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명을 거부하였다 (마지막 회)
은혜의 오빠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나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복잡해졌다.
은혜는 돈에 대한 경제관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돈까지 몰래 빼 쓴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여자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좋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가?
40이 넘은 이 나이에 은혜와 헤어지고 또 다른 여자를 찾아서 돼돌아가기에는 이미 나와 은혜 두 사람은 먼 길을 떠나왔다.
설령 은혜에게 그런 좋지 않은 내면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의 지극한 사랑으로 은혜를 감싸면 그녀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신념에 은혜와 헤어지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은혜의 오빠를 만난 뒤, 은혜의 요청대로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은혜의 집은 고급 빌라 단지 중간에 위치해 있었고 문 입구 계단과 베란다에는 어머님이 정성껏 키우시는 온갖 화초들이 주인의 정성 어린 손길에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답게 넓은 거실에는 온갖 고품스런 책들로 꽉 채워져 있었고 은혜의 어머님은 둥그런 흔들의자에 앉아계셨다.
은혜의 아버님은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차이고 난 뒤 얼마 후였다.
내가 어머님 앞에 큰 절을 올리자 은혜의 어머님은 나를 내려다보면서 한 마디 하였다.
은혜가 결혼하겠다고 남자를 데려온 것은 자네가 처음인데 참 신기한 일이군.
내 딸은 이제껏 남자를 모르고 살던 아인데 말이지...
은혜의 어머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나를 비 웃는 것처럼 보였고 말투는 나를 무척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 같았다.
자기 딸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예쁘고 키도 큰데 그런 딸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남자는 전혀 아니올씨다였던 것이다.
평소에 죽도 못 먹고살았는지 북어처럼 비썩 마른 데다 딸보다 키도 작지 그렇다고
장동건이나 현빈처럼 잘 생기지도 못했지 머리숱도 없어서 거의 빛나리 쪽에 가깝지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직업이라도 좋았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거의 천민 수준인 영업용 택시운전사. 물론, 은혜는 어머님께 나를 바이올린제작가라고 소개했지만 그것은 언제 내 직업이 될지는 까마득한 상태였으니 은혜어머님에게 나란 사윗감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자기 딸도 속절없이 나이가 들어가니 은혜와 만나는 것을 반대할 수만은 없었다. 이제 은혜와 나사이는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자동차와 같았기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였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은혜의 아킬레스건이 순차적으로 터지고 만 것이다.
그녀의 어머님이 학교 선생님이었을 때 제자 사이었던 한 아주머님의 말로는 빚쟁이들이 은혜를 연신 찾아온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은혜의 어머님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병원까지 실려갔단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었길래 빚쟁이들이 여자의 집까지 찾아온단 말인가? 집에 있는 돈도 모자라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무에게나 돈을 꾸어썼다니.
더 큰 문제는 어디에다 그렇게 돈을 써대는지 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은혜를 구슬려서 돈을 쓴 내역을 알아보았지만 입을 꾹 다문체 말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에게는 몰라도 앞으로 결혼할 내게는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 상태로 은혜와 결혼하게 되면 나는 그녀의 빚까지 떠안게 되는데 이건 정말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은혜와 결혼해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번들, 여자가 관리를 못하고 펑펑 써버린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고 오래지 않아서 우리들 결혼생활은 파탄날 것이 뻔했다.
은혜와 결혼해야 할지, 아님 지금이라도 없던 것으로 하고 깨끗이 갈라서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는 은혜와 헤어지는 것이 현실적이겠지만 여자가 나와 헤어질 마음이
조금도 없는 상태에서는 은혜와의 관계를 끝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내가 그만 만나자고 하면 여자는 울며불며 매달리는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동안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면서 축구공처럼 차였지만 차라리 여자들에게 차이는 게 훨씬 더 마음이 편하다.
나를 발로 걷어찬 여자들은 적어도 내게 앙심은 품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매달리는 여자를 떼어놓기는 이 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렵다.
전에도, 만나던 여자에게 실망을 느껴서 헤어지자고 했더니 그 여자도 울며불며 내게 매달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와 기어이 헤어졌는데 여자는 내게 악담을 퍼부우며 떠나갔었다.
"나는 곧 다른 남자 만나서 결혼하겠지만 넌 평생 결혼은 하지 못할 거라고"
세상에... 이런 무시무시한 악담이 어딨단 말인가?
