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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Jul 19. 2023

작정하고 한 발 물러서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무작정(無酌定)

1. 얼마라든지 혹은 어떻게 하리라고 미리 정한 것이 없음.

2. 좋고 나쁨을 가림이 없음.


무작정 달려가서 선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저 문을 열고 떠난 지 1분이 채 되지 않았으니 지금 뛰어가면 분명 붙잡을 수 있을 거다.'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내려 가고 수개의 중문(中門)을 건너니 선배가 보였다. 


"선배!" 


"2층이 아니라 1층이에요."  


"전화하지." 


'뭘 그런 걸 여기까지 와서 말해주냐'며 의문을 갖는 선배에게 머쓱하게 '그냥요'라는 대답을 하면서 속으로는 아차 싶었다. 문명의 이기를 써먹지 못할 정도로 내가 성급하고 우매했음에 놀랐다. '맞네, 전화하면 됐구나.' 하고 속으로 되뇌고 사무실로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오늘은 유달리 나의 급한 성미를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 꽤 있었다. 

부서 사람들과 점심을 먹는데 과장님께서 나에게 어떤 일을 시키려고 하셨다. 맥락상 무슨 일일지 충분히 예상돼서 과장님이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는 찰나에 '그 일을 하겠다'라고 대답을 먼저 해버렸다. 그랬더니 과장님께서 웃으시면서 '성격이 급한 건 알겠지만, 지금이 1.5라면 1.2 정도로 속도를 줄이는 게 좋겠다'라고 조언해 주셨다.  



작정(作定)

:일의 사정을 잘 헤아려 결정하는 것


'작정(酌定)'은 '따르는 술의 양을 정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만약 양을 정하지 않고 따르다가 마저 채우지 못하거나, 잔을 넘치게 따르면 상대를 무성의하게 혹은 무례하게 대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작정'은 타인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 마음을 주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마음을 넘치게 주는 것도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천까지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발이 먼저 움직여서 뛰어가버리고, 말이 미리 튀어나가 버린다.

 

내 마음을 얼마나 상대의 그릇에 채워 넣을 것인가? 

마음이 흘러넘치지 않게

상대가 정한 선을 함부로 넘지 않게

한 발 물러서, 보이지 않는 척, 들리지 않는 척. 

때로는 그게 배려고 예의일 수 있다는 걸, 

차안대(遮眼帶)를 쓴 듯 앞만 보는 내 마음의 고삐를 다시 고쳐 잡으며 오늘도 나는 이렇게 깨닫는다. 


사진: UnsplashVinicius "amnx" Am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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