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기록 9. 나는 글을 왜 쓸까

부정적인 상태로 물어보는 것

by 김맥

내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기억하고, 어디에 그것을 썼는지도 기억한다. 8살, 초등학교 1학년 때. 일기장에 동화를 썼다. 일기로 쓸 만한 일이 없었다기보다는, 그 당시에 '나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간'이 일기장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일기장이 남아 있으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없다. 그것만이 아니라 10대 시절, 20대 시절에 내가 썼던 글은 전부 버리거나 삭제했다.


IMG_9823.JPG


나는 바다에 빠져 가라앉는 것처럼 글쓰기에 빠져서 그대로 가라앉았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재미있었다. 공부를 하는 것보다, 뭘 하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동화를 쓰고 시를 썼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나의 그런 성향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시키지 않아도 책에 파묻혀 사는 나를 대견해하시는 한편, 책을 읽기보다 문제집 한 장을 더 풀기를 원하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 아니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부모님은 무조건 선생님이 되기를 원했지만, 나는 먼저 작가가 되고 그 다음으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부모님이 진짜 원하셨던 건 내가 법대에 가는 것이었다.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되는 것. 왜냐면 난 읽는 것을 좋아하고 말도 잘 하는 아이였으니까 그 길로 가면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돈도 많이 벌 거라 생각하셨을 테고. 소위 사회에서 '먹어주는 직업'이고. (믿을 수 없지만 지금까지도 말이다)


저학년 때는 주로 일기장에 이야기를 썼다. 대체로 결말이 우울해서 가끔 선생님들로부터 '다음 번에는 행복한 이야기를 써 보세요!'라는 코멘트를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요, 저는 매주 일기장을 제출하고 검사를 받던 때에 학교를 다녔답니다. 그런데 요즘도 그러는 것 같던데?) 그때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 내가 쓴 이야기에 삽화를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3학년 이후로 관뒀다.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애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나도 미술학원에 잠깐 다녔지만, 나보다 잘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의욕이 떨어졌다. 하지만 글쓰기는 내가 가장 잘 했다. 학교에서 백일장을 하면 상을 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너무 잘 써서 어디서 베낀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좀 했다.


26970034.JPG


고학년이 되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기가 첫 번째 피크였다고나 할까……. 국어나 역사 시간에만 열심히 공부하고 다른 과목 시간에는 노트에 소설을 썼다. 그 당시에는 판타지에 흠뻑 빠져서 판타지 소설을 정말 주야장천 썼다. (대여점이 흥하던 때였던지라) 어디서 봤던 것 같은 것, 완전히 새로운 것, 친구와 이어 쓰는 릴레이 소설. 어쨌든 엄청나게 썼다. 성적이 떨어지면 노트가 찢어졌다. 우리 집은 당시 무진장 엄격했기 때문에. 가끔은 책도 찢어졌다. (소설책만) 그러면 노트를 새로 사서 또 썼다. 컴퓨터로도 쓰고 그걸 인쇄해서 다시 노트에 고쳐 쓰기도 하고 벼라별 짓을 다 했다. 활자에 파묻혀 살았다. 내가 만들어낸 세상과 인물에 파묻혀 살았다. 그리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16740015.JPG


굳이 왜 시를 쓰기 시작했느냐……. 하면 별다른 계기는 없었다. 그 당시 많은 문학소년소녀들이 그렇듯 기형도의 시를 좋아했고, 나는 또 이상의 시를 좋아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느꼈던 그 담백하고 은근히 따뜻한 그 느낌이 좋았다. 뭣보다 백일장에서 늘 시를 선택했는데(산문은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아서) 그걸로 계속해서 상을 탔다. 나는 시를 잘 쓰는구나! 에서 나는 시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로 생각이 바뀌었다. 소설은 소설대로 취미로 즐기면서 시를 써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상을 받았다는 것 이외에도, 실제로 시 쓰는 게 좋기도 했다. 나는 아름다운 단어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낯선 문장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서는, 물론 그런 것들이 의미를 발휘하는 순간이 있지만 그보다는 서사의 완성도와 재미가 우선이다. (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 소설은 가슴에 남지만, 아름다운 문장만 나열해서는 소설이 완성되지 않는다. 또 소설은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진득하게 앉아서 생각하고 고쳐야만 하는 문학이다. 물론 시도 그렇지만, 소설보다는 즉흥성이 있는 것이 시이기도 하다. 나는 단어를 만지고, 조립하고, 낯설게도 해보았다가 늘 보았던 그대로 내려놓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시를 썼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계속해서 시를 썼다. 문창과에 가고 싶었지만 안 될 말씀이었다. (집안 분위기상) 그래서 국문과를 선택했다. 나는 국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당시에는)