나에게 저주를 퍼부어서 나를 총각귀신으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스키장이 개장한다더니 정말 여자의 한은 무섭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나는 은혜와 헤어지지 못하고, 결혼도 선뜻할 수도 없이 몇 년을 흘려보냈다.
아름다운 양귀비 꽃에는 아편의 원료인 치명적인 마약 성분이 있다.
사람들이 양귀비에 홀딱 반해서 가까이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폐인이 되어서 서서히 삶이 망가지듯이 나는 은혜라는 양귀비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녀와 함께 걷고 있었는데 동네 한 아주머니께서 은혜를 보고는 부러운 듯 한 마디 하였다.
"아니? 삼촌은 어디서 이렇게 이쁘고 늘씬한 여자를 만나서 데리고 다녀요?
우리 아들 녀석은 지금도 여자하나 못 만나고 장가갈 꿈도 못 꾸고 있는데 말이지..."
아주머니는 나를 부러워하면서도 무척이나 질시하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하였는데
왜 아니겠는가? 그 아주머니의 아들은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인물도 출증하고 키도 큰 데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음에도 결혼은커녕 연애할 여자 하나 없이 폭삭 늙어가고 있었으니 그런
아들을 보다가 나를 보면 울화통이 터져서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가 모르는 게 있다.
내가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여자들에게 차였는지 말이다.
나의 그런 속 사정을 알리 없었던 동네 아주머니는 내가 그저 부러웠을 뿐이다.
이렇게 나는 은혜와 함께 다니면 뭇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한껏 받았었고 그 부러움은 나의 자존감을 하늘 높이 올려놓았었다.
게다가 은혜와 나는 속 궁합까지 찰떡이었으니 이런 여자와 헤어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고질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날, 은혜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70만 원만 빌려달라고 하였다. 70만 원? 그렇게 큰돈은 아니었기에 어디에 쓸 거냐고 물었지만 역시나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곧 갚아주겠다고 하였는데 내 느낌상으론 아마도 돌려 막기를 하는 것 같았다.
즉~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꾸어서 갚을 날짜가 되면 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 갚는 식이다
70만 원이 큰돈은 아니었고 곧 갚아준다는 은혜의 말에 돈을 주기로 하였지만 내가 아닌 어머니에게 돈을 빌리라는 조건을 내 걸었다.
내가 아닌 어른에게 돈을 빌려서 은혜에게 의무감이라도 들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인데 그깢 70만 원 그냥 줄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어머님은 은혜집안이 중산층 정도 되는데 왜 그만한 돈이 없어서 내게 빌려달라느냐고 의아해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냥 주라고 하였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은혜에게 돈을 빌려주게 되었고 역시나 은혜는 돈 갚을 날짜가 되었어도
갚지 않았지만 나는 급한 돈도 아니었기에 그냥 잊어버렸다. 은혜가 40을 훌쩍 넘기게 되자 언제까지 결혼을 미룰 수가 없어서 결국은 양가집이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 날짜와 식장까지 잡은 후, 청첩장까지 찍었는데 문득, 은혜가 어머님께 빌려갔던 70만 원이 생각났다.
은혜에게 결혼하기 전, 어머님께 빌려간 돈은 갚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은혜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기야!~~ 그 돈 우리가 결혼하고 내가 직장에 다니면서 갚을게".
나는 은혜의 말을 듣고 단호하게 말했다.
"70만 원 큰돈도 아닌데 뭘 결혼해서 나중에 갚냐?"
"우리 결혼하기 전에 홀가분하게 깨끗이 갚고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은혜는 어쩔 수 없겠다는 표정을 짓고 돌아갔지만 그다음 날, 또다시
나는 은혜오빠의 호출을 받았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나를 보고 오빠는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자네!~도대체 내 동생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길래 동생이 자네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나?"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란 말인가?
은혜오빠를 두 번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이런 황당한 말을 들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동생이 그러는데 자네가 자기를 너무 무시하고 말도 함부로 하면서 손찌검까지 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결혼도 하기 전에 그렇게 내 동생을 학대한다면 나도 이 결혼은 찬성할 수 없네."
아니? 형님!~이번에는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은혜에게 못되게 굴었다니요?
나의 단호한 말에 은혜오빠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럼 정말 자네 내 동생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나?
녀석이 집에 와서 울며불며 자네가 너무 때려서 도저히 맞으며 살 수 없다고 하길래
자네가 정말 폭력적인 남자인 것으로 알았는데?"
