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난쟁이의 하녀가 되다
마르타의 이름은 "은혜"이기에 세례명보다는 여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게 더 좋을 듯하다.
나와 여자 때문에 특정 종교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생길 수 도 있을 것 같아서.
은혜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마치 백설공주처럼 보여서 한눈에 홀딱 반했었지만 3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나서 본격적으로 연애를 해보니 3년 전의 그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때는 말을 워낙 하지 않아서 여자의 성격이나 취향등을 잘 알 수가 없으니 신비함까지 느꼈었지만 연애를 하면서 은혜의 단점들이 서서히 드러나자 그녀에 대한 환상은 깨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하드웨어는 완벽한데 소트트웨어가 조금 부실하다는 것이 눈에 보였던 것이다.
외모적으론 어느 여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지만 말하는 스타일이나 사고방식등은 그 나이에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좀 이상한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은혜에게 빠져 있었다.
백설공주 같은 미모와 완벽한 몸매에 나는 이미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우스개 소리로 여자들은 남자의 외모와 능력 인간성 학벌 사회적 배경 등등을 고려해서 남자들을 면밀히 검토한다지만 남자들은 여자를 택할 때 단 한 가지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한다=이쁘냐?
나 또한 은혜의 미모에 빠진 상태인지라 그녀의 소프트웨어가 조금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하드웨어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으로 나는 그렇게 은혜라는 이름의 개미지옥에 빠지고 말았다.
전에도 몇 번 언급했지만 나란 인간은 그렇게 신실한 신앙인이 아니다.
나의 자유의지가 아닌 어머님의 강요에 못 이겨 성당을 다니게 됐으니 겨우 무신론자의 단계만 벗어났고 무늬만 신자였던 내게 진실하게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열심한 신자들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리 아니겠는가.
은혜 또한 수녀원까지 갔다 왔었지만 그렇게 열심한 신앙인은 아니었다.
서로 적지 않은 나이인 데다 두 사람 다 결혼까지 약속했는데 속도위반 좀 한다고 내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가?
그러나 쉬울 줄 알았던 여자와의 첫 선은 그리 호락호락 넘지를 못했다.
어느 날, 나 혼자 살고 있었던 집에 그녀를 꼬드겨서 데리고 온 것까지는 성공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라 은혜와 첫 섹스를 시도했지만 이외로 너무나 완강하게
저항을 하는 통에 도저히 그녀의 성을 무너뜨릴 수가 없었다. 다만, 키스와 가슴애무까지는 허락했기에 처음으로 은혜의 왕가슴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이제껏 만난 여자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비록 첫 시도가 실패해서 기분이 매우 껄끄러웠어도 그녀의 성문을 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며칠 후, 카페에서 만났던 은혜가 이번에는 자기 스스로 내 집에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남자 혼자 살고 있는 집으로 여자가 먼저 가겠다고 한다면 마음의 준비를 했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첫 선을 넘었고 그때 본 은혜의 알몸은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웠다.
우윳빛 뽀얀 피부에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풍선 같은 그녀의 왕가슴이 내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황홀감에 휩싸였다.
유방에서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리면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힙 사이의 S자형 굴곡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런 완벽한 몸매의 여자를 선물해 주기 위해 그동안 많은 시련을 주셨구나 하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까지 하였다.
그래서 좋았냐고?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았겠냐마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하지 않은가...
그렇게 아름다운 예술품을 갖게 되었지만 나는 조루였기에 처절하게 실패한 은혜와의 첫 섹스였다.
너무도 짧게 끝난 여자와의 관계에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나를 보고 한숨을 쉬면서 푸념을 하였다.
몸도 약하고... 사랑도 약하고... 어쩌면 좋아...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남자로서의 자존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으니 나는 여자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왜 이리도 부실하게 태어났단 말인가...
여자는 완벽한 몸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나는 어느 것 단 한 가지라도 그녀 앞에 내세울 게 전혀 없었다.
지금은 비아그라 같은 약들이 대중화되었기에 약의 힘을 빌리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었겠지만 20년 전에는 그런 약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병원에 가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도 남자들 사이에는 널리 알려진 것이 있었는데 나는 약국에서 그것을 구입해 처음 사용해 보았다.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그것을 사용해서 은혜와의 두 번째 섹스에서는 그녀를 오르가슴으로 오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여자가 오르가슴으로 올라가는 것은 그때 처음 보았다.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더 격렬하게 올랐고 그 시간도 훨씬 더 길었다.
