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동인 Jun 04. 2024

진돗개와 싸웠다 9화

승리의 나팔을 불어라

인간은 맹수와 같이 날카로운 이빨도, 코끼리처럼 커다란 덩치와 힘도, 새와 같이 하늘을 비상하는 날개도 갖지 못했다. 그렇게 보잘것없는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동물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떠한 짐승도 갖고 있지 못한 높은 지능과 사고력이 있었기에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하찮은 개와의 싸움에서 인간이 패해 통행세를 내는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다.


아무리 영악한 진돌이 녀석이라 할지라도 설마 자기가 오토바이를 타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과연 진돌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심 궁금했다.
녀석이 배기량이 너무 큰 오토바이를 과속으로 몰다 행여 대형사고나 쳐서 병원으로 실려 가지나 않았는지. 집 앞에 당도해서 나는 만에 하나 오토바이 전략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녀석에게 바칠 햄버거 하나를 사들고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언뜻 보기에도 집안은 진돌이가 굉음을 내며 오토바이를 탔던 흔적이 역력했는데 주인아줌마가 마당을 물 청소 했는지 아직도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채 집안은 고요했다.
햄버거를 손에 쥔 체 일부러 진돌이 집 앞을 그냥 한번 지나쳐 보았다. 여느 때 같으면 당장이라도 집안이 울릴 정도로 우렁차게 짖으면서 녀석이 뛰쳐나와야 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오토바이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우하하하!!~~

그냥 내방으로 올라갈까 하다가 진돌이 상태가 내심 궁금해서 다시 발길을 돌려 녀석의 집 앞에 조심스럽게 쪼그리고 앉아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두컴컴한 좁은 집에 마치 뱀처럼 동그랗게 똬리를 틀고 자기 몸 깊숙이 머리를 묻은 진돌이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나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을 자는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녀석은 깊은숨만 내쉬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녀석의 엉덩이를 살짝 찔러보았다.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자칫하면 진돌이의 일격에 내 콧잔등을 물릴지도 모르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사가 귀찮은 듯 끙끙거리는 신음소린지 으르렁 거리는 소린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소리만 낮게 낼뿐 진돌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미안한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녀석에게 그동안 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 제대로  통쾌하게 골탕을 먹였다는 환희의 기쁨이 쳐나야 하겠지만 내가  심하지 않았나 하는 연민의 마음의 드는 것이다. 나는 말없이 진돌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진돌아... 살다 보면 인생의 쓴맛... 아!... 너는 개니까 견생이라고 해야겠구나. 견생의 쓴맛 단맛 다 보며 사는 거란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으니 이번일을 계기로 이제는 네 주제를 확실히 파악하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이기려 했다가는 이렇게 호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햄버거의 포장지를 벗기고 진돌이의 머리맡에 놓아두고는 살며시 일어났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길에 주인아줌마와 그만 맞 부닥혔다. 그동안 진돌이 때문에 주인네와 나는 눈길도 마주치지 않는 아주 불편한 사이가 되고 말았기에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면 서로가 영~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마지못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그냥 지나치려는데 아줌마가 한마디 하였다. 저기요... 아저씨... 혹시 진돌이에게 상한 음식을 준 적 있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심장을 바늘로 찔린 듯 뜨끔했지만 나는 예수를 팔아넘긴 가리옷 유다의 뻔뻔스러운 얼굴로 태연하게 말했다.

아뇨? 상한 음식이라뇨? 잘 아시잖아요? 제가 아침저녁으로 그동안 진돌이에게 얼마나 많은 계란 프라이와 햄버거를 줬는지 아세요? 저도 진돌이 참 좋아하거든요? 근데 제가 무슨 상한 음식을 줬다고 하시는지... 물론 그 말을 하면서도 양심에 찔려 다리는 사정없이 떨고 있었지만 아주 뻔뻔하게 한 마디 하자 아줌마는 그저 고개만 꺄우뚱할 뿐 더 이상 나에게 다그칠 수가 없었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하긴... 그래요... 아저씨가 우리 진돌이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는 있어요...

 내가 진돌이를 아낀다고? 나참!~~ 이보슈!~~ 아줌마!~뭔 견같은 소리를 그리도 부담 없이 한다요? 나!~진돌이 정말 싫거든? 뭔 놈의 개가 자기 주인식구 아니라고 이리도 사람을 괄시하는지.. 이개 정말 진돗개 맞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여전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꿋꿋이 오리발을 내밀었다.

아니... 진돌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아줌마가 내게 말했다.

어제 아침부터 진돌이가 너무 설사를 많이 해서 병원에 데려갔었는데 급성장염이라고 하던데요?
상한 음식을 잘 못 먹으면 그렇다 하네요... 얼마나 설사를 많이 했는지 집안이 온통 난장판이 됐어요.
그래서  진돌이에게 상한 음식을 준 적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혹시 진돌이 먹는 사료가 상한 게 아닐까요?
요즘 불량 사료도 많다고 하던데 사료 좀 수거해서 "국과수"에 함 의뢰해 보세요?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나는 황당하게 서있는 주인아줌마를 뒤로 한 채 대문을 열고 나왔다.
완벽한 연기다... 아!~~ 나는 탤런트나 영화배우로 진출했어야 했는데.. 에~휴!~세상이 날 너무나 몰라주는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려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정신 나간 인간처럼 한참 동안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빙빙 돌리며 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진돌이는 집안에 틀어박힌 체 내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가든 말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야 말로 완벽한 나의 승리다. 그날밤 나는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보름달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승리의 기쁨에 도취한 늑대의 우두머리처럼 크게 울부짖었다.

 

아오!!~~~ 아오!!!~~~

아!!~~~아오!!!~~~

(아무래도 정신감정을 좀 받아야 할 듯)

이전 08화 진돗개와 싸웠다 8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