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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준 Aug 19. 2019

딱딱함 뒤에 감춰진 부드러움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편지 다발들을 발견했다. 내가 군대에 있었을 때 받았던 편지들이었는데, 단 두 편지를 제외한 모든 편지의 보낸 사람과 주소에는 나의 아버지의 이름과 우리 집 주소가 적혀있었다.

 아버지도, 나도 꽤나 무뚝뚝했던 편이라 사이가 가깝지만은 못했는데도, 내가 훈련병이었던 시절에는 그 무뚝뚝하신 분이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써주었던 덕분이었다.

     

 그렇게 쌓여있는 편지를 보고 있자니 그때의 생각에 잠겼다. 언젠가 어머니가 귀띔으로 알려주신 새벽에 몰래 쓰고 계시던 편지 이야기를 들어서였을까.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이 편지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편지를 쓰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가족들이 잠든 시간에 홀로 편지를 써 내려갔을 그런 모습. 담고 싶은 마음도, 글도 많았을 텐데도 그것들을 억누르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을 그 모습 말이다.


 사실 편지의 문체는 평소라면 또 그런 딱딱한, 명령조와 같은 말투에 기분이 상했을 정도로 평소 무뚝뚝한 만큼이나 딱딱했는데, 그 딱딱함 뒤에 감춰진 부드러움을 알고 나서는 따뜻하고 부드럽게 읽히기만 했다.


 살다 보면 달콤함 뒤에만 부드러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딱딱함 뒤에도 부드러움이 감춰져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들이 꽤 많았다.


 그 말은 지난날의 그런 날카롭기도 했던 말들에도, 투박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말들에도, 그 안에는 부드러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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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운 사이라서 서로의 마음에 비수를 꽂을 정도로 아픈 말들을 주고 갈 때도 있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악의는 없다는 것을. 또, 그런 말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들과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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