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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Sep 01. 2023

죽음까지의 동행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벼리다

1. 무디어진 연장의 날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다

2. 마음이나 의지를 가다듬과 단련하여 강하게 하다


종종 사람들은 '벼리다'를 '어떤 일을 이루려고 마음 속으로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기회를 엿보다'는 의미의 '벼르다'와 혼동하여 쓰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또한,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 혹은 '그물의 위쪽 코에 꿰어 놓은 줄'이라는 의미의 명사 '벼리'도 전혀 다른 의미다. 




만약 누군가가 죽음까지 함께 동행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겠는가?


과 죽음, 

가장 극단에 있는 개념 같으면서도 서로 등을 맞댄 것처럼 아주 가까운, 이 아이러니를 나는 아직 능숙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삶의 동행이 아니라 죽음으로의 동행이라는 구절에 가슴 철렁한 듯한 기분이 든다. '죽음'이라는 끝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의 '무지'는 타인의 삶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삶에 '무례'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들은 가장 소중한 사람을 외면하고, 가장 소중한 순간을 놓쳐가며 무엇을 열망하고 있는 것일까?


떠난다는 것은 일종의 반성과도 같다. 

따분함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었던 나에게 별안간 마주한 이 새로운 세계는 엄한 꾸짖음으로 답하고,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헤어나올 수 없는 영원의 굴레 같았던 내 일상은 

나의 어리석음으로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나의 삶이었구나. 


수차례 절감해왔다. 그럼에도 내 삶과 그것을 이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나의 애착은 그것들의 엄중한 소중함에 비해서 한없이 부족한 듯하다. 앞으로도 충분할 일은 없을 것이나, 그렇기에 더욱 더 지금을 충만히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후회하며 과거에 머물지도 않을 것이며, 고통스러워 하며 미래에 목을 매지 않을 것이다. 

떠난 곳에서 보내는 지금의 삶도 새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또 다른 행복이라고 믿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시덥지 않은 농담과 질문들을 하면서 웃을 수 있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몇 시간씩 서있다가 마주하는 시원한 바람에도 감사할 수 있으며,

언제나 나를 잊지 않고 그리워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그 사실이 마음 깊이 행복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많은 사람의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낯선 타인으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을 일은 없겠으나, 혹시나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나에게 그들의 혹은 나의 죽음까지 동행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겠다.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마주하는 

삶의 추함과 죽음의 심연 그리고 죽음이 남기는 깊은 상처마저 감당할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앞으로의 수많은 장애물과 난관을 안내할 만큼 노련함은 없으나, 

그리하여 더욱 순진한 만용을 부릴 수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아이가 되어보려 한다. 

그리고 이 마음을 잃지 않도록, 

나의 사람들의 소중함이 다시 무뎌지지 않게

부지런히 마음을 벼리는 대장장이가 되어보려 한다.


- 유유히 삶을 건너 죽음이라는 피안으로의 여정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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