남자들은 절정을 느끼는 시간이 평균 10초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 후에는 급격히 하강하는데 반해 여자는 오르가슴으로 올라가 있는 시간이 남자에 비해 월등이 길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어쩜, 신께서는 여자들이 겪게 되는 해산의 고통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그런 쾌감을 선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모든 여자들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남자들은 어느 여자들과 섹스를 해도 대부분 절정에 오를 수 있겠지만 여자들은 아무 남자와 관계한다고 모두 다 오르가슴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또한 오르가슴으로 올라가는 과정들이 남자들에 비해 상당히 길고 복잡한 편이다.
은혜처럼 가슴이 크고 성감대가 발달한 여자들은 비교적 쉽게 오르는 반면, 성감대가 발달하지 않은 여자들은 남자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야 겨우 절정에 오르기도 한다.
그나마 헤어진 전 여자 친구 중에서는 아예 불감증인 여자도 있었다.
은혜와의 두 번째 섹스에서 나는 여자를 만족시켰다는 자부심이 넘쳤지만 그녀에게는 약을 썼다는 것은 절대로 말하지 않았기에 여자는 지금까지도 내가 정력이 아주 강한 남자였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약의 부작용이 매우 심한 편이라 그 약은 몇 번 밖에 쓸 수가 없었다.
결국은 훈련을 통해서 나의 정력을 키웠고 관계 때마다 여자를 오르가슴으로 오르게 할 수 있었다.
그 후부터 연애의 주도권은 남자인 내게로 완전하게 넘어왔다.
나는 여유로워졌지만 그만큼 은혜는 불안했었나 보다.
어느 날은 그녀가 카페에서 내게 말했다.
자기!~~ 나와 몇 번 잤다고 나를 정복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돼요!~
여자의 말을 듣고 나는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하였다.
백두산 천지에 깃발 여러 개 꽂고 내려왔는데 그 깃발들이 태풍에 날아가기라도 했단 말이여? 킥!~
비웃는 듯한 내 말을 듣자 아~휴!~~ 왕 짜증이네!~하고 여자가 푸념을 하는 순간, 띠리링!~하면서 내 핸드폰이 울렸다.
은혜를 만나기 전에 헤어졌던 전 여자 친구가 하필이면 그때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전화기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은혜는 내 핸드폰을 낚아채더니 전 여자 친구에게 마구 퍼부어댔다.
야!!~너 도대체 누군데 남의 남자에게 전화를 해대는 거야!~~라며 화를 버럭버럭 냈다.
이 시간 이후로 두 번 다시 전화하지 말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더니 내게도 화를 냈다.
자기는 왜!~아직도 주위 여자들 정리 못해서 지금도 전화 오게 만드거야!!~~
아니... 나는 분명히 전여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그녀가 나를 잊지 못해 전화한 것을 어쩌란 말인가.
남녀관계는 끝났다 할지라도 무 자르듯 그렇게 단칼에 잘라지지 않는다.
두 사람다 깨끗하게 돌아섰다면 모를까 어느 한쪽이라도 마음의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는 그 여운이 길게 남기 때문이다.
전 여자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로 인해 은혜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집착의 여신이 되었다.
누구로부터 집착을 당해 보았는가?
남자가 여자를 집착하는 것도 큰 문제이겠지만 반대로 여자에게 집착을 당해보니 그것도 결코 유쾌하진 않았다.
지금 뭐 하느냐 어디에 있느냐 또 누구와 같이 있느냐면서 그녀는 내게 수시로 전화를 하며
귀찮을 정도로 내 동태를 확인하곤 하였다.
은혜는 나에게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는 여자다.
그녀는 남자들 누구라도 한번 보는 순간, 자고 싶은 욕구가 솟구칠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인데 왜 나 같이 별 볼일 없는 남자에게 빠졌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녀는 내게 집착을 하면서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헤어지자는 말을 여러 번 하였다.
여자의 마지막 무기는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인데 나는 여자가 헤어지자고 하면 어느 여자라도 붙잡지 않는다.
