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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인 Oct 08. 2024

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11화

위대한 개츠비와 푸시킨의 공통점

상고를 갓 졸업한 20살의 이화는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청순한 여자였다. 20살의 여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이화 같지는 않겠지만 80년대 초의 20살 여자들이 남자를 바라보는 감성은 확연히 다르다.
뭐랄까... 그때의 20대 여자들은 남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어느 것 한 가지만 좋으면 필이 꽂혔다.
그랬었기에 나는 다른 남자들에 비해 월등히 불리한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화를 내 여자로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회사의 다른 남자동료들보다 키도 작고, 군대도 갔다 오지 못할 정도로 비썩 마른 부실한 체격이었지만 20살 이화의 눈에는 그런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다른 남자들과는 말과 행동이 좀 다르다는 것에 필이 통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화가 30대 때 나를 만났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연인사이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0대에는 이상만 있으면 그것 만으로도 부족하지 않겠지만 30대 여자들은 현실을 바라본다. 학벌, 배경, 직업, 장래의 비전등 많은 것들을 살펴보고 나서야

비로소 연애도 하고 결혼도 생각하겠지만 20대의 여자들은 자기만 좋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물론 20대 여자들이고 해서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화와 데이트를 하면서 우리는 읽었던 책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하였다.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이화와 나는 느껴지는 관점들이 확연하게 달랐다. 당연하지 않은가? 일란성쌍둥이조차도 모든 것이 같지는 않은데 하물며 우뇌가 발달한 남자와 좌뇌가 발달한 여자의 생각이 일치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좀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그래서 자주 티격태격하지만 연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일심동체가 될 수는 없었기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선에서 무난하게 넘어가곤 하였다.

 이화!~지난번에 말했던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았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왜 개츠비란 남자가 위대한지 모르겠네? 난 책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라 쓰여 있길래 이 사람이 무슨 대단한 영웅이었나 했는데 전혀 아니었더군.
내가 보기엔 개츠비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데이지"라는 부잣집 여자를 잊지 못해서 거의 집착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다가 비참하게 총에 맞아 죽은 남자의 일대기를 쓴 소설인데 말이지.
나의 말에 이화는 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였다.

어머!~~ 동연 씨는 왜 책을 한 번만 읽어보고는 그렇게 단순히 평가하세요? 그 책을 쓴 스콧 피츠제럴드는 말이에요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었을 정도로 아주 대단한 작가란 말이에요.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 1920년대의 미국의 자화상을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어필했었는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비록 출판 초기에는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1940년 피츠제럴드 사후부터 "위대한 개츠비"의 진가가 미국 사회에 널리 알려지면서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던 책이죠.

물론, 읽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는 해요. 동연 씨처럼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피츠제럴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아주 감명 깊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한번 읽어보았으면 몇 번 더 읽어보세요 그럼 내가 말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이화가 발끈하며 내뱉은"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설명에 나는 순간적으로

위축이 되었다. 하긴...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10번 이상은 읽었기에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어서 더 감명이 깊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화가 좋아하는 책을 그저 한번 대충 읽어보고는 별 것 아니네 하고

결론을 내렸으니 나의 경솔한 말에 이화가 상처를 받았던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나의 말에 대한 해명을 했어야 했다.


이화!~~ 내가 경솔했네 화나게 해서 미안해!~내 말은 말이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형편없는 책이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야. 단지 책 제목이 좀 그래서 내가 잠시 오해를 했던 것뿐인데 나는 위대한 개츠비라 해서 무슨 전쟁영웅이었거나
아님, 대단한 사업 가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잖아. 물론 개츠비가 돈을 엄청나게 벌어서 큰 호화주택을 사서 날마다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할 정도로 대단한 부자였지만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고 또 자기가 부자가 된 이유는 예전에 사랑했다가 자신의 가난 때문에 헤어진"데이지"란 여자를 잊지 못하고 그녀와 다시 재회하기 위한 것이었지. 그렇지만 데이지란 여자는 "톰 뷰개넌"이란 부잣집 아들과 이미 결혼해서 딸까지 낳은 유부녀인데 얼마나 미인이고 매력적인 여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별로 없는 여자였어.

그런 여자를 잊지 못해서 데이지의 친척 오빠인 닉 캐러웨이를 통해 개츠비가 다시 데이지를 만나게 되었지만 나는 그런 개츠비를 생각하면 마치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중 한 사람인 "푸시킨"이 떠올리게 되네. 물론, 푸시킨은 실제 인물이었고 개츠비는 단지 소설 속의 주인공

이었지만 말이지.


이화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돼 물었다.


"푸시킨"과 "개츠비"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요?"푸시킨"은 저도 참 좋아하는 시인인데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아주 유명한 시인이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는 아마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푸시킨과 개츠비"는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들인데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그때 나를 바라보는 이화의 눈 빛은 넌 도대체 어떤 놈이니? 하는 듯한 조롱 섞인 미소가 포함되었다.
나는 이화의 질문에 답하기 앞서 잠시 허공을 올려보았다. 나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이화와 쌓았던 공든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무리의 참새들이 짹짹 거리며 날아올라 건너편 숲 속으로 사라질 즈음 나는 눈을 돌려 이화를 바라보았다.
음... 그게 말이지... 두 남자들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더군.

