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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인 Oct 01. 2024

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10화

군대는 나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었다.

이화와 만나서 데이트할 때 나는 가급적 태권도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만약 이화가 내게 운동을 했었냐고 물어본다면 이거 정말 난처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태권도장 한 달 다니다가 빨간 띠 자그마한 여중생에게 돌려차기 한방을 맞고 대자로 뻗는 바람에 쪽~팔려서 도장 그만뒀다고 하면 남자 체면이 정말 말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 거짓말을 하면 되겠지만 나는 언젠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거짓말은 여자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또 하나의 아킬레스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가야만 하는 군대였다. 사실, 나는 군대를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신검을 받았을 때 몸무게가 겨우 45킬로 밖에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48킬로 정도는 되어야 군대를 갈 수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다시 재검을 받았을 때도 역시 그 몸무게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군 징집면제를 받게 되었고 몸무게 미달로 면제를 받았다는 게 너무 창피해서 이미 오래전에 없어진 방위군이라도 자원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들렀더니 나를 본 방위병이 실~실 웃으면서 한 마디 하였다.

아니? 군 면제를 받으셨으면 신의 아들인데 왜 남들 가기 싫어하는 군대를 가려고 하십니까? 헤!~헤!~헤!~

하긴, 우리 때도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별 수단을 다 동원해서 면제를 받으려고 하는 녀석들도 많았고 심지어는 멀쩡한 손가락을 자르는 녀석들도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훈련도 엄청 힘들면서 걸핏하면 선임들에게 온갖 기합은 물론이고 빳따를 맞으면서 복무기간도 거의 3년을 꽉 채워야 제대할 수 있었던 그때의 군대는 대한민국 남자들은 그 누구라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부러 가지 않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군 면제를 받았으니 그 방위병 녀석 눈에는 내가 엄청나게 부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방위병이라 할지라도 징집면제 대상은 기준미달이라서 내가 자원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복무기간이 현역들에 비해 상당히 짧은 방위병조차도 갈 수가 없었는데 군대 갔다 오지 않았다고 내 인생이 더 월등하게 나아진 것은 없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자는 군대를 갔다 오는 것이 사회생활이나 아님 대인관계에서도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여러모로 득이 된다는 것이다.

친구 녀석들과 자주 모여서 술을 마셔댔던 20대 적에는 나는 항상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이 모였다 하면 군대얘기들만 해대니 나는 그럴 때마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곤 하였는데 군대는커녕 훈련소 근처에도 갔다 오지 못했던 나는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녀석들이 해병대나 공수부대 출신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일반현역들도 아닌 방위병 제대 주제에 그 빌어먹을 방위병조차도 갔다 오지 못했던 나란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서 무시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이화와 만날 때는 운동과 군대얘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군대도 갔다 오지 못하고 운동도 못하는 부실한 남자로 이화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무슨 문제가 있었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런 문제는 없다. 30대들이라면 모르겠지만 20대 청춘남녀들은 서로 필이 통하면 그것으로 만사형통이다. 그래서 20대에 연애를 해야 결혼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이다.

사내연애는 두 사람의 관계가 안정선까지 도달할 때까지는 가급적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발사대를 떠난 인공위성이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올라가기 전 까지는 많은 공기 저항을 받게 되는 것처럼 사내연애 또한 서로의 사랑이 돈독해지기 전에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되면 온갖 조롱과 놀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동안은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가 공중전화로 이화와 전화데이트를 하였다. 막상 수화기를 들면 할 말은 별로 없어도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화와 나,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호르몬인 도파민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으니 그저 서로의 숨소리만 들어도 가슴속에서는 기분 좋은 울렁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백사장 모래들을 한 움큼 움켜쥐고는 수평선 너머로 멀어져 가곤 하였다.