어차피 떠날 여자라면 붙잡아도 가기 마련이고 그런 여자는 비굴하게 붙잡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반은 여자다.
동시에, 이 세상의 반도 여자, 구태여 헤어지겠다는 여자에게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인생철학이다. 그러나 은혜는 자기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고선 내가 일절 연락을 하지 않고 있으면 보름 정도 있다가 다시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 잘 못했다 사과하곤 하였다.
내가 싫어서 은혜와 헤어진 게 아니었기에 다시 만남이 이어졌고 그렇게 몇 번의 헤어짐과 만남이 반복되다가 자신의 마지막 무기가 내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어느 날부터는 헤어지자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백설공주에서 난쟁이의 하녀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터졌다.
여자의 오빠로부터 호출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은혜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었지만 아직 여자집을 간 적도 없었고 오빠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여자의 오빠가 나를 만나자고 하니 무슨 일인지 당황되었다.
자기 여동생이 만나는 녀석이 누군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가?
불안한 마음을 안고서 오빠가 만나자고 한 카페에 들어섰을 때 그때 본 은혜의 오빠는 조폭처럼
아주 건장한 체구에 검은 뿔테안경을 쓴 근엄한 얼굴의 사나이 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선 그녀의 오빠 앞에 마주 앉았지만 그리 썩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오빠의 표정이 그렇게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피를 앞에 놓고 한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오빠가 내게 한 첫마디는 더 충격적이었다.
초면이지만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겠네!~~
자네 왜 내 여동생에게 돈을 그렇게 많이 빼 썼나?
도대체 그 큰돈을 어디에 썼는지 말을 좀 해보게!~
첫 만남부터 오빠의 다그치는 말을 듣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여자의 돈을 많이 빼서 썼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아니? 형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은혜의 돈을 빼 썼다니요?
저는 이제껏 은혜에게 단 돈 천 원 한 장 빌려 써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여자에게 단 돈 천원도 빌려 쓴 적 없다는 나의 강경한 말에
오빠는 잠시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다시 말했다. 집에는 어머니와 동생 둘만이 살고 있는데 얼마 전 어머니께서 통장을 확인해 보니까
500만 원이나 되는 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시게 되었는데 동생에게 다그치니까
자기가 썼다고 하더군.
어디에 썼냐고 아무리 캐물어도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귀는 남자가 있다고 동생이 말하더군.
그래서 나는 자네가 내 동생 꼬드겨서 어머니 돈을 빼 쓴 거로 생각했었는데 아니란 말인가?
오빠의 말에 나는 즉시 대답하였다.
형님!~~ 전 은혜와 만나면 제가 돈을 다 썼지 제가 은혜에게 커피 한잔 사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근데 제가 왜 은혜의 돈을 썼다고 의심하는 겁니까?
전 이제껏 살면서도 남에게 일원 한 푼
빚지지 않고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 제가 초면부터 형님에게 도둑놈 취급을 받으니 심히 불쾌하군요.
나의 말에 진심이 느껴졌는지 오빠는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사과하듯 말했다.
초면부터 내가 자네에게 실례를 한 것 같네 너그러이 이해해 주게나.
사실은 동생이 자꾸만 어머님 돈을 몰래 빼쓰길래 자네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네.
은혜는 내 동생이지만 가족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이 있는데 녀석이 직장도 제대로 다니지 않으면서 집에 있는 돈들을 너무도 생각 없이 헤프게 쓰고 다닌다네.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서도 돈을 꾸고 말이지 그래서 자네를 의심했었는데 내가 오해를 한 것 같네.
근데 자네 정말 내 동생과 결혼할 사인가? 아님 그저 엔조이 상대로 내 동생과 만나고 있는 건가?
오빠의 말에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형님!~제 나이 40이 넘었습니다 그런 제가
여자를 그저 엔조이 상대로 만나겠습니까?
전 은혜를 사랑합니다. 조만간 어머님 찾아뵙고 정식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은혜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치 못했군요.
은혜의 오빠와 헤어지고 돌아오면서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백설공주처럼 이쁘게만 보였던 은혜가
그렇게 돈에 대한 경제관념이 없고 낭비벽이 심한 여자인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내게 다가올 전주곡에 불과했다.
은혜와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녀와의 질기고 질긴 악연이 어두운 먹구름처럼 내게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