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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인 Sep 24. 2024

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9화

호박벌의 비상

"호박벌"은 몸집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아서 과학적으론 도저히 날수 없는 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박벌이 날 수 있는 것은 그런 사실을 잊은 채 다른 벌보다 열심히 날갯짓을 하면서 근육을 키웠기 때문이다. 뚱뚱한 몸에 보잘것없는 작은 날개를 갖고 있는 그 모습이 귀엽고 우스워서 종종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주는 곤충인데 일반 꿀벌에 비해 아주 작은 날개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뚱뚱한 몸으로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지 경이로울 정도다.
호박벌은 자신이 날기 어려운 몸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꿀을 모으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작은 날개를 초당 260회나 움직여 매일 200km 이상을 쉴 새 없이 날아다니면서 꿀을 채집한다.일주일이면 1,400km 이상을 비행하는 것인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서 살고 있는 호박벌은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아주 좋은 교훈을 우리 인간들에게까지 일깨워 주는 곤충이다.


뜬금없이 웬 "호박벌"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하겠지만 그 호박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나란 인간은 외모적으로만 본다면 여자와 연애하기가 매우 어려운 여건들을 갖추고 있었다.한국남자의 평균키에도 한참 못 미치는 데다(키 165) 군 병역징집면제를 받을 정도로

비썩 마른 체구, 눈도 작아서 별명이 단춧구멍, 인물도 그저 그런 평범형

이었고 성격 또한 다혈질이었다.과연 이런 남자를 여자들좋아하겠는가? 그런 나에 비해 O 양은 160이 훌쩍 넘는 늘씬한 키에 눈 크고 얼굴매우 이쁜 데다 몸매까지 좋았으니 이런 여자에게 대시를 한다는 것은 나란 존재를 완전히 망각한 행위였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O 양을 만났고 데이트까지 하였다.

한 마디로 나는 "호박벌"이었다. 그 호박벌이 O 양이라는 꽃을 찾아 초당 260회의 날갯짓을 하면서 날았던 것이다. O 양과 데이트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 보니 그녀는 사무실 정리를 하고 있었다. O 양은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를 지으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다행이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지난번

E 양 처럼 퇴짜를 맞지는 않겠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제

O 양과의 첫 데이트는 만족스러웠지만 과연 이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했다. O 양과 한번 데이트를 했다고 그녀가 나의 여자가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장아들을 비롯한 다른 남자직원들이 계속 O 양에게 집적거렸고 나는 그럴 때마다 신경이 온통 곤두섰다. 더구나  녀석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O 양이 웃을 때는 속에서 불 같은 것이 솟구쳐 올라왔다. 질투였다... 만약, O 양이 완전한 내 여자가 되었다면 그런 질투심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승자의 여유랄까? 어차피 내 여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O 양은 아직 내 여자라고 단정 할 수 없기에 그래서 더 불안했다. 행여나 O 양이 다른 남자들과 더블데이트를 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그녀와 회사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우리 두 사람은 그냥 밋밋하게 지냈다. O 양의 목소리를 듣고 얘기하고 싶을 때는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가서 공중전화를 이용했는데 그렇게 나는 회사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O 양과 사내연애를 해

나갔다.


O 양과의 두 번째 만남은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바빠서 시간이 안 된다고 만남을 계속 미루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혹시, O 양과의 데이트도

한 번만으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이 처럼 남자가 여자를 처음 만나서 연애를 시작할 때는 가슴 설레는 두근거림과 함께 불안, 초조, 긴장 상태에서 얼마동안은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마치 인공위성이 위성 발사대를 떠나 대기권을 뚫고 지날 때까지는 만유인력의 법칙과 공기 저항을 크게 받는 것처럼. 그 과정에서 많은 초보 연인들이 헤어짐의 아픔을 겪기도 하는데 이때는 남자의 끈질긴 인내심이 필요한 시기다.

위성이 대기권만 벗어나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우주로 나아가기에 이런 과정을  남자가 참고 기다려야 두 사람은 완전한 연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O 양과 처음 데이트를 하고 나서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쉬는 일요일, 그녀를 만날 수 있었고 장소는 시내의 한 레스토랑이었던 것 같았다. 그때 만난 O 양은 어깨까지 내려왔던 긴 머리를 며칠 전, 단발로 커트했는데 나는 조금 서운했다. 물론, 단발이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은 여자의 긴 머리에 매력을 많이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심경의 변화가 생기면 머리부터 손질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O 양이 단발로 커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와 돈가스를 먹으며 나눈 대화의 주제는 회사 남자들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나는 O 양에게 궁금해서 물었다. O 양!~~ 회사에 나 말고 다른 남자들도 O 양에게 대시를 많이 했을 텐데 왜 그들을 만나지 않았지?

다른 남자들요? 글쎄요... 음... 사장님 아들이 제게 자주 집적거렸지요. 근데 말이에요... 그 남자는 주로 싸움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예컨대,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옆 테이블 남자들과 시비가 붙어서 패싸움이 벌어지면 자기가 맨 먼저 나가서 앞에 있는 남자의 입을 주먹으로 때려서 그 남자의 옥수수(앞니)들을 몽땅 날려버렸다는 둥,

또 다른 남자가 흉기를 들고 자기를 찌르려 하길래 살짝 피하구선 그 남자의 팔을 비틀어 꺾어 넘어뜨렸다는 둥, 그래서 자기 혼자 몇 명의 남자들을 순식간에 때려눕혀서 이겼다는 둥, 뭐~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물론, 어떤 여자들은 그렇게 쌈 잘하는 남자를 야성미가 넘친다고 좋아하기도 하겠지만 전 그런 남자는
너무 폭력적인 것 같아서 싫었어요. 그리고 사장님 아들이라 부담도 컸고요. 또, 어떤 남자는 제게 와서는 실~실 웃으면서 영화표가 두 장 있는데 같이 보러 가지 않겠냐고 했지만 그 영화는 제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성인영화였어요. 전 주로 멜로영화를 좋아하는데 처음부터 좀 저질스런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니까 그 남자도 그렇게 보였어요.

