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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Nov 20. 2021

한결같은 사람들이 있다.

난 그런 사람들이 좋다.

한결같은 사람들이 있다.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워도 희미한 빛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 나가는,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방향을 몰라도 목적지로 걸음을 옮기고, 수많은 일을 겪어도 결코 심지까지는 꺼트리지 않는. 종종 그런 사람을 보면 신기하고 부럽다. 도대체 무엇이 당신을 거기까지 걸어가게 했는지, 온갖 사람과 사건을 만나고도 최초의 소망을 간직해나갈 수 있었던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어제 그런 사람을 만났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 마치 필수불가결한 요소처럼 산재하는 불행과 고통이 없어지기를 바랐다. 화면과 지면을 통해 전달되는 비극에 무감한 인지와 순간의 연민을 보내는 대신, 그런 슬픔을 사라지게 할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 그런 꿈이 있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나 이타적인 목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결국은 타인인 존재를 어떻게 저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꿈을 꾸며, 사회인으로서 이제는 더 다양한 층위에서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당신을 보고서는 무척 부끄러워졌지만.


학교로 돌아오기 전 짧지 않은 공백 동안 꿈을 꾸는 것만큼 꿈을 포기하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기한다고 해서 실패자가 된다거나, 그렇다고 차선의 행복을 택하며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나중에는 싫어질 수도 있고,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일이 나중에는 가슴을 뛰게 만들 수도 있다. 요컨대 변하지 않거나 절대적인 건 없다는 뜻이다. 행복의 형태는 다양하니 나는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딘가 도달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거다. 생각지 못했던 곳에 다다라 있어도 거기서 또 다른 행복과 목표를 찾아내면 된다. 일견 계획없는 삶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게 훨씬 유연하고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당신은 처음 알았던 그때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한마디조차 닿지 않았던 시간 동안 잔잔히 타오르는 불꽃을 가슴 속에 품고서 안개 낀 길을 계속해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목표는 있었지만 불확실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나는 가끔 그 불확실함에 잡아먹힐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모든 걸 멈춰버리고는 했는데, 당신은 그런 불안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조금씩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힘든 것도 있었지만 자기 선택에 책임지는 시간이 좋았다는 말이 신기했다.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살자. 질리도록 되뇌는 말이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기는 어렵다는 걸 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꿈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놓아도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도록 심지를 태워내는, 조용한 열정을 가지고 결국 아주 오랜 꿈에 한 걸음 다가서는 사람을 보면 나는 멈추고 만다. 그 의지와 한결같음에 충격과 감동을 같이 받는다. 사실, 함께 나누고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여태 곱씹고 있는 진짜 이유는 그 많은 시간이 지나고도 한결같이 따뜻한 그 마음 때문이지만.


선택하고 해낸 일에 대한 자부심을 담고서도 담백하고 따뜻하기만 한 조언, 그 속에 단단히 쌓아온 열정과 끈기와 다정함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그 무언가를 정의하기에 내 언어는 여전히 추상적이지만, 그것을 명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나도 그처럼 한결같지만 다정한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나도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하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드러내지 않아도 늘 빛나고,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 하나를 품고 있는 사람이. 부딪치고 깨지는 게 두렵지만 몇 번쯤 그래 보아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점점이 이어진 삶의 행보가 나는 알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가리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한결같은 사람들이 있다. 뜻한 바를 좇으며 현실의 온갖 잔인함을 겪고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늘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주변인에 대한 온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 사실 세상은 책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답지도 다정하지도 않은데도, 타인을 위하는 온기를 놓지 않고 그것이 결국은 이 세상을 지탱한다고 믿는. 나중에 어디에 도착해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고싶다. 누군가에게 한결같다고 기억될 수 있는, 그런 사람.







21.11.21. 00: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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