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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Nov 27. 2023

부끄럽지만, 팬입니다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우상(偶像)

1. 특정한 믿음이나 의미를 부여하여 나무, 돌, 쇠붙이, 흙 따위로 만드는 형상

2.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


품위(品位)

1. 직품(職品)과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2.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3. 사물이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


고등학생 시절 한 선배가 나에게 짝동생을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다니던 중학교에서 그 고등학교로 간 유일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비빌 인연 하나 없었던 나는 짝동생이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그러겠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짝언니', '짝오빠', '짝동생' 같은 건 아마 경기도 전역에서 진학하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는 기숙사 학교였던 우리 학교 특성상 서로 의지할 곳이라도 만들려고 했던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의 발로이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돌아와서, 나의 짝언니는 모자란 부분이 없었다. 외모, 성격, 성적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던 언니는 나의 우상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 날은 언니가 나에게 '크리스피 크림도넛'을 사서 준 날이었다. 도넛이라고는 던킨 도넛밖에 모르는 나는 멀뚱히 그 하얀 상자를 받았는데, 반의 다른 아이들이 나에게 몰려들어 굉장히 부러운 눈길을 던져댔다. 한입 먹어본 그 도넛은 정말 입에서 녹아내리는 것 같이 맛있었다. 그 도넛처럼 나에게서의 언니 이미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남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나도 이제껏 처음 본 사람이었던 사람이었다.


언니는 유수의 대학에 진학을 했다.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언니에 비해 한참이나 모자란 동생인 나는 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동생이 되기를 바랐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나는 그 대학을 가지 못했다. 언니 앞에 당당할 수 없었던 나는 숨어버렸고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한번 틀어진 인연은 관성으로 말미암아 정상궤도에서 멀리 벗어나 버렸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가게 된 건가 싶지만) 아프리카에 있던 도중 언니의 결혼 소식을 건너 듣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봐줄 만하지 않지만 어린 날 자격지심으로 당당하지 못했던 나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도,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도, 언니가 가장 행복할 순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을 모두 모아 언니에게 연락할 용기를 내었다. 너무 고맙게도 언니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서울에 사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이틀간 휴가를 냈다. 드높은 빌딩들이 둘러싼 그곳은 길 건너의 사람이 작게 보일만큼 도로가 넓었다. 퇴근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 한잔 기울이는 어느 곳에서 언니도 나에게 술을 권했다. 평소에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 언니가 주는 술은 거부할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 술은 쓰지 않았다. 서로에게 바나나 우유를 건네며 공부 열심히 하라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에게 소주를 따르는 걸 보며 새삼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언니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듣는데 꼭 무용담을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고, 하나하나 교훈이 없는 곳이 없었다. 막차 시간이 다 된 것도 모르고 있다가 엄마의 독촉으로 겨우 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생각해 보니 내 꼴은 마치 서울 쥐를 만나러 온 시골 쥐 같았다. 만약 다른 점이 있다면 설화와 다르게 서울쥐는 물질적 풍요도 정신적 평화도 모두 가졌다는 것이다. '멋진 사람... 언니는 여전히 나의 우상이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라고 속으로 선언하며 남몰래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휴가가 끝났다. 

한 직장 동료와 차를 타고 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동(不動)함을 한탄하는데, 그가 말한다. 

 

저도 그래서 안 하잖아요. 

살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오는 것처럼 나 역시도 짧은 직장생활 간 나는 두 가지를 마지못해 인정했다. 무지(無知)와 무용(無用)이다. 


첫째, 나는 무지(無知)하다.

직장에서 내가 모르는 수많은 것들을 마주하면서도 무지함을 깨닫지만, 무엇보다 내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듣게 되면서 내가 무지함을 깨달았던 순간이 있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가족이고, 그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게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때로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도 생각했지만,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당당할 수는 없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나는 남들에게 꽤나 엄격하게 굴었지만, 이후로는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고 마지막에 힘겹게 이해를 토해내곤 한다. 그래도 오만함이 덜 해졌다고 자평하고 싶다. 


둘째, 나는 무용(無用)하다. 

첫 번째 깨달음과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왜 다른 사람들은 이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걸까 하고 한탄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부서에도 있어보니 나의 업무 역시 우주의 먼지와도 같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기에 '나'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인정한다. 내가 알지 못함으로 그리고 나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밀릴 수 있다는 전제로 말미암아 나와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무조건 재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고, 이 선택지로 다가가지 않으려 기를 쓰고 반대편으로 내달리고 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점차 나는 이쪽으로 끌려가는 것 같은 듯한 무책임(無責任)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나에게 부여된 직무는 어느 정도 해내고 있다고 믿었다. 시간을 쏟으면 그만큼 커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내 꼴은 성난 황소에 묶여 끌려가는 형국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점차 멀어지고 당장의 일들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서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한 무더기 쌓아놓고 있다. 다들 이렇게 마음을 짐을 다 갖고 사는 건지.. 나는 이 짐들에 깔려 압도당할 것 같은데 사람들은 그래도 잘 살아가는 걸 보면 내가 유난인가 싶기도 하다. 여전 완결을 시도하는 나에게 무책임을 선고하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의 유예는 스스로에게 건네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하며.


평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열심히 해보긴 할 것이다. 부디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스스로의 무책임을 고백하는 동료의 말이 대단히 충격적이지만 그런 타인은 내 삶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왜 무책임에 당당한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부끄럽게 고백해야 하는 것이 되려 당당히 밝힐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 것일까? 무지와 무용이 거대한 사회에 끼인 한 인간의 숙명이라면 무책임은 한 인간이 오롯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더더욱 가서는 안 되는 길임을 다시금 새긴다. 누군가가 제 몫을 해주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만큼 더 일해야 하는 불합리를 모른 척하지 말자고, 비겁해지지 말자고 굳게 다짐한다. 나의 무책임이 곧 누군가의 책임이 되는 것임을 알기에.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있게 가자!

미셸 오바마의 말을 참 좋아한다. 설사 이 문장을 쓸 만큼 내가 가치 있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건 그 품위를 지향하고자 했다는 나의 태도만은 진심임을 고백하고 싶다.


나의 우상은 오랫동안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의 대단함으로, 동시에 타인들의 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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