영화는 만나면서 어느 정도 서로 친하게 되었을 때 보러 가야지 그렇게 다짜고짜 와서 더구나,성인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 남자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더군요. 또 어떤 직원은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데서 내게 데이트 신청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다른 여직원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웃으면서 바라보는데 마치 "못 먹는 감 찔러나보자"는 식으로 느껴지더군요.

O 양의 말을 듣고는 그럼 나는 왜 그 날 만나러 나왔느냐고 묻자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조금 뜸을 들였다. 글쎄요... 저도 처음에는 D 씨한테 많이 놀랐어요.

전혀 생각지도 않은 남자가 아뭇소리 하지 않고 내게 와서는 초콜릿을 두고 가더니만 전화로 무조건 만나자,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는 남자는 D 씨가 처음이었어요.
어? 이 남자는 뭐지? 회사에서는 자기에게 말 한마디 걸어오지 않던 남자가 갑자기 초콜릿을 두고 간 것도 그렇지만 전화로 약속을 일방적으로 하고선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니까 무척 당황되고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약속날이 되어서도 처음에는 나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D 씨의 모습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더군요.그래!~~ 어떤 사람인지 한번 만나보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나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음에는 만나지 않으면 되니까요. 그러고 또 궁금하기도 했어요 과연 D 씨가 약속장소에서 두 시간도 훨씬 넘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말이죠.
그런데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D 씨를 보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군요.
아!~~ 이 사람은 다른 남자들과는 뭔가 좀 다르구나!~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태능에서 데이트를 했을 때도 읽은 책에 대해 그렇게 구체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남자는 D 씨가 처음이었고요.

O 양의 수줍은 듯 속삭이는 말투에서 이제야말로 내가 원하는 여자를 만났다는 확신이 서게 되었고
그녀가 헤어스타일을 다르게 하고 나온 것도 나 와의 본격적인 만남을 하기 위한 것이라 여겨졌다.
O 양은 나를 오빠 대신 내 이름을 불렀다. 오빠라고 부르려 하였지만 나이차이가 겨우 두 살 정도밖에 나지 않는데 오빠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하대나. 나 또한 오빠보다는 내 이름을 부르는 게 더 친근감 있어서 좋았다.

O 양의 이름은"오이화"였다.

성이 오 씨라서 이제까지는 O 양이라고 불렀는데 이름을 알고부터는 "이화"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이제 나는 이화 앞에서 두근거림이나 떨리는 감정은 사라졌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렇게 되니까 그녀와의 대화는 무척 자연스러워졌다.
이화를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게 되어서 좋기는 한데 그동안 무척 바빴었나 보네? 난 만나자고 할 때마다 계속 시간이 없다고 하길래 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줄 알고 많이 서운했었지.

나의 말에 이화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물론, 집에 일이 좀 생겨서도 그렇지만 전 말이에요... 남자와 한번 데이트를 했다고 곧바로 다음 데이트를 받아 주고 싶진 않아요. 그러면 제가 좀 쉬운 여자로 보이지 않을까 해서요라고 말하며 이화는 입을 가리면서 살짝 웃었다. 그리고 D 씨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볼 시간도 필요하잖아요. 계속 만나야 할지... 아님 거절을 해야 할지 말이에요... 그럼, 나를  다시 만난 것은 앞으로도 계속 만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어? 내 말에 이화는 수줍게 미소를 띠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에서 야~호!~~ 하고 환호가 터져 나왔지만 그것을 애써 누르면서 표정관리를 하였다.

나 또한, 이화에게 가벼운 남자로 보이기 싫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만약 그 자리에서 내가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고 이화가 나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때로는 남자의 과잉행동을 여자가 더 좋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남자의 그런 행동은 때와 장소에 따라 시기적절하게 해야 할 필요는 있다. 아무 때고 눈치 없이 과잉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될 뿐이다.
두 번의 만남으로 이제 나는 이화와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남녀사이는 탐색전을 거쳐 연애기로 들어서는데 우리는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었기에 한 편으론 조금
불안하기도 하였다.

자칫하면 과속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와의 만남에 있어서 과속은 때론, 대형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기에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는 게 좋지만 나는 성격이 워낙 급한 편이라 이것이 내게는 가장 큰 마이너스 요인이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극복해 나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타고난 유전자이니 어찌하랴... 이제, 회사에 출근하는 나의 발걸음은 무척 경쾌하면서 가벼워졌고 회사에 가면 O 양을 볼 수 있기에
입에서는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사내연애가 잘 되면 하루하루가 무척 즐겁다. 좋아하는 여자를 매일 보면서 일을 하기에 시간도 빠르게 지나간다.

물론, 사장아들을 비롯해서 이화에게 집적거리는 녀석들은 여전하지만 이젠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다. 어차피 이화는 내 여자가 될 테니까 말이다.
나는 이미 녀석들보다 훨씬 높은 고지를 점령했으니 전쟁영화에서처럼 밑에서 기어 올라오고 있는 적들을 향해 불벼락을 퍼부으며 승자의 여유를 마음껏 누렸다. 연애는 엄연한 전투인 것이다. 이렇게 나는 사내에서 여자들에게 두 번을 차이고 세 번째에 성공했다. 만약 내가 두 번이나 여자들에게 차였다 해서  좌절하고 포기했었다면 이런 기쁨은 절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강한 자가 여자를 쟁취하는 게 아니라"호박벌"처럼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결국은 승리자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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