그런 광경이 마치 영화관의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실제로 보는 것 만 같은 모습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착각에 빠진다. 누구를 사랑하게 되면 주위의 모든 풍경이 마치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사랑은 곧 마약이다"라고 하지 않는가? 마약에 한번 빠지면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것처럼 누구든지 사랑이라는 마약의 호수에 빠지는 순간, 그곳을 스스로 헤엄쳐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음도 불사하며 그 호수에 몸을 던졌듯이 말이다. 전화기를 들고 있다가 이화에게 노래를 한 곡 선사하겠다고 말하곤 나는 산타루치아를 불렀다.
이화에게 처음으로 바치는 사랑의 세레나데였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중략. 내~배는 살 같이~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 켁! 켁! 켁!~콜록! 콜록! ~에~~ 취!!~~~

높은음을 따라 오르지 못해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그만 목에 사래가 들리고 말았다.
나라고 왜 성악가들처럼 멋지게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겠는가. 마음과는 달리 과부하가 극심하게 걸렸던 나의 성대는 돼지가 꽥꽥대는 소리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런 나를 보고는 자기 귀에 손가락을 빙~빙 돌리면서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지나갔다.

에~고... 쯧~쯧~쯧~젊은것이 완전 맛이 갔구먼... 어쩌다 저렇게 되었누...

대 낮부터 공중전화기를 붙잡고 노래가 아닌 돼지 멱따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고 있었으니  남들이 볼 적에는 그때 나란 인간은 머리가 헷가닥 돌아간 정신병자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화는 수화기 너머로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아~휴!!~~ 동연 씨!~~~ 완전 음치예요!~~ 음치!!~~~ 어쩜 그렇게 노래를 못 불러요? 킥! 킥! 킥!~

수화기에 대고 너무 웃겨서 죽겠다는 듯 이화는 입을 막고 웃었다. 사랑이 과연 뭐라고 생각들 하는가?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는 "겨울연가"의 주인공들인 

"강준상(배용준) 과 정유진(최지우)"같은 고결한 사랑을 하는 커플만이 사랑의 대명사처럼 보이는가? 사랑은 원래 유치한 것이다. 남들 보기에는 너무너무 유치해서 속이 오글거릴 지경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상대 연인이 무엇을 하든, 또 어떤 노래를 부르든, 그것에 상관없이 너무도 사랑스러운 것이다.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파바로티, 플라시도도밍고"가 부르는 "산타루치아"보다는 사랑하는 남자가 돼지 멱따는 소리로 고래고래 불러대는 "산타루치아"가 더 감미롭게 들리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다.

만약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가 전화기에 대고 음치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면 여자는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순식간에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꽝!~하고 수화기가 깨지도록 전화기 위에 내 던지고는 미친놈!~이라고 욕을 할 것이다. 똑같은 상황인데 왜 여자는 그런 행동을 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마약에 취해서 눈과 귀에 콩깍지가 씌었느냐 아니냐 그 차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회사에서 이화와 밋밋하게 지낼 필요가 없어졌다. 이화의 사랑을 확인했으니 이젠 더 과감하게 사람들 앞에 나설 때가 되었다. 퇴근 후, 나는 이화를 기다렸다가 그녀의 손을 붙잡고 내 점퍼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이제부터

이화는 내 여자라는 사실을 늑대 같은 나의 경쟁자들에게 정식으로 알리기 위함이었다.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이화는 흠칫 놀라면서 잠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지만 곧 내 의도를 알아채고는 자연스럽게 나와 꼭 붙어서 걸었다.


아니? 지금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을 보게 된 사장아들과 다른 남자직원들의 눈들이 휘둥그레지더니 초점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곤, 전략 싸움에서 자신들이 패배를 했다는 것을 알고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 듯하였다.


어!!~~ 그림 좋은데!!~~ 언제부터 둘이 그렇게 사귀게 된겨?


