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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Oct 29. 2023

라플라스의 악마에게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엄습하다(掩襲하다)

1.  뜻하지 아니하는 사이에 습격하다

2. 감정생각감각 따위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거나 덮치다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

18~19세기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Pierre Simon Laplace)가 상상한 가상의 존재로, 그가 1814년 쓴 에세이의 도입부에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것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등장하게 된다. 이는 그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개념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누군가를 원망할 것 같은 어리석은 마음이 엄습하는 듯하여, 그러지 말라고 스스로를 나무라며


라플라스의 악마에게 여쭙습니다. 

제 삶의 지평선 끝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습니까? 제 최후의 들숨과 날숨 그리고 이후의 고요가 맞닿은 곳, 그 찰나의 순간에 저는 제게 주어졌던 시간들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줄 수 있을까요? 경이로운 세상의 질서로 말미암아 당신의 존재를 나는 확신합니다만, 저는 아직 제 삶에서 당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위대해지기에는 모자란 제 깜냥을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도 될 만큼 제 삶은 정녕 아무 의미가 없겠습니까? 영원에서 영원까지, 무한에서 무한까지 존재한다는 당신이 제 삶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제가 우주에서 발생한 예외 같은 사건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그리하여 더더욱, 부디 멀지 않은 날에 제 쓰임을 알게 해 주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욕심이겠습니까?


인정합니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은 죄이나, 무지한 자는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지라 저는 세상을 내 발아래 두고 사는 이처럼 살아왔습니다. 무지는 인간을 용감하게 만들어서 그 발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밟혀 신음하는지도 모르게 하고, 그 사람들이 피할 줄 몰라 단념하고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 못하게 하여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눈을 가리어 버렸습니다. 후에 와 돌이켜 보니 그들은 그저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허나, 그 이유로 인해 그들은 어리석던 철부지 아이의 발구름에 쓰디쓴 고통을 삼켜야 했음을 저는 너무 더디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철없던 업이 빙빙 돌아 결국 주인을 찾아왔을 때 저는 후회의 눈물을 쏟았으나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이제까지 닥쳐온 고초들의 흔적은 군말 없이 묵묵히 추스를 것입니다.

이제부터 닥쳐올 고난들을 어떻게 피해 갈까 잔꾀도 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속죄의 길이 아닐까 합니다. 속죄를 다 하기 위해 저에게 참으로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다만, 한 가지 이기적인 걱정 하나가 있습니다. 


속죄의 끝이 어쩌면 제 삶의 끝보다 길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저는 제 장난감 하나 없는 어린아이처럼 뚫어지게 거리를 둘러보았습니다. 거짓말처럼 달이 밝았습니다. 귀를 막아도 거리에 흐르는 음악에 공명하는 박동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자의인 듯 타의인 듯 아주 잠시 세상과 함께 호흡하였습니다. 이렇듯 다른 이의 몫으로만 남겨두기엔 세상은 너무 눈부셔서 자꾸 굽을 줄 모르는 제 욕심과 부러움이 고개를 들어댑니다. 속죄의 끝이 제 삶의 그것보다 길어도 그것 역시 제 탓이기 때문에 감내해야겠지만 혹시나 속죄가 먼저 끝나는 날에는 저도 오늘처럼 흥겨운 이 거리를 마음 가는 대로 거닐고 또 머물고 싶습니다. 그러다 당신이 제게 품은 뜻을 발견하면 그것을 연처럼 실에 묶고 그 실을 감은 물레를 들고 땅의 끝자락까지 뛰어가겠습니다. 물레에 감긴 실이 한없이 풀어져도 상관없습니다. 그 뜻이 하늘의 끝에 닿을 때까지 물레의 실타래를 끝없이 풀어내고 싶습니다. 그럴 날이 오겠습니까? 


사진: Unsplash의 Hassan Pa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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