IMG_6991.jpg


이런저런 시간들을 지나서……. 결국 문예 특기생으로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1학년 절반이 끝나기도 전에 과를 잘못 선택했다는 걸 알았다. 가려면 차라리 문창과에 가든가, 아니면 다른 흥미를 찾아 아예 상관없는 과에 갔어야 한다는 후회를 뒤늦게야 했다. 이 부분은 주제랑 별 상관 없는 내용이니 대충 스킵하고.


그 뒤로는 내리막길이어서 글이 싫어졌다. 길게 이야기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니까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다. 글이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못 쓰는 내가 싫었다. 남들은 다 잘 쓰는데 나는 그렇지 못해서 싫었다. 2차 창작이나 주야장천 할 뿐인 내가 싫었다. 시는 그냥 그럴싸해 보이는 단어들을 가져다 붙여놨을 뿐이고, 소설은 한 번도 끝까지 완결을 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글 쓰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내가 너무, 너무, 너무 싫었다. 죽이고 싶었다.


85660031.JPG


어렸을 때는 그냥 글 쓰는 게 재미있었고, 청소년기에는 글 쓰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였고 숨 쉴 구멍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글을 써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걸 이루지 못하자 좌절했다.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다. 애초에 노력할 줄도 몰랐다. 재능 있는 천재들은 노력 같은 거 안 해도 저렇게 잘 쓰는데, 나는 노력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거기까지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글을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잘 할 수 없다면, 남들보다 뛰어날 수 없다면, 내가 가진 재능이라 믿었던 게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흙더미에 불과했다면.


취미가 아닌 나의 글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쓸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꾸역꾸역 뭘 쓰면서도 별 감정을 못 느꼈다. 어차피 심사가 한 번 뒤틀리면 죄다 휴지통에 집어넣어도 상관없는 것들 뿐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또 글 쓰는 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전 소설책을 읽다가 문득, '나는 도대체 왜 글을 쓰지?'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간만에 이런 글도 쓰고 있다.


나는 왜 글을 쓸까? 재미있어서? 물론 재미는 있다. 글을 쓰는 것만큼 좋아하는 취미도 없다. 취미가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도 뭔가를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왜 글 쓰는 것을 재밌다고 느끼게 됐지? 애초에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글을 쓰게 됐을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좋았나? 남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을 못 했나? 왜 만족을 못 했을까? 베르사유 궁전을 보면서 멋지다~ 하고 끝냈으면 됐을걸, 왜 성냥개비를 가지고 나만의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그런데 재미있어서 쓴다기에는 나는 글 쓰는 게 지독히 싫었을 때도 어쨌든 글 쓰는 걸 멈춘 적은 없었다. 꼭 시나 소설이 아니라도 늘 뭔가를 썼다. 지난 번에도 언젠가 쓴 것 같지만, 숨 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 뭔가를 쓰지 않고 살아가는 나를 상상하지 못 한다. 숨 쉬지 않고 사는 게 불가능하듯 뭔가를 쓰지 않는 게 불가능하다. 왜? 그건 왜일까?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 사는 인간들과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 이외 아무 것도 기록해본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글을 써야만 하는 쪽은 자아가 비대해서 그런가? 너무 비대해서 그걸 밖으로 꺼내놓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그런가?


