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지빠귀는 참새목 딱새과에 속하는 흔한 여름새로 유럽과 아시아가 원산지이다. 식성은 잡식이며 지렁이를 즐겨 먹고 몸길이 29.5센티의 중형급 새에 속한다. 생김새는 꿩의 암컷인 까투리처럼 볼품도 없지만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 히히 호호~하고 음산하게 울어대서 일명 귀신새로 불리기도 한다. 호랑지빠귀는 생김새도 그렇고 울음소리도 마치 귀신소리처럼 소름이 끼쳐서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새지만 다른 산새들과는 달리 새끼들을 지켜내는 부성애가 무척 강한 새이다.
호랑지빠귀 수컷인 호영이는 오늘도 맛있는 지렁이를 잡아서 새로 마련한 높은 참나무 둥지 위로 힘들게 날아오른다.
얼마 전, 낮은 곳에 둥지를 지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알이 계속 털렸다.
호영이는 너무 낮은 곳에 둥지가 있어서 어치란 녀석들에게 알이 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흔히 산까치라고도 불리는 어치는 호랑지빠귀 같은 산새들은 물론 멧비둘기처럼 훨씬 더 큰
새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다.
어치는 산란철에 소리도 없이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둥지들을 파악한 후, 순식간에 산새들의 알과 새끼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산새들에게는 아주 포악한 강도인 셈이다.
그런 어치들에게 둥지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호랑지빠귀 부부는 훨씬 더 높은 참나무 가지에 둥지를 지었다.
덕분에 호영이는 새끼들에게 먹일 지렁이를 잡아서 힘들게 둥지로 날아올라야 했지만 여름철 장마 동안에도 새끼들을 잘 길러냈다.
그런데 어느 날, 어치 한 마리가 호랑지빠귀 둥지 근처에 날아들었다. 역시 녀석은 호랑지빠귀의 새끼들을 노렸던 것이다. 둥지에 앉아 있던 호랑지빠귀 암컷인 호순이는 어치를 보자 잔뜩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새끼들을 지켜야 할 아빠 호영이는 보이지 않았다.
자칫 하면 어치에게 새끼들을 잃어야 할지 모르는 호순이는 어치를 향해 끽끽 소리를 내며 필사적으로 경고를 하였지만
어치는 그런 호순이를 보고 가소롭다는 듯 아랑 곳 하지 않고 둥지 가까이 날아들었다.
순간, 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호영이는 급강하를 하면서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어치의 몸통과 머리를 강하게 공격했다.
호영이의 공격을 받은 어치는 깨~액!~하며 비명을 질렀고 깃털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순간적으로 기습을 받은 어치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줄행랑을 치고 말았는데 호랑지빠귀 수컷인 호영이의 완벽한 승리였다.
먹이를 잡으러 갔던 호영이는 암컷의 다급한 비명소리를 듣고 둥지로 날아오다가 어치를 발견하고는 어떻게 싸워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같은 고도에서 어치와 일대일로 싸워서는 호영이 자신에게 무척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치는 몸길이가 34센티나 되면서 힘도 훨씬 더 셀뿐 아니라 맹금류답게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어치와 정면에서 싸워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호영이는 어치가 보지 못하는
아주 높은 나뭇가지 위로 날아올랐다가 둥지에 접근하는 어치를 향해 급강하 공격을 하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힛앤런"치고 빠지는 전략을 펼쳤는데 이것은 이차대전 때 일본의 제로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던 미군의 와일드켓 조종사들이 즐겨 사용했던 전략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제로전투기를 상대했었던 미군의 와일드 켓 전투기들은 민첩성과 선회능력이 훨씬 뛰어난 제로전투기들에게 전쟁 초창기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차대전 당시에는 지금처럼 미사일로 적기를 격추시키는 방식이 아닌 상대방의 꼬리를 물어서 기관총을 난사해 떨어뜨리는 방식이었는데 미군의 와일드 켓이 일본 제로기의 꼬리를 잡았다 할지라도 순식간에 제로기가 선회해서 반대로 와일드 켓의 꼬리를 물고 기관총을 난사하니 미군기들은 그대로 격추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제로기를 상대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던 한 장교가 급강하 능력은 미군의 와일드 켓이 일본의 제로기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힛앤런"전략을 고안해 낸 것이다.
