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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Sep 23. 2023

네 말이 맞아, 이제 떠오를 시간이야.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배다

1. 스며들거나 스며 나오다

2. 버릇이 되어 익숙해지다

3. 냄새가 스며들어 오래도록 남아 있다


베다 

1. 날이 있는 연장 따위로 무엇을 끊거나 자르거나 가르다

2. 날이 있는 물건으로 상처를 내다

3. 이로 음식 따위를 끊거나 자르다


침잠(沈潛)

1.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물속 깊숙이 가라앉거나 숨음

2. 마음을 가라앉혀서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함

3.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도록 성정이 깊고 차분함

4. 분위기 따위가 가라앉아 무거움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처럼 

글을 쓰는 건 글에 나를 배어나도록 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가볍게 휘갈겨 쓰든, 중압으로 선명한 자국이 남도록 꾹꾹 눌러쓰든,

시각이라면 잔상이, 후각이라면 향기가, 청각이라면 울림이 되어 전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글은 잔상, 향기, 울림이 되어 저 멀리 퍼져나가기 보다는,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고요히 머물렀나보다.


그렇게 나는 나의 글을 꼭 닮아갔다. 

종이에 써내려간 나의 모든 어리석은 과오들과

그것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섣부른 다짐들 그리고

단어의 육중한 무게와 달리 매일 밤 나의 글 한켠에 쉬이 공간을 얻었던 '침잠'이라는 말이 

검게 배어져나와 나에게 스며들었다.

깊이도 알 수 없는 밤바다 속으로 꾹꾹 눌려져 깊숙이 가라앉았다.


종이가 와락 구겨지듯

사방에서 나를 향해 돌진하는 바닷물의 짓누름과

감히 닿을 수도 없는 저 높은 곳에서 빛나는 태양의 눈부심들에 나도 버티지 못하고 구겨지고 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먼 나라에 있는 친구는 

스스로를 귀히 대하지 않은 내가 내 자신을 저 깊은 바다 속으로 쳐넣고 있다며 꾸짖었다.

타인을 대하는 것만큼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나의 마음가짐에 한계를 선고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나를 사정없이 베어내던 스스로와 나를 귀히 대하지 않았던 나의 글들 

그리고 그것들이 온갖 형태로 나에게 배어져 있는 것들조차 떨쳐내고 

수면 위로 떠오를 시간이라 일렀다. 


네 말이 맞아. 


어푸! 참았던 숨을 내쉰다.



사진 출처: Unsplash의 Jeremy 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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