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기록 12. 깜빡이도 안 켜고 들어온 차기작

분신술 수강 희망

by 김맥


올해 초, 겨울에 찍은 사진만 보며 "여행 가고 싶다~"는 말만 영원히 반복하고 있는 3월이다.


지난 겨울 목디스크로 꽤 큰 수술을 한 우리 마님이 석 달만에 깁스를 풀었고,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고, 봄이 올 듯 말 듯 발길을 망설이고 있지만……. 나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네.


일이 주렁주렁!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진행 중인 소설 A, B를 각각 5월/6월까지 여유 있게 끝내고(여행도 다녀가면서 말이야) 7월 한 달 홋카이도나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이라도 갔다가, 8월부터는 C를 시작하고, 10월쯤부터 순서대로 D, E를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2월 초 출판사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출: 이러저러한 조건으로, 여기저기까지 맞춰드릴 수 있는데, 그런데 최대한 빠르게 론칭할 수 있을까요!

맥: 언제 론칭하는 걸까요!

출: 최대한…… 빠르게요!

맥: 최대한…… 빠르게라 하시면? (6월? 7월?)

출: 4월 정도요!

맥:


분신술 배워놓을걸.

세부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표적인 플랫폼에서 서비스하는 웹소설은 80화에서 120편 정도를 가지고 론칭을 한다. (완결이 아니다. 오픈할 때 한꺼번에 그 정도를 푼다는 것이다) 만약 하루에 한 편씩 쓴다면 오픈이 가능한 최소 회차를 채우기까지 80일에서 120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쓴다는 전제 하에.


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연재 중인 소설 A와, 오픈 예정인 소설 B를 동시에 작업하면서 나는 하루 최소 만 자, 최대 삼만 자 이상의 글을 매일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마 라이브(원고 완성과 플랫폼 업로드가 바로 이루어지는 것)가 아니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서 하루쯤 일이 손에 안 잡히면 자체 휴가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계약을 받아들이면 A, B를 제외하고 갑자기…… 등장한 ((A))만 매일 만 자씩 써야 한다는 계산이 섰다. 아주, 아주아주 늦추어 4월 말에 오픈을 한다 해도 그때가 이미 2월 초였고, 나는 절대로 라이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오픈 분량 외 비축분이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계약서 땡! 하는 순간부터 기존 작업에+매일 만 자를 써야 하는 스케줄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약을 했다.


일이 있는데 일을 또 쌓는 삶.


출판사 쪽에서 가지고 온 조건이 아주 좋았다. 내 담당자 분은 계약하겠다는 말에 기뻐하시면서도 일정 걱정을 하셨는데…….


나: 어떻게든 힘내보겠습니다.


일하는 내 표정과 비슷한 듯도.


그 다음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갑작스럽게 끼어든 이 차기작(내 친구 R은 이 차기작을 헐레벌떡 차기작이라 명명했다)을 매일 2편씩, 그리고 원래 쓰던 소설들을 요일별로 조금씩 나누어서 썼다. 헐레벌떡 차기작 2, A 2, B 1 혹은 헐레벌떡 차기작 2, B 3. 이런 식으로.


다만 기존 스케줄을 유지하면서 이걸 할 수는 없겠다 싶어서 어쩔 수 없이 평일 강의를 하나 빼고(새로 오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집에서 작업하는 날을 늘렸다. 2월까지는 원래대로 일을 했고, 3월부터는 빈 하루를 이용해 트리트먼트를 쭉 쓰고 딴 건 몰라도 급하게 끼어든 작업은 매일 2편씩 빼놓지 않고 가고 있다.


그 결과, 3월 초입을 살짝 넘어가는 이 무렵…… 총 72화를 완성했다.


된다니까요.

이 페이스대로 계속 간다면(갑자기 앓아눕지 않는 이상) 오픈 무렵에는 못해도 160화 이상 들고 론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모든 작업을 빠르게 해 왔지만


나: 이거랑 이거 이만큼씩 썼어!

R(1n년 전업작가): 이거 도라이 아니야?


이 작품만큼 빠르게 작업하는 건 이전에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는…… 잘 모르겠다. 또 이렇게 좋은 조건이라면, 뭐…… 한 10분 고민하다가 가보죠. 할 거 같다.


그건 그렇고, 11월에 여행도 다녀왔는데 브런치에는 글을 못 썼다. 일하다 죽어가서……

아무튼, 그렇다. 깜빡이도 안 켜고 훅 들어온 차기작 덕분에 한층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나는 일이 많으면 즐겁다. 아니 즐거운 것까진 아니라도 마음이 편하다. 아침에 스케줄러를 체크할 때마다 새롭게 힘내자는 생각을 한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지.


나: 이 정도면 나를 워커홀릭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

짝꿍: 그런 고상한 단어로 너를 표현해? 넌 그냥 일미치광이야.

나:


이제 꽃이 필 텐데, 미세먼지 없는 날을 골라 필름을 태우러 가야 하는데, 일미치광이씨는 아무래도 올 봄은 어려울 것 같아 아쉽다. 내년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쯤이 되면 꼭! 꼭 한 달 내내 여행만 다닐 예정이다. 어디로 가든 정말 딱 한 달은. 오로지 여행만 해야지.


터벅터벅.

올해는 얌전히, 경건한 마음으로, 유잼전개의 신님이 매일 축복을 뿌려주시기를 바라는 걸로.



minolta X-700

Nikon fm2

Kodak colorplus 200, ektar 100, portra 800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필름 기록 11. 흑백은 흑백만의 매력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