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명상

용기 있는 참새 한 마리를 만나고 싶은데

by 호윤 우인순 시인

입동이 지난 늦가을 명상이랄까요

오늘 같이 햇살 눈부신 날은

느닷없이 별안간

하얗게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보고픈 이들의 얼굴처럼

하얀 눈송이들이 펄펄 내리면

첫눈 내리는 날 만나자던 친구들

별안간 내리는 첫눈 소식에 약속 장소로

달려올까

첫눈 내리면 경복궁 앞에서 만나자던

영희, 철수, 순이도

이제는 머리에 하얗게 눈이 내렸다


나눌 것 다 나누어 텅 빈 들녘

논두렁엔 하얀 공룡알들이 나뒹굴고

찬바람에 허수아비가 떨고 있다

광야같은 이세상

가슴엔 빈 바람만 가득 일고

갈기갈기 찢기운 옷자락 바람에 벌럭인다

? 너는 아직도 집엘 못 갔니? 물으니

참새들이 날 무서워해요

세상엔 추운겨울이 와도 집에 못간 사람들이 많지요

얼마나 외로울 까요?

이 겨울엔 친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은 나도 친구가 필요하거든요

용기 있는 참새 한 마리를 만나고 싶은데

참새들은 벌벌 떨며 나를 무서워하며 피해요

사실은 나는 참새들에게 잘해주고 싶거든요


논 두렁에 키다리 허수아비가 아니고

함께 웃으며 어깨에 참새들을 태우고

노래부르며 즐거운 늦가을 보내고 싶은데

용기있는 참새가 없어 속상해요


가을 들판을 다 비우고 나니 겨울이 문을 열었다

무언가를 채우고 싶다는 듯

하늘은 벌거벗은 산천을 내려다보며

따사로이 햇살을 내리며 웃고 있다

눈이 왔으면 ,무언가 채우고 싶다는 듯

사람들은 첫눈을 기다리고

들판은 문을 열고 하늘을 본다


아직도 가슴속엔 속절없이 하얀 그리움

첫사랑의 그녀를 기다리는 걸까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눈

걸음마다에 뽀드득 뽀드득 밟으며

퍼르퍼르 나비 같이 춤을 추며 내려오는

하얀 눈과 함께 춤을 추자

올해는 함박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려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 따스했으면 빌어본다


이제 막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난

마늘 양파 시금치 상추도 춥다고

눈이 왔으면, 하얀 눈 이불을 덥고 싶다고 소리친다.


12월엔 마음들이 모두 따사로이 녹아 내렸으면

모진마음, 거친 마음, 미워하는 마음들이 다 변해

하얗게 눈처럼 내려 미운 건 덮어주고,

굳게 닫아버린 마음도 열어, 서로 보듬고 사랑하며 어루만지고

감사하며 하얗게 눈꽃을 피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참 변덕쟁이다

어제는 더워 못 살겠다 하더니

이제는 춥다고 문을 꽁꽁 걸어 잠근다.


이 겨울에

나는 버린 게 무엇인가 무얼 나누고 무엇을 얻었을까

창문을 열고 광활한 들판을 바라보며

커피 잔에 따끈한 물을 부어 본다.

겨울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차 한 잔을 나누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따끈한 국밥 한 그릇

함께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음에 장작불을 지피우자,

한 해 동안 서로 상처 주는 마음 보다

서로 상처 받는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토닥거리는

따스하고 예쁜 나였으면 한다.

겨울엔 가장 예쁜 생각을 나누고

함박눈 같이 하얗게 아름다운 웃음을 웃어주자

첫눈을 보면 행복한 것은

첫눈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첫눈을 좋아해서 행복한 것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싶다

바다를 좋아하듯 ,털이 하얀 고양이를 좋아 하듯


외롭고 힘든 겨울 허수아비의 친구가 되고 싶다

누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듯

나도 좋은 사람이 좋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왠지 행복하고

사랑을 느끼며 자꾸만 보고 싶어진다

. 이 겨울엔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진정 누군가를

바램이 없이 사랑하고 좋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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