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일이 꼬이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실타래를 풀려고 애를 써봐도 한번 헝클어진 실타래는 더욱더 복잡한 매듭을 지어낼 뿐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그것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은 복잡한 매듭을 풀기보다는 차라리 칼로 한 번에 잘라
버리는 게 더 낫다고도 하였다. 즉~엉킨 매듭을 풀려고 애를 쓰는 것보다는 단칼에 잘라버리면 된다는 무시무시한 정복자의 해결방식.
진돌이와 나의 관계도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풀지 못할 매듭이 되고 말았는데
해결할 방안은 단 두 가지.
1. 당장이라도 짐 싸들고 진돌이를 피해 이사를 가는 것.
2. 진돌이를 주인아줌마에게 비싼 돈 주고 사서 개장수에게 보내는 방법.(알렉산더 대왕식 해결법)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진돌이를 주인네 식구들이 자기 가족처럼 아끼는 상황이라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래서 자존심 구겨질 대로 구겨지지만 전자의 방법을 택할 찰나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경찰서 내부 구조조차 봐 온 적이 없을 정도로 모범생으로 살았던 내가 진돌이 때문에 도둑놈으로 잡혀서 지구대에 끌려왔으니 이거야 말로 개그콘서트에나 나올법한 사건 아니겠는가? 나의 뒷조사를 해 본 경찰은 내가 아무런 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란 것을 알고는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조상님의 은덕으로 아주 손쉽게 도둑 하나를 잡았다고 좋아라 했는데 전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를 그냥 보내주기가 미심쩍었는지 결국은 주인아줌마를 지구대에 불러서 확인을 받고 나서야 나를 잡았던 경찰은 입맛을 쩝쩝 다시고는 겨우 풀어주었다
그렇게 지구대를 나온 우리 두 사람은 기가 막혀서 겸연쩍은 미소만 지었을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주인아줌마는 내가 자기 집 개 때문에 담치기를 하다가 경찰에게 도둑으로 잡혀서 지구대 신세까지 졌으니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진돌이와 그렇게 친해질 수가 없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직도 주인아줌마는
진돗개에 대한 특성 자체를 모른다.
진돗개들은 주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 한번 틀어지면 절대로 관계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뭐~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진돌이가 나를 보고 죽어라 짖을 때마다 주인이 몽둥이로 디지게 패면 되는데 아줌마 성격상 도저히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제 담치기 한다는 사실을 주인아줌마도 알게 되었으니 오늘 저녁은 또 어떻게 하지?
또 예전처럼 출퇴근할 때마다 아줌마 불러서 진돌이 붙잡아 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 이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으니 자존심 나발이고 내 세울 것 없이 주인아줌마에게 전셋돈 당장 빼 달래서 하루라도 빨리 이 집을 벗어나는 게 젤 현명한 방법 일 것이다. 경찰에게 한번 된통 혼이 난지라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예전처럼 담치기를 하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대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대문을 살짝 열어보았더니....
당장이라도 뛰쳐나와야 할 진돌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라? 이 녀석이 또 어디가 아픈가? 집안이 왜 이리도 조용하다냐? 대문을 반쯤 열어보았으나 역시 진돌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진돌이가 집에 없는 것이다.
거참? 이상하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히 있던 녀석이 도대체 어디로 갔지?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진돌이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와 진돌이와는 절대로 한 집안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주인아줌마가 깨닫고는 진돌이를 시골집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렇게 진돌이와의 전쟁은 주인아줌마의 현명한 선택으로 일단락되는 듯하였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 후 집에 와 보니 진돌이 녀석이 돌아와 있었다!!!~~
녀석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나는 또 뒤로 나 자빠지고 말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돌이는 아니었다... 얼핏 보면 비슷하게 생겼지만 진돌이는 보통의 진돗개에 비해 이마가 좁으면서 주둥이가 여우처럼 뾰족한 편이었지만 이 녀석은 이마가 넓고 주둥이도 약간 뭉특한 전형적인 진돗개 모습이었던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기절한다 했듯이 진돌이 동생 진철이를 보고 그렇게 놀랐던 것이다
진철이... 진돌이의 바로 밑의 동생인데 친화력이 아주 좋은 녀석으로 집 지키는 개가 필요했던 주인아줌마는 성질 더러운 진돌이 녀석 대신 진철이를 데리고 왔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성질 테스트를 해 본 결과 진철이는 나에게 아무런 적대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한 집안에 사는 사람으로 인식했는지 꼬리를 흔들면서 아주 우호적으로 나를 반겼다. 똑똑한 진돗개들은 같은 집안에 사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금세 판별을 하는 능력이 있는데 진돌이 녀석은 아마도 그런 쪽으로는 조금 덜 떨어진 녀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좋은 관계가 되었고 나는 진철이에게 틈나는 대로 맛난 먹이를 제공한 결과
이제는 주인네 식구 못지않게 나를 좋아하는 사이로 발전하였다. 진돌이 때문에 서둘러 이사를 가려고 했던 계획도 자연스레 취소될 수가 있었는데 만약 진돌이가 있었을 때 이사를 갔었다면 나는 개에게 쫓겨나는 꼴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진작에 진철이를 데려왔었다면 내가 경찰에게 붙잡혀가는 불상사도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주인네 식구들에게 나란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는 그런 몰상식한 사람은 아니라는 오해를 풀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진철이와는 일 년을 함께 더 살고
그 집을 마지막으로 새집을 사서 이사를 하였다.
벌써 20여 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진돌이에게 당한 그동안의 일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되는 것도 어찌 보면 녀석과 나 사이에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마치 고장 난 영사기가 한 장면만을 계속 틀어대는 것처럼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진돌이와 나 사이의 전적을 살펴보자. 과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개와 싸우면 어떻게 될 것인가?
1. 나만 보면 으르렁 거리는 진돌이 녀석을 주인네 식구들이 없을 때 복날 개 패듯이 디지게 패서 항복을 받아냈다.(개 보다 더한 놈)
2. 그러나 주인네 식구들이 돌아온 후에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무릎 꿇고 싹싹 빌어 항복했다(개 만도 못한 놈)
3. 진돌이를 할리데이비슨에 태워서 5일 동안 뻗게 만들어 녀석을 또다시 이겼다.(또 개보다 더한 놈)
4. 진돌이의 보복을 피해 담치기를 하다가 이번엔 경찰에게 도둑으로 잡혀 또 싹싹 빌었다.
(이번에도 역시 개 만도 못한 놈)
5. 주인아줌마가 진돌이를 시골집으로 보내서 진돌이와의 싸움은 끝내 무승부가 되었다
( 무승부=개와 같다. 그래서... 나는 결국 "개 같은 놈"이 되고 말았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