그 들은 질시 어린 눈으로 우리들 곁을 지나면서 한 마디씩 하였지만 이화 쟁탈전에서  내게 패배한 남자들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왜 안 그러겠는가? 외모면에서는 나 보다 훨씬 월등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지고 말았으니
속으로 가슴을 치느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겠지.
그러나 이화가 나를 선택한 것은 결국 전략의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 회사 동료들처럼 평상시 이화에게 집적거리지도 않았고,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랬었기에,

사장아들인 K 군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은 나를 자신들의 경쟁자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연인이 된 두 사람이 갑자기 자기들 눈앞에 나타났으니 허를 찔린 녀석들은 멘붕 상태가 되고 말았다. 자신들의 대시 방법이 나에 비해서는 전략적인 면에서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나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K 군이 이화에게 대시하는 방법은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떠 벌리리면서 이화를 귀찮게 하는 것이다. 어느 날은 이화가 평소에 즐겨 입던 긴치마 대신 감색 모직바지를 입고 출근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태권도 유단자인 것을 알고 있는 K 군은 쉬는 시간에 이화가 잠깐 회사 앞마당에 나왔을 때 장난을 걸었다.

헤이!!~~~ 이화 씨!~ 오늘은 바지 입었네? 그럼 나 하고 겨루기 한번 해 볼까? 헤! 헤!~~

K 군은 그렇게 실~실~웃으면서 이화의 어깨와 옆구리를 뒤에서 발로 툭 툭 건드리며 장난을 걸었다. 계속되는 K 군의 장난에 짜증이 났었는지 이화가 갑자기 뒤돌아서면서 발을 쭉 뻗으며 돌려차기를 하였는데 그녀가 신은 구두가 K 군의 코 바로 앞에서 멈추자 K 군은 놀래서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이화의 반격에 뒤로 넘어진 K 군은 머쓱하게 웃으며 흙 묻은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한 마디 하였다.

오!!~~ 유단자 맞네!~~ 헤!~헤!~헤!~미안 미안!~


K 군은 항상 이런 식으로  이화를 귀찮게 하면서 대시를 했기에 이화는 그런 K 군이 좋을 리가 없었다. 또 다른 동료들은 시간 날 때마다 그저 이화 앞에서 실~실 웃어가며 싱거운 농담을 하거나 별 의미 없는 이야기로 이화의 관심을 끌려고 하였지만 이화는 그런 남자들이 좀 가벼우면서도 진실성 있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평소에는 그녀와 말 한마디 하지도 않았고, 오가다 마주치면 그냥 가볍게 미소만 짓고 지나던 남자가 어느 날, 초콜릿을 아무 말 없이 자기 옆에 두고 가더니만 전화로 대뜸 만나자 하니 이화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리겠다는 말은 여자에게 엄청 부담이 되었지만 여자들은 때론, 낯선  방식의 대시에
큰 호기심이 발동한다.

익숙한 것이 아닌 생각지 않은 남자의 접근에 당황하면서도 어? 이 남자는 뭐지? 하고 의아해 하기 마련인데 그 호기심에 불을 붙여준 것은 네가 나올 때까지 길가 정류장에서 기다리겠노라

하는 나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과연 이런 식의 도발적인 전략을 쓰는 남자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방법을 채택했었고 우연찮게도 이화에게는 그 전략이 적중했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에게 이런 전략이 맞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도 있으니 여자에 따라서 적절하게 대시의 방법을 선택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이화의 마음을 끄는 데 성공하였고 나의 대시 방법이 예쁘고 키 큰 매력적인 여자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입증된 셈이었다.

그럼 키 크고 멋진 여자들이 나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남자들을 좋아하냐고? 여자들이 미쳤는가?
머리에 핵폭탄 맞지 않은 이상, 매력적인 여자들은 당연히 그에 걸맞은 남자들을 좋아하는 게 당연지사.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런 여자들 중에는 오히려 작고 아담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이화는 바로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그때 나는 정말 운 좋게도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추는 바람에 이화를 내 여자로 쟁취할 수 있었던 것. 이제 우리 두 사람이 탄 우주선은 대기권을 뚫고 아름답게 펼쳐진 은하수를 향해 여정을 떠났으니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 방해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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