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돌이는 내가 이제껏 경험했던 많은 개들 중에서는 단연 특별한 녀석이었다.
한 집안에 사는 사람을 볼 때마다 죽어라 짖어대고 물려고 하는 것으로만 따지자면 변견이지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서는 진돗개 순종 같기는 하다.
녀석은 자기가 어떻게 해야 나를 꼼짝 못 하게 하는지를 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짖을 때도 마치 사람이 상대방에게 말을 하는 것처럼 주인 얼굴 한번 쳐다 보고 왕! 왕!~짖고
또 나를 쳐다보며 들으라는 듯이 또 그렇게 왕! 왕! 짖어대는 개는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나는 진돌이 녀석 때문에 영락없는 밤손님이 되고 말았으니 이일을 어찌하면 좋다냐... 담치기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떻게 매번 녀석이 무서워 멀쩡한 대문 놔두고 담을 뛰어넘어야 한단 말인가? 입에서는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그렇다고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내가 녀석이 보는 앞에서 담치기를 하자 처음에는 진돌이 녀석도 기가 막혔는지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보더니 어느 날부터는 내가 담치기를 하려고 하면 또 죽어라고 짖어대는 것이다.
도둑이야!!~도둑!!!~~ 도둑 잡아라!!!~~ 왕! 왕! 왕! 왕! 왕!~~~ 펄쩍!~ 펄쩍!~야이!~도둑놈아!!~~ 왕! 왕! 왕! 왕! 왕!~~
저런.... 썩을 녀석이... 내가 누구 때문에 도둑님이 되었는데.... 조용히 안 해!~그냥!~콱!!~
담을 뛰어넘다가도 울화가 치밀어 올라 나는 녀석에게 한껏 눈을 부라리며 째려보았다.
어제 아침에는 출근하기 위해 담치기를 하다가 담벼락에 박아놓은 못에 바지 끝이 걸려 찢어지는 바람에 내 바지는 한쪽만 나팔바지가 되고 말았는데 덕분에 나는 최첨단 언바란스 나팔바지를 입은 채로 회사까지 출근했다.
회사로 출근하는 동안 거리를 활보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한쪽만 나팔인 언바란스 나팔바지를 선도하는 유행의 첨단을 걷는 사람이 되기도 하였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뭇사람들의 따가운 눈총 세례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진돌이 때문에 출퇴근할 때마다 마치 의적 일지매인양 새처럼 가볍게 담을 뛰어넘는 수준이 되었는데 모든 일은 항상 절정이 있게 마련이고 언제까지 내가 담치기의 달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 아침...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우레와 같은 진돌이의 함성을 들으며 담치기를 해서 사뿐히 땅에 내려앉았는데... 제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 하나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문득 내 눈앞에 들어오는 독수리 문향의 마크와 함께 명찰이 달린 제복을 입은 사내는? 흠... 다름 아닌 경찰...
뭐여? 그럼.. 내가 담치기를 해서 낙하한 지점이 하필이면 경찰 앞이었단 말이네? 에고!~에고!~어째 이런 일이? 이웃집에 도난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 앞에 담치기를 해서 낙하했으니 이런 것을 보고 오비이락 (烏飛梨落)이라 했던가?
경찰도 처음에는 너무 황당했던지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갑자기 사람이 뚝~떨어졌으니 경찰도 얼마나 놀랐겠는가?
두 사람 사이엔 극히 짧은 시간 침묵이 흘렀고 경찰의 눈에 내가 도둑님 일 것이란 상황 판단이 선 것은 당연할 것이다. 경찰은 곧 나의 한쪽 팔을 낚아채고선 근엄한 얼굴로 바라봄과 동시에 입가에는 야릇한 미소를 떠 올렸다.
우왕!!~이것 봐라? 어제 꿈에 조상님이 보이시더니 이게 웬 떡이다냐?
도둑이 제 발로 떨어져 내게 잡히다니!!~그럼.. 난... 특별수당에다 포상휴가까지? 우히히히히!!~~
내 팔을 뒤로 꺾어서 잡은 경찰은 입이 귀까지 걸릴 정도로 헤벌레 좋아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반대로 나의 인상은 마치 벌레씹은 표정으로 사정없이 구겨질 수 밖에는 없었다.
아~휴!~맑은 하늘에 이게 웬 날벼락이람? 어제 꿈자리가 사납더니 하필이면 경찰 앞에 떨어질게 뭐다냐... 재수 옴 붙었네... 에~고!~아저씨!~이거 팔 좀 어떻게 놓고 말하자고요..
지는 도둑이 아니라 이 집에 사는 사람인디요...
경찰에게 한쪽 팔을 꺾인 나는 고통스러워 다 죽어가는 소리로 사정을 하였지만 경찰은 쉽게 팔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사정하고 나서야 경찰은 겨우 꺾인 팔을 풀어주면서 도둑이 아니면 대문을 놔 두고 왜 담을 뛰어넘었으며 개가 저렇게 난리를 치면서 짖을 수가 있느냐는둥 여러 정황으로 보아 나는 틀림없이 도둑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의심의 눈초리로 한껏 나를 째려보더니 일단 내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아!~예... 물론 신분증 여기 있지요.
뒤적뒤적.. 오잉? 아차!~옷 갈아입고 급히 나오느라 신분증을 깜박 잊고 나온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하나? 나를 증명할 신분증도 없으니 나는 결국 꼼짝없이 도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또다시 근엄한 얼굴로 바뀌면서 한마디 하였다.
귀하를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귀하께서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나발나발. 따발따발. 알아듣거나 말거나. 철커덕!!~~ 뭐여? 이게... 요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은팔찌? 아이고!!~엄니!!~진돌이 녀석 덕분에 나 경찰에게 도둑놈으로 잡혀가유!!~흑. 흑.
그렇게...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구경조차 해본 적도 없는 은팔찌를 차고 경찰에게 끌려가는 도둑놈 신세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