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기록 8. 전환점은 어디였을까

밤은 친밀하고, 아침은 적대적이었다.

by 김맥

나는 참, 잠을 잘 자지 못 한다. 어느 틈엔가 제대로 된 수면 패턴을 되찾았나 싶다가도, 갑작스럽고 이유도 없는 불면에 시달린다. 바로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청소년기에는 밤새 책 읽는 것에 빠져서, 혹은 소설을 쓰느라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특히 아버지)은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수학 문제를 하나 더 풀고, 영어 사전을 한 번 더 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요, 우리 아버지는 헬리콥터 타이거 파더의 전형이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눈높이에 내 성적은 언제나 모자랐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닿기 힘든 것이었다. (그야 그렇겠지요, 평균 95점이 뉘 집 멈머미 이름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결국 나는 책 읽고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있다. 애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의대에 가야 한다고 주입해도 정신 차리고 보면 그 애는 현대 무용을 전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기대와 압박은 적당히.)



옆길로 샜지만, 어쨌든 나는 그때도 새벽 두세 시가 되어야 겨우 아쉽게 잠을 청하는 청소년이었다. 그나마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것일 뿐, 누워도 쉽게 잠이 들지는 않았다. 라디오를 켜고 고스(웰컴 웰컴 웰컴)를 들으면서, 낄낄거리고, 소설을 쓰고 책을 읽는 불면의 밤은 그나마 즐거운 것이었다. 그런 것들이 없을 때, 그런 것들을 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런 때는 그야말로 지옥이 시작되었다.


둥실둥실 예쁜 꿈만 골라 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흔들린 사진처럼 정서가 불안한 청소년이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어쨌든 그 불안한 청소년이 아무 할 일도 없이, 목표 의식도 없이, 창작에 대한 욕구도 없이 어두운 밤을 맞으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불 속에 웅크려 하염없이 우는 일밖에 없었다. 뭐가 슬픈지도 잘 몰랐다. 그냥 머릿속에 떠도는 어두운 생각들, 우울한 풍경들, 괴로운 문장들을 끊임없이 곱씹으면서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그러다 보면 어둠에 점점 잡아먹히고 있다는 두려움이 솟구쳤다. 아침에 눈을 뜨지 못 할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아침에 눈을 뜨지 못 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나마 남아 있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걸.


원하건 원치 않건 시간은 흘러가는 법이고 예측할 수 없다. 사진이 얼만큼, 어떻게 탈지 미리 알 수 없는 것처럼.


이십대의 나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거의 바늘 끝 위에 발가락 하나로 버티고 서 있는 지경이었다고 할까. 떠오르는 몇 개의 기억만 주워 살펴봐도 터무니없는 일들 뿐이다. (그 시기를 함께 버텨준 파트너에게 숭배와 감사를…….)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스물세 살. 언젠가부터 나를 파먹기 시작한 불안한 병은 아예 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가오나시가 개구리를 집어 삼켰던 것처럼, 그렇게 그냥 꿀꺽 삼켜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안에 있으면 편안한 것은 어둠 뿐이었다. 생활 패턴이 뒤바뀌었다는 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혹은 해가 완전히 진 뒤에 일어났다. 불이 꺼지고 가로등이 켜지고, 모두가 집 혹은 집과 비슷한 곳으로 돌아가 나처럼 빈둥거리고 있을 듯한 시간대가 되어서야 안심이 되었다. 그때부터가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밤 아홉 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새벽 두세 시쯤 점심을 먹었다. 그렇다고 그 밤을 이용해 뭔가 쓰거나 읽은 것도 아니었다. 청소년기,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없었던 그때 그토록 바랐던 자유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나는 창의적인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꾸준히 글을 쓰기는 썼으나 거의 대부분이 2차 창작이었다. 나는 그 즈음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거의 사실이었다) 게임을 하거나 익명 사이트에서 밤새도록 시답잖은 글들을 읽으며 놀았다. 그러다 창밖이 새파랗게 밝아 올 때쯤이면 갑자기 백 년치의 좌절과 절망이 한꺼번에 나를 덮치는 듯 왈칵 슬퍼졌다.



