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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Sep 09. 2023

가끔은 세상이 네모났으면 좋겠다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머무르다


1. 도중에 멈추거나 일시적으로 어떤 곳에 묵다

2.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일정한 수준이나 범위에 그치다


'ㅇ(이응)'보다 'ㅁ(미음)'이 주는 안정감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당신에게 잠시 눈을 감을 것을 청한다.

어떤 문을 열었는데 방 안의 구조가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임을 발견한 순간을 상상을 해보자.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상관없겠지만, 이는 곧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는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원형의 공간에서는 자신의 몸뚱이 하나를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 막막하겠지만 네 귀퉁이가 있는 사각형이라면, 나는 저 네 구석 중 하나를 택해서 내 몸 하나를 꼬깃꼬깃 구겨 넣고 싶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 따위는 내 등 뒤에 감춰두고 무릎을 두 팔로 감싸며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말이다. 


이제 눈을 다시 떠도 된다. 내 눈을 바라봐도 괜찮다. 

나는 역마의 숙명을 갖고 태어나 자의든 타의든 언제나 익숙해질 때쯤에는 다시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방어'는 오랜 내 삶의 전략이었기 때문에 개방과 폐쇄가 적절한 혼재한 듯한 'ㅇ(이응)'보다는 새침하게 각진 'ㅁ(미음)'이 나에게 편안한 환경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세상이 네모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서 세상의 어린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이제 오랜 화석이 되었다. 그저 네모난 세상에서 나에게 허락된 작은 공간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갈라진 화석을 뚫고 작은 싹으로 자라나고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내가 속한 곳은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되는 씁쓸한 조소가 아니라, 조그마해도 좋으니 오롯이 나만이 꼭 들어찰 수 있어서, 그래서 나만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 그곳에서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머묾을 항유하며 충만한 미소를 지을 날이 오길 바란다.


사진: Unsplash의 Cristina Gottar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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