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그곳에는 항상
평소 길을 걸을 때,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땅을 보며 걷는 습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걸음은 무척 빠른 편이다. 보폭도 넓다. 우리집 노부부께서 늘 나의 발목과 무릎을 염려할 만큼 성큼성큼 걷는다. 그리고 앞을 노려보면서 걷는다.
하지만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얼굴을 자주 보게 된다. 서 있는 모습이나 앉아 있는 모습,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 분주히 걸어가는 모습, 서 있는 모습.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면서, 사진으로 찍으면 어떻게 보일까 생각한다. (물론 찍어본 적은 없다. 찍어도 되냐고 묻는 경우도 아주 드물다)
그렇기는 해도, 난 인물 사진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인물 스냅을 잘 찍는 방법을 몰라서 흥미가 안 생긴다고 해야 옳겠지. 그 대신 식물이나 정물, 혹은 건물의 일부를 찍는 것을 좋아한다. 아주 큰 무언가의 한 조각을 찍는 걸 좋아한다. 카메라를 들고 걷다 보면 수없이 본 풍경도 새롭게 보인다. 이 동네에, 이 도시 자체에 무뎌질 만큼 무뎌졌다고 생각하건만 뷰파인더를 통해서 보는 광경은 또 그렇지만도 않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도시가 지겨웠다. 따분하거나 지루하다는 감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낯설고 먼 어딘가로 떠나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하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확실했던 적은 없었다. 어쩌면 일일 수도 있고, 그냥 삶 그 자체일 수도 있었다.
여전히 이 도시에 머물고 있지만, 편안하고 익숙하고 안락한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지만, 요즘은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들을 조금씩 발견하곤 한다. 뒤집어 놓은 글자를 자꾸 보고 있노라면 내가 모르는, 배운 적 없는 낯선 암호처럼 보일 때가 있듯 나는 도시 속에서 암호처럼 은밀히 숨겨져 있던 풍경들을 발견하며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 화난 사람처럼 빠르게 걸어 지나칠 수도 있었던 건물을 돌아보고, 그 벽돌의 질감과 색깔을 살피고, 어떤 사진이 될지를 가늠하며 조리개를 조이고 푸는 찰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진은 여행 같다. 어디로 가든, 언제든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준다. 돌아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있고, 언제나 무언가가 있으므로.
nikon fm2, minolta X-700
Cinestill BWXX 250, Kentmere PAN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