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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인 Jun 11. 2024

진돗개와 싸웠다 10화

나는 주인아줌마에게 거짓말하지 않았다

나는 주인아줌마에게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왜냐고? 나는 진돌이에게 절대로 상한 음식을 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먹는 아주 아주 신선한 계란프라이를 주었을 뿐이고 단지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남아 있는 설사약을 진돌이가 좋아하는 계란프라이에 듬뿍 첨가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주인아줌마의 물음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솔직히 말할 수 있었다.
물론 대답은 하면서도 양심에 찔려 다리는 사정없이 떨고는 있었지만.....

일단 계란프라이와 설사약을 따로 분리를 한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식품과 약이다. 계란 프라이는 잘 알다시피 고단백 완전식품이고 설사약은 장에 이상이 생겼을 때 그 병을 치료하는 약이다.
고로, 이것을 필요에 맞게 따로따로 섭취하거나 복용한다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계란프라이를 섭취하면 우리 몸을 지탱하는 뼈와 살의 성분이 될 것이며 설사약은 변비가 아주 심하게 왔을 때 복용하면 십 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릴 정도로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 약이다.

그런데 이것들을 같이 섞어놓으면?
음.... 다름 아닌 불량식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주인아줌마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면?

아저씨!~~ 혹시 우리 진돌이에게 불량식품 먹인 적이 있으세요?

예? 아... 예!.... 저기.... 저기.... 진돌이가 변비에 걸려 고생하는 것 같아서 계란프라이에다 설사약을 듬뿍 넣어설라무니...

나는 이렇게 모기소리만 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줌마 귀에 들릴락 말락  기어들어가다시피 실토를 했을 것이다. 내 인생철학이 절대로  사람들에게 거짓말하지 말자였으니까. 흠.... 흠...
그러나 주인아줌마는 나에게 상한 음식을 진돌이에게 준 적이 있었냐 물었고 나는 아주 당당하게 절대로 상한 음식을 진돌이에게 준 적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고로, 내가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은 전혀 없다. 암!...

 4일째 되던 날 드디어 진돌이가 집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동안은 자기 집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못한 채 주인아줌마가 정성껏 끓여준 죽을 아주 조금씩만 먹었던 것이다. 꼬리는 축~늘어뜨리고 다리에 힘이 없는지 가만히 서있는 것조차 무척 힘겨워 보였는데 나를 쳐다보는 녀석의 눈동자도 마치 오뉴월 썩은 동태눈깔처럼 희멀건하니 초점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웬만한 사람도 한번 타기 어려운 1,200cc 할리데이비슨을 개로 태어나서 꽁무니에서 연기가 나도록 원 없이
몰다가 사고로 병원까지 실려갔었으니 아마도 그 후유증이 대단했을 것이다.

비록 천하에 둘도 없던 나의 적이었지만 예전의  기고만장하고 펄펄 뛰었던 진돌이를 보다가 지금은 몸조차 제대로 가누기도 버거운 초라한 몰골의 녀석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연민의 정이 샘처럼 솟아올랐다.
회사에 출근하기 전, 측은한 마음을 한껏 담아 진돌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녀석은 나에게 완전히 복종을 하듯 눈을 감고는 나의 손길을 아무런 반항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 진돌이를 뒤로 한 채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회사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을 하면서도 녀석을 완전히 이겼다는 묘한 도취감에 기분은 하늘을 나는 듯하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진돌이와의 전쟁은 일방적인 나의 승리로 이렇게 끝이 나고  평화가 찾아들 것인가...

5일째 되던 날 아침도 녀석은 마치 나를 배웅하듯이 집 밖으로 나와서 희멀건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였다. 진돌이를 어제와 같이 머리를 쓰다듬고는 아무 생각 없이 기분 좋은 휘파람을 불며 출근을 하였다.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진돌이에게 매일 통행세를 바치기 위해 들렀던 편의점 알바생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보자 반가운 듯 웃으며 묻는다.

이젠 아저씨 개에게 통행세 바치지 않아도 되나요? 호호호!~

매일 오던 사람이 며칠째 보이지를 않으니까 궁금했었던 그녀의 웃음소리에는 묘한 여운이 감돌았다. 집에 들어가기 위해 햄버거로 통행세를 매일 개에게 바쳐야 하는 딱한 인간을 동정하는듯한. 그녀의 질문에 나 또한 승자의 여유로운 웃음으로 환하게 답했다.

어!~내가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아주 확실하게 고쳐놓았으니까 더 이상 통행세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하하!~

나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진돌이가 나에게 완전히 항복해서 순한 양이 된 줄로 알았었지만 착각은 커트라인이 없다고 하였듯이 그것은 순도 100%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에겐 더 큰 지옥문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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