즉~제로기보다 훨씬 더 높은 고도를 선점한 다음 거의 수직으로 급강하해서 제로기에게 기관총을 퍼부운 뒤 다시 높은 고도로 날아오르는 전략을 쓴 결과 이번에는 제로기가 와일드 켓에게 사냥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제로기는 기골이 워낙 약해서 와일드 켓처럼 급강하 공격을 했다가는 날개가 꺾여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에
"힛앤런"전략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전략을 호랑지빠귀가 어치를 상대로 쓴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이처럼 야생의 세계는 인간들이 미처 상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것도 약한 새들이 강한 적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진화의 과정을 거친 결과인 셈이다. 그러나 어치가 도망갔다 할지라도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싸움에서 패했던 어치가 자기 친구들을 무려 세 마리나 더 데리고 온 것이다. 어치는 정말 지능이 높고 영리한 녀석이다.혼자서는 불리하다고 여겼는지 친구들을 여러 마리를 데리고 다시 왔다는 것은 새들 사이에도 자기들만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복수를 하기 위해 친구들을 데리고 올 수는 없지 않겠는가?역시 어치란 녀석들은 새들사이에서도 지능이 최고로 높은 까마귀과라 그런지 생각을 하면서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새이다. 흔히들 머리가 나쁜 사람들을 일컬어"새대가리"라고 놀리기도 하는데 앞으로 이런 표현은 쓰면 안 될 것 같다. 새들 중에는 까마귀처럼 지능이 뛰어난 새들도 많기 때문이다
어치 한마리가 호랑지빠귀 둥지 근처에
내려 앉아 기회를 엿보고 있는 모습.
어치 네 마리가 호랑지빠귀 암컷이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잔뜩 웅크리고 있는 둥치 근처를 날면서 신경전을 펼친다. 이때도 역시 호랑지빠귀 수컷인 호영이는 보이지 않는다. 둥지를 맴돌던 어치 한 마리가 둥지 가까이에 내려앉자 또다시 보이지 않던 호영이의 날카로운 기습 공격이감행된다.호영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어치들이 생각지 못했던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호랑지빠귀 수컷은 어치가 물러간 뒤에도 또다시 올 것을 경계해서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호영이의 기습공격을 받은 어치 한 마리는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도망을 갔다. 그렇게 호랑지빠귀 수컷인 호영이는 어치 네 마리를 상대로 홀로 치열하게 싸웠다.만약 호영이가 새끼들을 지키겠다는 부성애 하나만으로 어치들을 정면으로 승부했다면 일대일로 싸웠다 할지라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더구나 한 마리도 아닌 네 마리를 상대로 싸운다면 자신마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호영이는 계속해서 "힛앤런"전략을 썼던 것이다.
어치들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적에 의해 계속 해서 기습공격을 당하다 보니 숫자적으론 훨씬 유리했어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들 수가 더 많아도 적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으니 아무리 영리한 어치들일지라도
"힛앤런"전략을 쓰는 단 한 마리의 호랑지빠귀 수컷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게릴라 전법을 쓰는 녀석이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호랑지빠귀 수컷인 호영이는 둥지에 날아든 어치만을 상대로 기습공격을 가한 후 다시 높은 나뭇가지 위로 날아올랐다가 또 둥지에 내려앉는 어치를 향해 급강하하면서 어치들의 혼쭐을 빼놓았다. 결국, 영리하고 힘센 어치들도 호영이의 공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모두 달아나고 치열했던 싸움은 어치보다 훨씬 더 작았던 호랑지빠귀 수컷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호랑지빠귀 수컷이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싸움에서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힛앤런"전략으로 용감하게 싸워 이긴 것은 마치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인 미국의 F-22 랩터기가 스텔스 기능이 없는 전투기와의 모의 공중전에서 144대를 격추시키는 결과를 낸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야생의 세계는 겉으론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삶과 죽음이 치열하게 교차하는 전쟁터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