그 무렵 내게 소원이 있다면 단 하나였다. 지금 잠들어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아침 해가 밝아오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출근을 하거나 등교를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파트너와 나 뿐인 집에서 혼자 공황 상태에 빠졌다.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두렵고, 믿을 수 없이 슬펐다.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푸르스름하게 동이 터 올 즈음이면 커튼을 닫아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누워봐야 잠이 들지 않을 걸 알기에, 버티고 또 버티다 기절 직전이 되면 침대로 가 누워버렸다. 그리고 눈을 뜨면 나는 다시 안락한 밤 속에 와 있었다. 그 시기에는 불면이 나를 구원했다. 그 불면을 일찍 치료했더라면, 내 병을 인지하고 치료하기 위해 더욱 애를 썼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지도 모른다.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는 그랬다.


이런 순간들은 애매하게 고통스러웠다. 흐리고 어둑한 날들.


시간이 흐르고, 사는 곳이 바뀌고, 내 인생의 많은 부분들도 바뀌었지만 불면증만큼은 도무지 떨쳐낼 수 없었다. 내일 아침 회사에 출근할 것이 두려워 잠을 자지 못 했고, 출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자지 않은 적도 있었다. 새벽 두 시, 세 시. 그런 시간이 오히려 친숙했다. 낮에 활발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해가 지고 나야만 마음이 편안했다. 왜냐하면, 함께 살지 않게 된 후로는 해가 진 후, 그러니까 퇴근을 한 후라야만 파트너와 만날 수 있었으니까. 함께 있다가 헤어져 내 방으로 돌아오면 또 익숙한 새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산적인 일을 하지도 않았다.


평생 아침과 낮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어쩌면 회사를 그만 두고 일 년 동안 글을 쓰게 된 그때부터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느 순간 그럭저럭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밤에 일찍 잠들지 못해 새벽 두세 시에 잠드는 건 여전했지만, 적어도 오전 열 시쯤에는 일어나게 되었고 아침부터 일을 하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글을 쓰다가 잠깐 나가서 산책을 하는 것도 즐거웠고, 날씨가 좋으면 덩달아 기분이 들떴다. 나는 내가 나아졌다고 믿었다. 완치되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난 완치된 건 아니었다. 지금도 투약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낮의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하게는 되었다.


지금은 또 그때와는 사정이 달라져서, 글을 쓰는 한편 시간에 맞추어 출근도 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은 많아졌지만 나는 이제 아침이 되어도 우울하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비몽사몽 스트레칭을 하고, 오늘의 할 일이 뭐였나 한 번 생각하고, 정해놓은 책을 좀 읽고, 출근하기 전까지 글을 쓴다. 그리고 출근해서는 즐겁게 수업을 하고, 저녁이 되어 돌아와서는 잠들기 전까지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혹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밤과 새벽의 어둠에 친숙해져 있었다. 사실은 지금도 그것을 좋아하기는 한다. 어둡고 안전하고 작은 곳에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예전처럼 일그러진 형태의 친분을 쌓지는 않는다. 밤에 매몰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컨디션이 아주 난조일 때를 제외하면. 그리고 설령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아침이 적대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일어나 보실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해가 뜨는 것 자체를 견딜 수 없었던 그때는 내가 말끔하고 알록달록하고 거대한 무언가로부터 덜렁 떨어져 나온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가 들어갈 만한 곳은 없었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거대한 무언가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사람들이 미웠고, 왜 나는 쓰레기처럼 떨려나온 주제에 사라지지도 않는지 괴로웠다. 나를 혐오했다가, 남을 미워했다가, 다시 나를 증오하기를 반복하다가 방전된 휴대폰처럼 툭 꺼지고는 했다.


뭐가 전환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언제부터 아침을 싫어하지 않게 되었는지.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하루를 더 살든 일 년을 더 살든, 십 년, 이십 년을 더 살든 그 세월 내내 아침이 오는 것을 괴로워 하면서 살기란 무척 힘든 일이 될 테니까.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밤에, 책을 읽다가 일어나 그럭저럭한 내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나는 울고 있지 않으니까. 절망하고 좌절하면서 흐느끼고 있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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