첫째는 여자들이 미인이라는 것.
둘째는 여자들이 상대방 남자들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셋째는 푸시킨과 개츠비 둘 다 여자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했다는 것.
넷째는 남자들이 목숨 바치면서까지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들이라는 것.
다섯째는 두 남자 모두 여자 때문에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

어때? 이 정도면 내가 왜 푸시킨과 개츠비가 공통점이 많다고 하는지 알겠어? 나의 말에 이화는 피식 웃으면서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하옇튼 이것저것 갖다 붙이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군요. 킥! 킥!~

이화의 실소에 나는 한층 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갖다 붙이는 게 아니고 내 말을 잘 들어봐.
푸시킨의 아내였던 나탈리아 곤차로바는 키가 겨우 166cm에 불과했던 푸시킨보다 훨씬 크면서 화사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성격이 매우 활달해서 뭇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미인이었다 하더군.

그녀의 초상화를 보면 상당한 미인이었다는 것은 확실해. 30살이 다 되어 갔던 노총각 푸시킨은 16살의 나탈리아를 보고는 한눈에 반해서 어머니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렬한 구애 끝에 나탈리아와 결혼에 성공했었지.
푸시킨의 어머니는 나탈리아의 행실이 좋지 않다는 소문을 알고 있었기에 아들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었지만 푸시킨은 그런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어. 그러나 어머니의 우려대로 푸시킨의 아내 나탈리아는 무료한 결혼생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사교계의 남자들과 어울리다가 타고난 바람둥이 었던 프랑스 장교 출신인 단테스를 만나게 되었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탈리아가 단테스의 내연녀라는 소문이 크게 돌았던 것인데 그것을 알게 된 다혈질 푸시킨이 분을 참지 못하고 단테스와 결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던 거야.

근데 결과는 뻔하지 않아? 단테스는 군인이면서 장교 출신인데 민간인이었던 푸시킨이 결투에서 이길 수가 없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스에게 먼저 권총 결투를 요청했고 결국 단테스가 쏜 총에 맞아 죽고 말았지.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렸던 대 시인 "푸시킨"도 여자 보는 눈은 지독히도 없었던 불행한 사내였는데 개츠비도 다를 바 없었더군.
나는 여자가 아무리 이뻐도 속 빈 강정 같은 여자들은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그것은 마치 불나방이 자기가 타 죽을 줄 알면서도 불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으니까 말이야.
물론, 이화처럼 이쁘면서도 진솔한 여자들은 제외하고 말이지라며 하하하 웃었다.
이야기 중간에 맆서비스를 날리는 것은 연애의 기본이니까 말이다.

나의 맆서비스에 이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렇다면 개츠비는 과연 푸시킨과 어떤 점이 공통일까? 책을 보면 한때 개츠비의 연인이었던 데이지도 상당한 미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얼마나 미인이었는지는 푸시킨의 아내처럼 초상화도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글로 볼 때는 그렇게 느껴지더군. 개츠비와 데이지는 한때 사랑하는 사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강이 놓여있었는데 바로 신분차이였지.
데이지는 원래부터 타고난 부잣집 딸이었지만 개츠비는 무척 가난했었고 지금과는 달리 매우 보수적이었던 192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는 그런 신분의 벽을 뛰어넘기가 어려웠기에 결국 데이지와는 헤어지고 말았더군.

데이지는 곧 "톰 뷰캐넌"이라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였는데 그 남자 역시 아주 거만하고 전형적인 부잣집 아들이었지. 부잣집 딸과 부잣집 아들의 결혼... 뭐 어떻게 보면 순리적이 아닐까 싶네. 드라마에서 보듯 가난한 남자가 재벌집 여자와 어떻게 눈이 맞아서 결혼을 했지만 남자가 처갓집의 무시와 냉대를 받으며 살다가 끝내는 자기 마누라에게까지 무시를 당하면서 파탄이 나는 장면은 흔한 레퍼토리 아니겠어? 유유상종이란 말이 왜 있는지 알아?
같은 깃털을 갖고 있는 새끼리 모인다는 말인데 사람들 관계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야. 개츠비가 그토록 사랑했던 데이지란 여자도 결국은 자신의 신분과 비슷한 남자와 만나 결혼해서 사는 게 자연스럽다는 말이지.

내가 만약 개츠비였다면 그런 여자 따위는 잊어버리고 더 좋은 여자를 만났을 거야.
세상에는 데이지만큼 이쁘고 진실한 여자들도 많을 텐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푸시킨과 개츠비"는 서로 많이 닮았지. 푸시킨은 시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개츠비는 많은 돈을 벌었던 부자였지만 두 남자들 모두 여자 보는 눈들은 아주 형편없었다는 것이 푸시킨과 개츠비 두 남자들의 공통이었단 말이야. 그런 것을 보면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것은 어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그런 운명은 자기가 노력한다고 바꿔지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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