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에서 백마 탄 왕자가 되었다
백설공주인 마르타가 나를 퇴짜 놓았지만 성당에서 어쩌다 마주치면 그녀는 먼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요즘 재미난 일이 없냐는 둥, 영화를 보고 싶은데 인기 있는 영화가 뭐냐는 둥.아니? 자기가 나 싫다고 만나지 말자구선 왜 또 내게 와서 그런 것들을 물어본 단 말인가?내가 밀당에 능한 남자였다면 나는 즉시 여자의 의도를
알아차렸겠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여자와의 밀당을 그렇게 잘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만 헤어지자는 여자가 다시 다가온다는 것은 나는 아직 너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떠난 여자는 두 번 다시 돌아보지 말자는 나의 밴댕이 속 같은 알량한 자존심은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마르타를 심드렁하게 대했었고 여자는 다시 떠나갔지만 나중에 마르타와 내가 질긴 악연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3년 후, 내 나이 41세 때 우린 또다시 성당 앞에서 우연하게 다시 마주쳤다. 3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나도 마르타가 반가웠고 그녀 역시 나를 반갑게 대하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카페에 가서 마주 앉게 되었는데 마르타도 이젠 39살의 명실상부한 노처녀였다.
마르타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녀 나이가 36살이었으니 노처녀였어도 백설공주 같은 외모를 자랑했었지만 3년의 세월은 여자를 백설공주에서 조금은 아줌마 같은 스타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모는 변함이 없었고 글래머스한 여자의 몸매는 나의 시선을 여전히 사로잡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말 안 하고 새침한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마르타에게 없었다.
여자 나이 39살이면 창고 대 방출을 면하기 어려운 나이 아니겠는가?
그녀도 이젠 내가 편하게 여겨졌는지 자연스럽게 말을 하였는데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마치 둑 터진 강물처럼 그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우린 쉽게 서로의 마음을 열어 놓게 되었다.
마르타가 나를 퇴짜 놓았을 때도 내가 싫은 게 아니라 한번 이 남자가 어떻게 나오나 하고 헤어지자 떠 본 것이었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고 떠나는 모습에 마음이 무척 서운했었다나? 자기에게 매달릴 줄 알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떠나가는 내 뒤통수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면서 뭐~저런 녀석이 다 있나? 하고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이제 여자의 속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 마르타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녀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나와 헤어진 후, 마르타는 곧바로 수녀원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나는 수녀였던 여자와 함께 있는 것 아닌가? 글쎄... 내가 보기엔 수녀가 될 정도로 믿음이 충실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르타는 수녀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고 다시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처럼, 고리가 서로 연결된 인연은 헤어졌다가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다시 만나기 마련이니 여자에게 한번 차였다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두 사람 다 나이가 많았으니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상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애초기에는 남자라면 누구나 경험하듯이 연애의 주도권은 여자 쪽에 있다.
언제까지? 음... 내 경험으론 여자와 선을 넘기까지다.
일단 한번 선을 넘게 되면 그때부터 주도권은 남자에게 넘어오는데 그 선을 넘기까지 여자는 남자 속을 태운다. 역시 마르타도 연애초기에는 수족관 관리하듯 나를 대하였다.
만날 약속을 하고선 만날 날이 되면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다면서 날짜를 변경하는 것이다.
그 날짜가 되면 또다시 시간이 없다고 다음에 만나자고 하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이런 식으로 데이트 약속을 번번이 어겼다.
나는 그럴 때마다 실망감에 화가 솟구치곤 하였지만 대 놓고 화를 내진 못했다.
여자와 또 티격태격하다가 그녀와 다시 또 헤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꿩대신 닭이라고 그녀와 만나지 못하게 된 날은 예전에 만났다가 헤어진 여자를 만나서 맥주를 함께 마시며 여자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여자는 내가 택시를 하고 있었을 때 승객으로 만나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하고 학원 강사로 일하던 그녀는 내가 바이올린 제작가라고 하자 자기가 먼저 차 한잔 마시자던 여자였다.
나와 세대차도 많이 나고 내가 젤 싫어하는 왕골초면서 예술을 하는 여자답게 자유분방하면서 4차원적인 마인드의 여자인지라 연인까지는 발전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가끔 만나서 맥주 정도 마시는 사이었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면서 마르타가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난 얼떨결에 친구와 만나서 맥주 한잔 마시고 있다며 말했었는데 어느 친구와
같이 있냐고 마르타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여자와 함께 있다면 안 될 것 같아서 남자친구와 함께 있다고 둘러대곤 전화를 끊었다.
