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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인 Jun 25. 2024

진돗개와 싸웠다 12화

나는 담치기의 달인

나를 물어뜯겠다고 펄펄 뛰는 진돌이를 주인아줌마로 방패 삼아 겨우 겨우 대문을 빠져나왔지만 앞으로 전개될 일들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린다. 진돌이 녀석이 이제는 개가 아니라 사자와 같은 맹수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녀석의 사정권 안에 들어서면 내 발꿈치는 물론 어디든 물어뜯으려 하는데 이 정도 상황이면 주인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강력하게 항의하고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주인아줌마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기 개가 짖기만 할 뿐이지 설마 나를 물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단 한 번도 진돌이가 나를 무는 것을 아줌마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녀석이 얼마나 영악한지 나를 물때는 주인이 보지 않을 때만 물었다. 그것도 표시가 별로 나지 않는 발꿈치를 무는데 물려서 피가 나지 않을 정도만 문다. 표시가 나지 않으니 내가 개에게 물렸다고 항의해 보았자 증거가 없으니 나만 이상한 인간이 될 뿐이다.

그러나 개에게 물릴 때 그 공포감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느끼지 못한다. 이 정도면 녀석은 개가 아니라 거의 사람에 가깝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가 생각을 하면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진돌이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 사람은 물론이고 개와 같은 짐승에게도 서로 간의 신뢰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진돌이와 나의 신뢰 관계를 깨뜨리고 말았다. 내가 준 계란프라이를 먹고 지옥의 맛을 톡톡히 경험했던 녀석은 그 후로 내가 주는 먹이는 그 어떤 것도 먹지 않고 발로 질근질근 밟아버렸다.

진돗개가 똑똑하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맛있는 먹이라도 신뢰를 깨뜨린 인간이 던져준 음식은 절대로 먹지 않고 발로 짓밟을 줄이야...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전처럼 통행세를 내도 진돌이 집 앞을 무사히 지나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이런 것을 두고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고 했던가... 처음에 녀석에게 으르렁 거리지 말라고 아주 가볍게 알밤을 콩!~하고 먹인 것이 발단이 되어 지금은 진돌이와 나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  원수 지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차라리 그때 알밤을 먹이지 말고 아부를 하면서 온갖 먹이 공세를 펼쳤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녀석을 응징하면 응징할수록 그것에 비례하여 나에게 돌아오는 복수의 칼날이 더 커지니.... 집에 돌아와서도 대문을 열고 진돌이가 지키고 있는 마당을 지나서 이층 내방으로 올라갈 일이 서울에서

부산만큼이나 아득히 먼~길이 된 것만 같다.
이젠 정말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이사를 가야만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처럼 진돌이에게 물어뜯길까 전전긍긍하면서 주인아줌마를 방패로 삼아야 출, 퇴근을
할 수 있겠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퇴근 후 집에 도착했어도 예전처럼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기가 겁이 나서 한참 동안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아주 쪼금 대문을 열어본 찰나... 역시 기다렸다는 듯 녀석이 큰 소리로 짖으며 나에게 달려들었고 동시에 나는 놀라서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왕! 왕! 왕! 왕!~~ 야이!!~~ 개보다 더한 인간아!~ 지난번 나를 이겨서 기분이 좋았다더냐!~~ 왕! 왕! 왕!~~ 내가 대문을 지키고 있는 이상 한 발짝도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줄 알아라!!~~ 왕! 왕! 왕!~펄쩍! 펄쩍!~왕! 왕!~

녀석은 마치 내가 대문을 열고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놓을라 치면 번개처럼 달려들어 나를 갈기갈기 찢을 듯이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면서 맹렬히 짖어대며 길길이 뛰고 있었다. 녀석에게 물려 죽을까 봐 도저히 한 발짝도 대문 안으로 들어설 수 없는 상황이다. 별수 있겠는가... 할 수 없이 또 주인아줌마를 전화로 불러서야 아줌마를  방패로 삼아 이층 내 방으로 올라갈 수가 있었는데 이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주인아줌마를 방패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진돌이를 진정시킬 다른 방도가 전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또 기다시피 내방을 나와 마당에 들어섰지만 진돌이가 앞을 막고 버티고 있는 대문쪽으로는 갈 수가 없었다. 녀석이 어제와 같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조금이라도 사정권 안으로 내가 들어오면 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진돌이의 사정권 밖에서 녀석에게 또다시 백기 투항을 시도했다. 돌아!~이제는 정말로 내가 잘못했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너를 이기려 하지 않겠으니 제발 화 좀 풀고 나 좀 보내주라. 성질 같아서는 나도 너에게 물린 만큼 물어주고 싶지만 사람이 개를 물 수는 없지 않니...
개인 네가 인간인 나를 무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이 개를 문다는 것은 해외 토픽감이 된단다.

그러니 이제는 나에 대한 노여움을 풀고 용서를 해주면 앞으로 절대로 네가 좋아하는 먹이에 설사약 넣는 일은 없을 테니 제발 이번 한 번만 봐주라... 그러나 진돌이는 나의 진심 어린 백기투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노라 맹렬히 짖어댈 뿐이었다. 별 수없군... 대문을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는데.... 그때 문득, 내 눈에 띈 것이 바로 우리 집 담이었다. 그렇지!~~ 바로 담치기를 하면 되겠네? 담치기라..... 뭐~학교 다닐 때 담치기는 나의 장기중 하나였는데... 그 장기를 또 이럴 때 써먹게 될 줄이야.

알았다!~알았어!~진돌이 이 녀석아!~이제 더 이상 치사하게 사정하지 않으마.

다행히 우리 집 담벼락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서 몸이 가벼운 나에게는 더 없는 운동기구였다.
그렇게 나는 멀쩡한 우리 집 대문을 이용하지 못하고 출퇴근할 때마다  진돌이가 무서워서 담치기를 해야 하는 도둑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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