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당신의 최선이라니 유감입니다.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악의(惡意)
: 나쁜 마음 혹은 좋지 않은 뜻
No offense.
: 악의는 없어. 오해하지 말고 들어.
어느 회사든 조직이든 감사팀이 무섭지 않을 리 없다. 2주 동안 감사팀이 옆 부서를 포함해서 몇 개 부서에 감사를 왔지만, 사전에 우리와 관련성이 크게 없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고, '나만 아니면 돼' 같은 방관자적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감사관들도 똑같은 사람일 테지만 더 냉철하고 사납게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역시나 우리 팀도 불려 갔는데, 해당 안건에 대해 팀의 관련성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왔다. 아무리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문득 내 책임의 무거움을 얕게 실감했다. 그날까지는.
그러나 다음 날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다. 감사팀은 C팀에서 우리 팀이 다른 업체에 전달했던 문서들을 근거로 해서 '계약 연장'을 요청했기 때문에 우리 팀이 자유롭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B팀에서 우리 팀이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주체임을 계속적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나는 우리 팀에는 실질적인 기술적 평가를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없고,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없기에 B팀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다른 업체에 전달하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업무에 대한 공공연한 인식과 절차는 회사 규정의 '승인'이라는 두 글자를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B팀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이 달려와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어느새 B팀은 하나로 똘똘 뭉쳐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철저하게 방어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최선을 다했던 방어는 우리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우리 팀장님과 B팀 팀장님이 꽤나 친하다고 알고 있는데, '어제랑 분위기가 이렇게 반전이 되어버렸다면 귀띔이라도 주지.'라는, 어리석게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이내 곧 슬픔으로 마음이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모두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다. 당신들에게 악의는 없었을 것이고, 나는 오해하지 말고 들어야 했을 것이다. 다만, 그게 당신의 최선이라는 게 퍽이나 유감이었을 뿐이다.
가끔은 신은 너무 짓궂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선의가 모두의 선의가 될 수 없다. 고로 악의는 불가피하다. 이렇듯 완전무결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그곳에 인간을 풀어놓은 다음 그들에게 완전무결한 잣대를 들이대다니. 그러나 짓궂은 신을 원망하기보다 그 속에서 같이 허우적대고 있는 또 다른 하잘 것 없는 인간에 동정하겠다. 그래, 너희들도 나와 같이 한낱 노동자에 불과하겠지.
지나가다 모르는 사람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잔뜩 짊어지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문득 핵심에 자꾸 빗겨 난 말만 하다 온 걸 깨달았다. '계약 연장에 대한 근거가 되는 모든 문서에 계약 연장이 불가하다는 입장으로 명시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계약 연장에 대한 의견을 우리 팀에는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팀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했어야 했는데 라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그래서 감사팀을 지원하고 있는 부서에 연락해서 내일 감사팀 일정을 확인하고 내일 그들에게 차분하게 설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추신, 내일의 해가 밝았고, 나의 선배님은 차분하고 논리 정연한 최후변론으로 나를 구원했다.
* 사진: Unsplash의 Andy Hender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