"형님!~전 이제껏 은혜와 만나면서 다툰 적은 있었지만 욕 한마디 한 적도 없었고요 더구나 손찌검요? 은혜 어딨 습니까? 은혜 앞에 앉혀놓고 한번 물어보죠 제가 그런 몰상식한 행위를 했는지 말이죠"
"은혜는 앞으로 자네를 만나지 않겠다고 집을 나가고 말았네. 나도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네."
그제야 나는 은혜가 어머님께 빌린 70만 원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그 사실을 오빠에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오빠도 너무 어이없었는지 한 동안 입을 벌린체 나를 바라보았다.
"형님!~저 말이죠 그깢 70만 원 은혜에게 받지 않아도 됩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인데 그냥 주어도 돼요 하지만 은혜는 너무 생각 없이 돈을 빌리는 경향이 있어서
좀 책임감을 갖게 하려고 제 어머님께 빌 리라 했고 저는 어머님께 빌렸기에 우리 결혼 전에 갚고 시작하자고 어제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달이 나고 말았네요.
형님!~우리 결혼 바로 코 앞입니다 예식장도 예약했고 청첩장까지 찍어서 이미 돌렸는데
이제 와서 은혜가 저와 결혼하지 않겠다면 도대체 이게 뭡니까?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말이죠."
그렇게 우리 두 남자는 서로를 마주 보면서 당황한 표정과 황당한 표정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은혜와의 결혼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은혜도 나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강했고 나 또한 이렇게 거짓말을 숨 쉬듯이 하면서 양가집 분란만 일으키는 여자에게 더 이상 미련 따위는 두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된 일이지 않은가?
은혜와 헤어지려고도 했었지만 여자가 너무 매달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결혼 직전, 여자가 마음이 급변해서 돌아섰으니 말이다.
은혜와 결별하게 되었다고 어머님께 말하자 어머님을 비롯한 일가친척들은 한 바탕 난리가 났다. 결혼식을 올리기 바로 직전에 여자의 변심으로 파투가 나고 말았으니 나도 그렇지만 노모가 받은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나이 47세였으니 이제 더 이상 결혼 따위는 꿈도 꾸지 말고 혼자 살아야 할 팔자인 것 같았다.
전에 나와 헤어지면서 평생 장가 못 가고 혼자 살거라 악담을 퍼부었던 전 여자친구의 저주가 현실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은혜에게서 어머니에게 빌려간 돈 70만 원을 갚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와 나는 이제 끝난 사이가 됐으니 돈 갚겠다는데 받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은혜는 내게 빌려간 돈을 돌려주면서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면서
다시 만남을 이어나가자 하였다.
사람이 너무 화가 나면 화도 나지 않게 되나 보다.
은혜의 말을 듣고도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은 여자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정리했기 때문이었고 내가 아닌 은혜가 먼저 결혼을 파투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는 자기가 잘못했다면서 두 번 다시 그럴 일 없을 테니 다시 시작하자고 매달렸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은혜야!~이제 너와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우린 6년 동안이나 만났었잖아.
그래서 결혼은 당연하게 하는 것으로 여겼고 결혼식장 예약하고 청첩장까지 돌렸는데
그깢 70만 원 때문에 네 가족들에게 거짓말하고 파투까지 네가 먼저 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하자니 결혼이 무슨 장난이냐? 이제 더 이상 우리 서로 보지 말자."
여자에게 냉정하게 말한 후, 카페문을 박차고 나가는 나를 붙잡으며 은혜는 애원하였다.
"자기야 내가 정말 잘 못했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테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
입에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은혜는 이제껏 거짓말을 수도 없이 했었다.
사람이 거짓말을 수시로 한다는 것은 엄연한 정신병적인 문제다.
한때, 나는 이것을 사랑으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어리석은 의지에 불과했다.
전에, 은혜의 거짓말과 돈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며 수유동 지하철 쪽을 걷고 있었을 때
길 가에 좌판을 펼쳐 놓고 사주팔자를 보고 있는 70대쯤으로 보이는 노인네가 눈에 띄었다.
은혜와의 결혼에 대해 한참 고민에 싸였던 나는 별생각 없이 5,000원을 주고 나와 은혜의 사주를 보았는데 그 노인이 나를 몇 번 심각한 표정으로 보더니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는 당신을 구렁텅이로 빠뜨릴 여자여...
그 여자는 그저 연애정도로 만나는 것은 괜찮을지는 몰라도 여자와 결혼을 한다면 당신은
돈이 다 털려서 "노숙자"가 되든지 아님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정신병원"에 입원할 팔자여... 그 여자와의 결혼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듯 하이..."
