했다.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제자리를 가볍게 콩콩 뛰며 전화를 받는 모습에서, 전화 너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대로 전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성적인 호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지닌 순수한 행복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그녀는 전화로 “빨리 나와, 나 배고파. 얼른 밥 먹으러 가자.”라며 상대를 재촉했다.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이미 서 있던 사람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비집고 벤치 앞 유리 펜스의 맨 앞으로 나왔다.

그 순간 나는 혼자 괜히 조급해졌다. 이제 40분 정도 후면 일을 하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로맨스 드라마의 끝을 꼭 보고 싶어졌다. 그녀가 기다리던 비행기는 오전 11시에 애틀랜타에서 도착하는 항공편이었다. 빠르면 10분, 늦으면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펜스에 기대 선 그녀는 입국장 문이 열릴 때마다 혹시 기다리던 사람이 아닐까 싶어,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한 지 30분쯤 지났을 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그녀는 지금까지 보여준 어떤 표정보다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곧 나오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얼굴과 옷매무새를 가볍게 정리하고, 꽃다발을 다시 소중히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5분 뒤, 기다리던 사람이 입국장 문을 통과해 나왔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한 남자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동안 망가질까 조심히 지켜왔던 꽃다발의 꽃잎이 떨어질 정도로 힘껏 안겼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그대로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나 혼자만의 드라마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꽃다발을 건네고, 두 사람은 환한 미소를 나눈 채 공항을 나섰다.

일을 하다 문득 그 꽃다발의 꽃말이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하얀 안개꽃과 장미가 섞인 꽃다발의 꽃말은,

‘죽을 때까지 사랑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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