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12화
이화에게 제대로 한방 먹었다
여자와 처음 연애할 때는 무조건 여자의 기분을 맞춰주는 게 교과서다. 왜냐하면 이화와 나는 이제 갓 심어진 어린 묘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그렇게 심어진 어린 나무는 작은 외부의 변화와 충격에도 잘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온갖 날씨의 변화와 병충해를 이겨내고 땅에 뿌리를 튼튼하게 내려서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 그 보살핌은 전적으로 남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화와 책 내용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말할 때는 열띤 논쟁을 하였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 이상은 절대로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해서는 안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하여도나는 연애에 대해서는 초보였기에 불필요한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화는 주관이 비교적 강한 편이어서 나의 긴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쉽게 받아주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좀 더 노련한 연애자였다면 그렇게 여자를 설득시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화가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가 매우 좋은 책이었다고 말하면 이화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해 주면서 살짝살짝 내 의견을 첨부하는 정도여야 했었다.
그러나 나의 고지식한 성격은 그냥 대충 넘어가도 될 일을 시시콜콜 따지다가 이화의 화를 돋우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결국 이화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동연 씨!~지난번에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내게 사람 목숨의 가치가 다르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가치가 있네 없네 하고 가치 운운 하는군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데 무슨 가치를 따지면서 사랑하나요? 만약 그런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런 말 해서 정말 미안한데요... 만약 내가 동연 씨 같은 생각이었다면 내가 동연 씨를 만나겠어요? 동연 씨는 과연 여자들에게 만날 가치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하세요? 동연 씨는 나보다 키도 작고 몸은 북어처럼 말랐으면서도 그렇다고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지도 않았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동연 씨는 다른 남자들에 비해 그렇게 매력적인 남자는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동연 씨를 만나겠어요? 그냥 동연 씨가 좋았어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이제껏 알고 지냈던 남자들에 비해 좀 다르다고 보였던 게 매력이 있어서 동연 씨가 좋아서 만나는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요?"개츠비"가 목숨 바쳐 사랑했던 "데이지"라는 여자가 동연 씨 눈에는 사랑할 가치도 없는 여자로 보였겠지만 개츠비는 자기 목숨 다 바쳐서라도 반드시 데이지와의 사랑을 이루고 싶었던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여자였어요. 지구상에 여자가 아무리 많아도 개츠비가 사랑하는 여자는 데이지 한 여자뿐이었다고요. 그 데이지를 톰으로부터 찾아오기 위해 개츠비는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비록,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지만 결국 엄청난 부자가 되어서 데이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던 거예요.
데이지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개츠비의 인생을 그 여자에게 송두리째 바쳤죠.
여자 입장에서 본다면 개츠비라는 남자가 얼마나 가슴 뭉클할 정도로 감동적인 줄 아세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도 아깝지 않다는 그런 순수한 사랑을 갖고 있는 남자는 세상에 별로 많지 않아요. 데이지가 뜻 하지 않게 자동차 사고를 내서 남편의 정부인 머틀을 치어 죽게 만들었어도 개츠비는 데이지의 죄를 자기가 뒤집어쓰고는 결국, 사고로 죽은 여자의 남편인 윌슨에게 권총으로 살해를 당했어요.
이것은 데이지의 남편 톰 부캐넌의 농간에 순진한 윌슨이 넘어간 결과였어요. 윌슨아내인 머틀과 바람피운 남자가 개츠비였고 머틀을 차로 치어 죽인 사람도 개츠비로 오해하도록 톰 부캐넌이 윌슨에게 거짓말을 하였기 때문이었어요.
톰 부캐넌이야 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는 비열한 남자였죠.윌슨의 아내 머틀과 바람피운 것은 톰 자신이었는데 데이지를 개츠비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윌슨에게 거짓말을 했던거예요.
그렇게 개츠비는 사랑하는 데이지를 보호하기 위해 여자의 죄를 대신 쓰고
윌슨이 쏜 총에 맞아 죽어야만 했어요.너무도 가슴아픈 일이었죠 그래서 나 같은 여자들은 개츠비에게 열광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책을 읽을 때는 작가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를 충분히 알게 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 책에 대한 평판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내가 훌륭한 책이라고 언급한"위대한 개츠비"는 대충 한번 훑어보고 나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에요.