다시 여자와의 대화는 이어졌다.
야!~도대체 무슨 여자가 말이지 왜 만날 약속을 하고선 이렇게 번번이 자기가 먼저 약속을 어기냐? 넌 여자니까 그 이유 알 것 같은데 내게 설명 좀 해봐라.
여자는 담배를 아주 맛있게 한 모금 쭉 빨고선 입안에 잠시 머금다가 입으로 도너스 모양을 만들어서 내게 후!~~ 하고 불었다.
그녀가 날린 도너스 모양의 담배 연기가 내 머리 위에서 한 동안 머물렀는데 놀라운 기술이다.
담배로 도너스 모양의 연기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내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마치 천사 머리 위에 올려져 있는 도너스 모양의 구름처럼 보였다.
아니 좀 기분 나쁘게 말하면 사람이 방금 죽어서 하늘로 올라갈 때 머리 위에 얹혀 있는 도너스 모양이 더 맞을 것이다.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 내게 요런 싸가지없는 행위를 하니 내가 그녀를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여자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 마디 하였다.
아저씨... 그 언니가 아저씨를 길들이려고 하는 거예요.
아저씨 주도대로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것이죠.
언니가 백설공주처럼 이쁘다면서요? 그럼 아직도 아저씨는 일곱 난쟁이 중 한 명이란 뜻이에요.
아저씨 퇴짜 놓고 그 시간에 다른 여섯 난쟁이들 만나러 다니는가 보네요.ㅋㅋ
여자의 말을 듣자 나는 속에서 부아가 더 치밀어 올라왔다. 마르타에게 내가 백마 탄 왕자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적어도 난쟁이는 아닐 것이라 여겼었는데 여전히 나는 백설공주의 난쟁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에서 여보세요!~하고 앙칼진 마르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고야... 아까 마르타의 전화를 끊었는데 실수로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전화기가 계속 켜 있었던 것이다. 마르타에게 여자와의 만남을 생 중계를 하고 있었으니 세상에... 이런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다니... 잠시 후에 닥칠 후폭풍을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머리가 팽이처럼 돌면서 어지러웠다. 마르타는 같이 있는 여자 바꾸라고 하더니 여자가 전화를 받자 나와 어떤 관계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자는 아주 능숙하게 마르타를 달랬다.
언니!~안녕하세요!~~ 전 이 아저씨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에요.
그냥 가끔 만나서 맥주 정도 마시는 사인데 저도 애인 있어요. 언제 우리 함께 만나서 놀러 가고 같이 술 마셔요. 호호호.
나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애인이 있다는 여자의 말에 마르타는 안심이 되었는지 여자와 부드럽게
말을 마치고는 내게 여자와 너무 오래 있지 말고 헤어지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일생일대의 큰 실수를 했었지만 여자의 재치로 무난하게 넘어갈 수가 있었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희한하게도 마르타와 함께 있을 때 이미 헤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또 내게 전화가 온다는 것이다.
마르타와 헤어진 후, 3년 동안 그 사이에 나는 여러 명의 여자를 만났었다.
지금 내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미대 출신의 골초녀도 그중의 한 여자였고 소개팅을 받아서
잠시 사귀었다가 서로가 맞지 않아서 헤어진 여자도 있었다. 마르타가 내 주위에 여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그녀는 내게 집착하는 행동을 보였다.
여자들은 보통 자기 남자가 주위에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두 종류로 나뉜다.바람둥이라고 즉시 발로 차 버리거나 아님 남자를 다른 여자들 만나지 못하게 감시를 하는데
마르타는 후자에 속했다.
자기 딴에는 내가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남자처럼 보여서 길들이기를 하려고 했었지만 의외로 여자들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나를 감시하는 쪽으로 선회를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애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남자에게 넘어오게 되기 마련이다.
질투를 더 느끼는 쪽에서 백기투항을 하기 때문인데 때론 여자를 질투 나게 하는 전략도 통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신중을 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그냥 우연하게 앞에 있는 여자의 재치로 위기를 넘어갔을 뿐이니까.
이후로, 마르타는 더 이상 나를 길들이기를 포기했고 당연히 데이트 약속을 하고선 바람 맞히는 일은 없어졌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우리 두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만나서 데이트를 하였다.
두 사람 다 나이도 많으니 지극히 자연스럽게 결혼약속까지 하는 사이로
급 발전했으니 이제 나는 백설공주인 마르타에게 더 이상 난쟁이가 아닌 백마 탄 왕자 신분으로 급 상승하게 되었다.
이래서 인생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