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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Aug 27. 2023

우리는 무엇을 딛고 서있나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디디다

1. 발을 올려놓고 서거나 발로 내리누르다.

2. 누룩이나 메주 따위의 반죽을 보자기에 싸서 발로 밟아 덩어리를 짓다.

3. 어려운 상황 따위를 이겨 내다.




우리 엄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아주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생전에 부모님의 지인이셨는데, 제삼자에게는 흔한, 당사자에게는 별난 '암'이었다. 

덤덤하게 전해진 이 소식은 그 내용에 걸맞게 나에게서 무엇을 빼앗아간 듯한 기분에서 나를 빠져나올 수 없게 했다. 안 그래도 최선을 다해도 발버둥 쳐도 여전히 그 자리에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은 견뎌내고 있었는데 그 소식은 나를 지금,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침 금요일이기도 해서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사람들 사이를 추월하여 집으로 서둘러 도망쳤다. 그 시간대에 차가 밀린다는 걸 알았지만, 내가 도망가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도망가기를 기다리는 상태라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도망에 진입해야 했다.


사람에 그리고 차에 밀리고 밀려 한숨도 쉬지 않고 꼬박 2시간 30분을 운전해서 집에 도착했다. 일주일 내내 쌓인 피로와 쉼 없이 운전을 해서 쌓은 따끈따끈한 피곤까지 겹쳐져 집에 도착한 지 1시간도 안 돼서 잠에 빠졌고 하루의 반을 수면상태에 묶여있다가 다음 날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오랜 시간을 자서 그런지 깨어난 다음에도 6시간 동안은 두통이 배턴터치를 해서 나를 고문하는 듯했다. 겨우 정신을 차려서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일분일초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면 내가 가족들과 만날 시간도 함께 줄어드는 것이라는 간단하고도 명백한 사실을 누군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각인시키지만, 그렇다고 한들 딱히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미안하고 고맙게도 아빠와 오빠는 너무 쉬웠고, 유감스럽게도 엄마는 너무 어려웠다. 

엄마라는 이름 때문에 숨겨야 했던 것들, 가령 먹고 싶거나 하고 싶었던 것들을 고집스럽게 캐물었다.

엄마가 답을 토해냈고 나는 듣기도 하고 들어도 주었지만, 그 답의 진위를 아는 건 엄마밖에 없을 것이다. 작정하고 숨는 사람을 어떻게 찾아내겠는가? 언제나 타인의 삶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으나, 그 타인이 나와 가까울수록 그 한계가 더 뼈아플 뿐이다. 


집을 떠나는 새벽, 앞에서 엄마를 안아주었다. 

엄마의 몸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우울감에 작별을 고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내 희망만으로 작동되지 않는 것임을 안다. 신이 인간에게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주었지만, 타인의 문제를 해결해 줄 권한까지는 허락하지 않았으니, 괴리에서 파생되는 슬픔 역시 인간의 숙명이라는 걸 여전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거울로 비치는 엄마를 보니 내가 엄마를 엄마의 세상에 두고 도망치는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죽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그걸 내가 잊고 있던 걸 깨닫는데 이용하고 그저 내 일상을 보내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무엇을 딛고 서있나? 

나는 엄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아주머니의 죽음과 엄마의 삶을 딛고 서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나열할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거대한 희생 혹은 가벼운 스쳐 지나감조차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려 발로 내리누르고 있는 것들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압도된다. 

그 현실에서 난 계속 도망치고 있나? 

지금 나에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 나는 어디로 도망갈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갔다. 나는 결국 도망치기로 결심했던 곳으로 다시 도망쳤다.




사진: UnsplashJEONG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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