그럼, 이번에는 "푸시킨"에 대해서 한 마디 할게요. 동연 씨는 푸시킨의 아내 "나탈리아"가 정숙치 못한 여자라서 타고난 바람둥이 었던 프랑스 장교 출신 단테스와 내연 관계였을 거라고 단정 지었잖아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항간에 떠 도는 소문에 불과했단 말이에요. 나탈리아가 단테스의 내연녀라는 확실한 증거는 지금까지도 밝혀진 것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나탈리아가 행실이 좋지 않다는 소문만 믿고는 나탈리아를 그렇게 몰아간 것이겠죠. 만약 나탈리아가 정말로 부정한 여자였다면 단테스의 총에 맞고 죽어가는 남편 앞에서 그렇게 슬피 울지는 않았을 거예요.
푸시킨이 죽으면 자기는 단테스와 마음껏 바람피워도 되었을 테니까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나탈리아가 우는 연기를 했었다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요. 그들은 나탈리아를 끝까지 부정한 여자로 취급하고 싶어 했으니까요. 푸시킨은 자기 아내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단테스와 결투를 신청했었고 죽는 순간에도 나탈리아의 결백을 믿는다고 그녀에게 고백했어요 그리고는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간 단테스를 용서한다고 까지 했어요. 이 대목이 여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가슴이 미어터질 정도로 감동이잖아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손가락질해도 남편만은 아내의 결백을 믿어준다는데 그것에 감동받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더구나 자기를 죽게 만든 원수인 단테스 조차도 용서한다고 말한 푸시킨의 행동은 결코 보통 남자들은 할 수 없는 거예요.
푸시킨은 러시아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문학의 절대적인 존재였어요. 러시아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대 문호 "톨스토이" 조차도 자기는 "푸시킨"처럼 시를 쓸 수 없다고 푸념했었고, "체호프"는 장편소설을 시도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러나 "푸시킨"은 시는 물론이고 소설, 에세이, 평론, 등
여러 방면에서도 널리 이름을 알렸던 위대한 시인이었어요. 톨스토이"와 쌍벽을 이루었던 "도스토예프스키"도 푸시킨은 모든 것을 수용하는 보편성을 지닌 시인이었으며 러시아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고 칭송하였죠. 그렇게 대단한 푸시킨을 동연 씨는 여자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눈을 가진 형편없는 남자로 치부했잖아요. 난 그런 동연 씨의 사고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지 않은지 우려스러워요. 푸시킨은 정말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었던 남자였어요. 동연 씨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형편없는 남자가 아니었단 말이에요.
이화의 반론에 나는 머릿속이 텅 빈 듯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듯이 나의 어쭙잖은 논리를 이화에게 주입하려고 했던 나의 어리석은 행위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받고 나니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여겨졌다. 이화의 말대로 여자들에게 그다지 가치가 없는 남자는 바로 나였는데 그런 녀석이 여자들의 가치 따위를 논했으니 이화가 듣기에는 상당히 거북하게 들렸을 것이다. 내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이화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살며시 내 손을 붙잡았다.
동연 씨!~화났어요? 미안해요... 나도 성질이 좀 못돼서 동연 씨 말에 순간적으로 열을 내고 말았군요.
배고파요!~우리 저녁 먹으러 가요.
이화는 내 손을 잡아끌고 음식점들이 줄비한 근처 먹자골목으로 데려갔다. 이화는 귀족이 아닌 서민답게 나를 허름한 순댓국집으로 인도하더니 이내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내가 저녁 살게요 순댓국 괜찮죠? 레스토랑보다는 우린 이런 곳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우리들은 서민들이잖아요. 그렇게 말하고선 이화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조금 전 까진 우리들은 열띤 논쟁자들이었지만 어느새 다시 평범한 연인으로 돼 돌아왔다. 이젠 두 번 다시 이화 앞에서 책들에 대한 논평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괜히 잘 난 척했다가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맞아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