그것도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이기는 한데, 그렇다기에는 글을 쓰지 않으면서 자아만 비대한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글을 왜 쓸까? 어쨌든 지금은 글 쓰는 것을 본업으로 삼고 가르치는 걸 부업으로 하고 있지만(비율상 그렇다) 솔직히 난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다. 신선하고 새로운 것으로 유행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이미 만들어진 유행에 유연하게 탑승하지도 못한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면 엉망진창이 된다. 상업 작가로서는 최악 중의 최악이다. (사실 요즘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내가 과연 상업작가가 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순문학에 올인하고 싶으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과 그것을 문학으로써 풀어내고 싶은 건 또 다른 욕망이다. 나는 즐거운 글을 쓰고 싶다. 즐거운 글을 쓰면서 인간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몇몇 요소가 잘 팔린다는 건 알지만 내 기준에 맞지 않는 건 넣고 싶지 않다. 어느 정도 타협하는 방법을 배우기는 했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난 뭘 위해서 글을 쓸까……. 잘 모르겠다. 단순히 내 재미만을 위해서 쓰나? 그냥 쓰다 보면 재밌으니까 계속 쓰는 걸까? 게임이나 여러 취미에 중독이 되는 것처럼? 하지만 재미만을 위해서 한다기에는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게다가 굳이 돈벌이를 하지 않을 때에도 글 쓰는 게 늘 재밌지는 않았다. 관심을 받기 위해서 쓰나? 내 글은 그다지 관심 받는 글이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쓰나?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앉아서 글을 쓰고 있을 게 아니라 차라리 학원 세 군데에 동시 취직하는 편이 훨씬 낫다.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달하고 싶나? 딱히…….


85660034.JPG


'글을 쓰는 것이 내 운명'같은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달갑지도 않다. '글을 쓰는 것은 내게 내려진 천형'같은 말을 쓸 수도 있겠지만 역시 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둘 다 징그럽다) 그럼 글을 왜 쓰지? 따위의 질문을 안 하면 될 텐데, 주기적으로 계속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글을 왜 쓰지? 왜 쓸까? 뭘 위해서 쓸까? 글 쓰는 건 재밌지만, 글을 쓰고 있으면 이거야말로 내가 유일하게 사랑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하필이면 왜글일까? 글 말고 다른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될 방법은 없을까? 예술이 아닌 분야로.


오랫동안 글을 썼고 지금도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쓰겠지만 누군가 '왜 글을 써요?'라고 물어보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앞으로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어릴 때는 순수하게 재밌었고 청소년기에는 글밖에 도망갈 곳이 없었다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그냥 관성이 되어버렸나 싶기도 하다. 계속 이걸 해 왔으니까 습관처럼 하게 되는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손에 익은 것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여기 눌러앉아 있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주로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나는 여전히 글 쓰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내가 너무, 너무, 너무나 싫다. 가끔은 죽이고 싶게 밉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글 쓰는 재주조차 뛰어나지 못 한 것이 너무나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진다. '그럼 더 열심히 쓰면 되잖아'라는 말을 듣거나 보면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도 죽이거나 죽고 싶어진다. 여기서 어떻게 더 열심히? 이것보다 얼마나 더 열심히? 관에 들어가서도 글을 쓰고 있으면 그때는 열심히 썼다고 인정할래? 애초에 글이 '열심히' 한다고 잘 쓸 수 있는 것이었으면 세상에는 지금의 백 배쯤 되는 작가들이 있었을 텐데.


근데 이렇게 화를 내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면서도 어쨌든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한다. 글을 쓰는 것 이외에는 사랑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뭔가를 생각하면 그걸 글로 옮겨야 한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뭐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아마 복잡다단한 것들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서 이런 내가 됐겠지만 낱낱이 풀어서 확인해보고 싶다. 내가 글을 왜 쓰는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왜 '안된다'고 생각할 때조차 글을 쓰는 걸 포기하지 못하는지.


차라리 '글을 왜 쓸까?'같은 생각도 할 필요가 없었다면, 인생에서 '글을 쓴다'라는 선택지 자체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면 사는 게 좀 더 편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결국 글을 쓰는 행위로 위로를 받는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어딘가에 쏟아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쏟아내고 싶은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넘치기 직전의 쓰레기통 같은 상태여서 나는 늘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것을 그렇게 반대했던 부모님이지만, 그리고 나를 글로 도피하게 만들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두 분도 내려놓은 게 있고 나도 내려놓은 게 있기 때문에. 엄마는 요즘 내 소설을 읽다가 "이런 걸 어떻게 쓰는 거야?"라고 종종 묻는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몰라. 그냥 머리에서 나와."


줄줄 새는 수도꼭지처럼, 넘치는 쓰레기통처럼, 물을 뿜어내는 하수도처럼.

그냥 나온다. 그냥 나와서 내가 왜 계속 글을 쓰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nikon fm2, minolta X-700

kodak colorplus 200, ektar 100, fuji 200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필름 기록 8. 전환점은 어디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