성당을 몇십 년 동안 다녔고 그동안 수도 없이 하느님께 기도하며 여쭤보았지만
신은 내게 그 어떤 답변도 해주지 않으셨다.
그런데 길가에 좌판을 펼쳐놓고 싸구려 점을 봐주는 보잘것없는 노인에게서
여자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어떻게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은혜에 대한 답을 이리도 명료하게 나한테 말을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어쩜 그분은 오랫동안 북한산에서 도를 닦고 내려온 수도승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때 그 수도승의 말이 떠올라 은혜가 그렇게 매달렸어도 냉정하게 그녀를 뿌리쳤다.
인간은 결코 사랑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그것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일 뿐이다
당신이 어느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변화시키려고 할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은혜를 사랑한다면 그녀가 거짓말하지 않게 변화시킬게 아니라 그녀가 거짓말을 숨 쉬듯이 하든, 여기저기 돈을 꾸어서 빚이 대추나무에 대추 열리듯 달려있든 ,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그게 정말 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노숙자가 되든, 아님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정신병자가 되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게 누구를 사랑할 자신이 있는가? 나는 그렇게 은혜를 사랑할 자신이 없다.
다시 한 해가 지나서 내 나이 48세가 되었고 우리 노모는 80세를 맞이하셨다.
이제 2년만 지나면 나는 50대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40대와 50대는 비록 2년의 갭이 있다 할지라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40대는 아주 조금은 청년 같은 모습이 남아있겠지만 50대는 완연한 아저씨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가끔 만나는 연세 지긋한 열심한 아주머님께서 50이 다가오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차며 위로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한 마디를 하셨다.
"에고... 아직도 결혼을 못했네... 쯧쯧쯧 안타까워서 어쩌누...
거.. 내가 보기엔 형제님은 애당초 결혼은 못할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수도원에나 들어가는 게 어떠슈? 결혼해서 여자 잘 못 만나 애 낳고 파탄 나는 것보다는 수도원에나 들어가는 게 훨씬 더 나을 듯한데 잘 생각해 보슈"
아주머님의 말을 듣고는 속에서 또 화가 솟구쳤다.
아니? 수도원이 나같이 결혼도 못하고 있는 군상들이나 가는 곳이란 말인가?
그것도 수도원도 아니고 수도원이나 가라니...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였는데
나를 마치 폐품취급하고 있는 그 아주머님께 나는 대 놓고 한 마디 하였다.
아주머님!~수도원은 말이죠!~하느님을 너무 사랑해서 잠시 스쳐 지나갈 인간 따위들은 사랑하기
싫은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에요 근데 전 여자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수도원은 못 갈 것 같으니 아주머님 아들이나 실컷 보내시죠?
아주머님 아들이 딱 수도원 체질일 것 같네요.!~
나의 쏘아붙이는 말에 당황했는지 한 동안 그 아주머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어쩜 나는 그 아주머님 말대로 결혼하지 못할 운명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랬기에 20살 때부터 줄기차게 여자들을 만나서 연애를 했었고 수없는 여자들에게 축구공처럼 차였어도 꿋꿋하게 여자들을 만나서 결혼직전까지 갔었지만 결국은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이쯤 되면 결혼은 포기해야 하는 게 순리에 맞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운명을 거부했고 기어이 결혼에 성공해서 내 아내와 20년째 살고 있다.
운명을 완강하게 거부했기에 신께서도 나의 운명을 바꾸어서 결혼을 허락했던 것이다.
은혜와 결혼했냐고?
아니? 내 여자는 대한민국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국제결혼을 하였다.
그것도 내 나이 48세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어디 내놓아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19세 딸과
겜에 목숨을 걸고 있는 16세 아들 녀석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국제결혼만큼 쉬운 게 없는데 그게 무슨 자랑이냐고?
그래 맞다 국제결혼 정말 쉽다.
그러나 나처럼 20년 동안 살면서 아이들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기가 쉬운 줄 아는가?
국제결혼은 쉽지만 결혼을 지속하기는 국내결혼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는 것을 아시기 바란다. 물론 나는 한국남자들이 많이 하는 베트남 결혼은 아니다
그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습니다.
이로써 나의 길었던 결혼에 대한 얘기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앞으로도 10편은 더 써야 하겠지만 브런치가 30편 밖에는 허락을 하지 않는 관계로 급히 마무리를
했다는 점 널리 양해 바랍니다.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오며 앞으로는
매거진에 못다 한 이야기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